20 나의 시

박설호의 시, '뮌헨을 떠나며'

필자 (匹子) 2024. 3. 7. 07:28

뮌헨을 떠나며

박설호

- “나는 이제 너희를 떠난다./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지냈다.” (Oskar Panizza) * -

 

잘 있어 뮌헨이여

차갑게 보이는 높새바람

빙하기에도 침식하지 않을

삼각 집 겨울 내내 쌓인

눈이여 안녕

 

잘 있어 베네딕트

너무나 맑지기 때문에

믿음이 흐릿한 성당

구름에 가려 그림자 잃은

하늘이여 안녕

 

잘 있어 법(法)이여

죄 저지르면

돈으로 보상하면 그만

지폐 들고 파출소 옆에서 갈긴

소피여 안녕

 

잘 있어 너무 호듯한

푸른 눈의 노랑머리 여자여

그대는 겉만 눈부실 뿐

안아도 안아도 정(情)을 모르는

서러움이여 안녕

 

잘 있어 시간이여

언제 떠날 텐가 하고

다그치며 유예된 일 년을

비자 속에 가두어버리던

관청이여 안녕

 

잘 있어 나의 복마전

내가 설 땅은 어디인가

새내기 배움터 방 구하려고

수요일마다 뒤적거렸던

신문 광고여 안녕

 

잘 있어 언어여

내 검은 눈동자 까만

머리칼 나의 모국어

유색종 유색어라던 바이에른

사투리여 안녕

 

잘 있어 대학이여

꿈 많은 젊은이들을

학문으로 마비시키는

너무나 설멍한 절름발이

교수여 안녕

 

잘 있어 성(性)이여

태양이 그리운 영국 공원

부끄러운 윤리의 껍질 벗고

알몸 태워야 하는

속살이여 안녕

 

잘 있어 고독이여

흑인 꼬마에게 눈 흘기고

자기 개 쓰다듬던

네 칸 방에 홀로 사는

노파여 안녕

 

잘 있어 친구여

자유롭고 싶어

스스로 독방에 가두고

마리화나와 동성을 찾는

젊음이여 안녕

 

잘 있어 비닐봉지여

아직 강가하지 못한

제 짝 기다리는 떨이여

아무래도 썩지 않는 자닝한

쓰레기여 안녕

 

잘 있어 제 1세계여

굶주리고 갇히고 병들어

목마른 흑귀자들

망각보다 더 두려운 그대의

무관심이여 안녕

 

아 뮌헨 볼수록

사랑스러운 나의 단미여

언제나 외면해야 했어

뭉개진 나의 콧대 지켜내려고

사랑하는 도시여 안녕

 

.......................

 

* 오스카 파니차 (1853 – 1921): 독일의 정신과 의사, 작가. 그는 교회와 국가를 비판하는 작품을 발표하여 바이에른에서 투옥되었는데, 스위스에서도 추방당했다.

 

실린 곳: 박설호 시집 "반도여 안녕" 울력 2024.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말테의 수기"에서 20세기 대도시, 파리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습니다. "그래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여기로 모여드는 것 같다. 그러나 내 눈에는 오히려 죽으려는 모습으로 투영될 뿐이다. So, also hierher kommen die Leute, um zu leben, ich würde eher meinen, es stürbe sich hier. "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대도시로 모여듭니다. 그러나 대부분 타향인의 삶은 참담함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인종 차별, 가난 그리고 소외감 등을 생각해 보세요. 먹고 살기 위해서는 알바 직을 얻어야 하는데, 안정된 일자리는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뜨내기 이방인의 부유하는 삶, 고독과 소외, 경제적 궁핍함, 외국인의 밑바닥 인생. 대부분은 대도시 뮌헨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뮌헨으로 몰려들곤 합니다. 갈망의 도시, 뮌헨은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생활비가 많이 소요되었지요. 방학마다 일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주위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독일에서 장학금은 등록금 면제가 아니라, 통장으로 입금되는 돈입니다. 처자가 달려 있으므로, 장학금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도시의 장학생들은 여유롭게 생활했지만, 뮌헨에 사는 나에게는 장학금은 생활비로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1986년 9월에 빌레펠트로 이사했습니다. 빌레펠트는 정갈한 대학 도시로서 공부하는 데 참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바이에른과 프로이센의 삶의 방식의 놀라운 차이가 생생하게 피부로 와 닿았습니다. 빌레펠트에서 처음으로 만난 한국 학생은 유학생, 최문규였습니다. 그분은 일면식도 없는 내가 빌레펠트에 정착하는 데  크고작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최문규 교수는 연세대에 근무하면서 훌륭한 저서를 많이 남겼는데, 최근에 안타깝게도 66세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한줌의 도덕 Minima Moralia"의 저자 테오도르 아도르노 역시 66년의 삶을 살았습니다. 고개 숙여  최문규 교수의 명복을 빕니다.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