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의 시

박설호의 시 '반도여 안녕 1'

필자 (匹子) 2024. 2. 21. 14:50

 

반도여 안녕 1

박설호

 

비행기 타고 반도

내려다보면 그제야

깨닫게 되리라 소나무

숲과 눈물 가득한 무등산

넓은 강이 보이고

한 많은 철조망이

멀어지는 것을

 

파농처럼 주먹으로 *

가슴 치며 끌려간

친구 소식에 찢어버린

일기장 이런 어리석은 놈

비행기 뜰 때까지

조심하지 말고 마냥

자학이나 해라

 

십 년 후에 나는

평화주의자가 되어

귀국 길에 올랐다

지가 묵자(墨子)라도 되나

아쉬운 눈물 몇 방울

맺혀 있는 망명객

슬프지 않는데

 

비행기에서 강산

내려다보면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소나무

숲과 눈물 말라가는 무등산

넓은 강이 보이고

다시 그 철조망들이

눈에 들어왔다 **

 

 

.........................

 

* 프란츠 파농 (1925 - 1961): 카리브해 출신의 프랑스 심리학자, 철학자. 신식민주의를 비판하였다.

** “저 밝게 빛나는 하늘에 올랐다가/ 갑자기 과거의 나라를 내려다보노라 陟陞皇之赫戯兮/ 忽臨聣夫旧郷” (굴원의 시 「이소(離騒)」의 한 구절)

 

실린 곳: 박설호 시집 "반도여 안녕 유로파", 력 2024.

 

 

'20 나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설호의 시, '뮌헨을 떠나며'  (0) 2024.03.07
박설호의 시, '청설모'  (0) 2024.03.02
박설호의 시, '반도여 안녕 4'  (0) 2024.02.02
박설호의 시, '윤이상'  (0) 2024.01.07
박설호의 시, '취리히에서'  (0) 2024.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