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림 (명저)

(명저 소개) 캐럴린 머천트의 '자연의 죽음'

필자 (匹子) 2024. 1. 13. 11:22

미국의 에코페미니스트, 캐럴린 머천트 ( Carolyn Merchant, 1936 - ) 의 『자연의 죽음. 에콜로지 그리고 과학 혁명The Death of Nature: Women, Ecology and the Scientific Revolution』 (1980)은 에코 페미니즘의 이론적 논거를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한 책입니다. 이 책은 현대 과학의 발전 과정, 특히 16세기, 17세기의 과학의 발전이 일방적인 방향으로 전개된 것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자연과학은 머천트에 의하면 기계와 기게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자연이라는 거대 영역의 가치를 훼손하고 무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환경, 사회 그리고 문학 등의 제반 영역은 기계적 자연 과학에 의해서 잠식되고 왜소하게 변모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질적 자연의 가치, 영혼적인 특징 그리고 여성적인 특징이 차단되고 무시당하며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많은 동서양의 여성 작가들이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한 단적인 예로 우리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나의 책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3』, 울력 2021, 171 – 192쪽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책에서는 프랑켄슈타인, 루소 그리고 메리 셸리의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 등으로 대변하는 남성 연구가들의 집요한 탐험 작업이 얼마나 세계의 일방적인 문제만을 집요하게 천착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습니디.

 

 

머천트의 명저 『자연의 죽음』의 압권은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제 7장 그리고 제 11장이라고 여겨집니다. 제 7장은 “자연에 대한 지배”를 다루고 있으며, 제 11장은 “자연을 논한 여자들”, 특히 앤 콘웨이의 놀라운 철학 사상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제 7장의 핵심 사항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자연 과학 기술과 관련됩니다. 서양의 자연 과학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연구 작업으로 시작됩니다. 베이컨은 자연을 노예로 만들고, 속박하여, 기계적 기술로써 조형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자연은 베이컨에 의하면 세 단계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1. 자유로운 상태. 자연은 마치 공공의 매춘부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2. 실수의 상태. 자연은 다만히 내버려두면 마치 음탕한 여자가 그러하듯이 간음을 일삼는다고 합니다. 3. 속박의 상태. 그렇기에 인간은 자연을 구속하여 "기혼녀"로 가두어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한 남성 중심주의의 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령 프리드리히 실러는 장시 「종 die Glocke」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여자에게 고삐가 풀어지면 참담하도다.” 여성을 음탕한 존재로 미리 설정하고, 무조건 재갈을 물리려고 하는 태도는 동양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한술 더 떠서 자연을 마치 마녀를 고문하는 방식으로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연의 가슴은 광산과 동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은 갱로 (여성의 질)를 파고들어서, 자연의 내장을 뒤집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중세 시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종교 재판소는 약초를 다루는 여성들을 마녀로 규정하면서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종교 재판관은 마녀로 붙잡힌 여성을 발가벗긴 다음에 형틀에 매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상반신과 하복부를 갈라 고문하였으며, 끝내는 화형대에 묶은 다음에 불태워 죽였습니다.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자연 탐구에서의 기계의 도입 그리고 작동은 마녀에 대한 고문의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캐럴린 머천트는 철학과 환경 문제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뒤이어 자연과학은 기계를 활용함으로써 자연을 헤집고 파괴하였습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영혼과 육체를 이원론으로 구분하면서 기계의 물질 탐구를 정당화하였습니다. 앤 콘웨이 (Ann Conway, 1631 – 1679)는 귀족으로 태어났으므로, 과학과 철학 그리고 의학 등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미는 퀘이커 종파를 호의적으로 대했으며, 카발라 신비주의와 연금술에 관해서도 많은 지식을 쌓은 철학자입니다. 그미의 책 『고대 철학과 현대 철학의 원리The Principle of the Most Ancient and Modern Philosophy』는 1690년에 간행되었는데, 라틴어 판본에는 저자가 반 헬몬트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이 책을 간행한다는 것 자체가 금기인 시대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앤 콘웨이의 사상이 나중에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입니다. 라이프니츠는 반 헬몬트의 문헌이 앤 콘웨이에게서 비롯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는데, 앤 콘웨이의 문헌을 높이 평가하고, 거기서 자신의 단자론의 모티프를 발견하기에 이릅니다. 실제로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은 영혼과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육체와 영혼은 같은 실체로 이루어져 있고, 단지 양태만 다르기 때문에 상호 교환적이라고 합니다. 카발라 신비주의에 의하면 영혼은 그 중심으로부터 빛을 발산하는데, 스스로 확대되거나 수축이 가능하며, 이를 무수하게 반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라이프니츠는 창조된 세계 안에서 존재의 지위는 무한하게 상승한다고 보았습니다. 먼지와 모래, 돌과 땅, 동식물 그리고 인간 등은 차제에 가장 고상한 정신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앤 콘웨이의 지론이었는데, 라이프니츠가 그미의 사상에서 재확인한 것이었습니다. 물질의 발전 과정은 나중에 헤르더에 의해서 승계된 바 있습니다. 오늘날 신유물자로 자처하는 제인 베넷 역시 헤르더를 자주 인용하는데, 헤르더의 발언은 앤 콘웨이의 사상적 모티프로 귀결되는 사항입니다.

 

라이프니츠는 수학의 영역에서 미적분을 연구했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확신했습니다. 즉 피조물 안에서는 정신이든 육체든 간에 무한성이 존재하는데, 제각기의 피조물이 무한한 발전을 거듭함으로써, 무한성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고 했습니다. 이는 앤 콘웨이가 도출해낸 사상으로서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나드는 앤 콘웨이의 저서에 이미 언급된 바 있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물질의 가장 작은 입자 속에는 피조물과 세계가 존재하고, 동식물 그리고 이들의 생명력과 혼들이 존재한다고 말입니다. “물질의 각부분은 각종 식물로 가득찬 정원이며, 물고기로 가득 찬 연못이다.(Leibniz: Monadologie, Philosophische Schriften, Bd. 6, S. 598 - 606.)

 

캐럴린 머천트의 책 『자연의 죽음』을 읽으면 우리는 많은 것을 유추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에서 핍박당하고, 학문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없었으며, 태어나는 순간부터 성적으로 차별당하는 수모를 겪어 왔다는 사실 말입니다. 『자연의 죽음』은 한마디로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고찰한 자연 그리고 자연과학에 관한 역사 연구의 서적입니다.

 

 

한국어 판: 역자: 전우경, 이윤숙. 번역은 가독성에 있어서 매우 훌륭합니다. 다만 몇몇 전문 용어 그리고 인명표기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볼게요. natura naturans 를 "창조하는 자연"으로, natura naturata를 "자연스러운 창조"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수정을 요합니다. 전자는 산출하는 자연으로, 후자는 산출되는 자연으로 번역하는 게 타당합니다. 혹자는 전자를 능산적 자연, 후자를 소산적 자연으로 번역하는데, 이 역시 내용상으로 틀리지 않습니다. 이 용어는 스피노자가 자주 사용했는데, 근원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산출하는 자연은 신 내지는 절대자의 권능과 관련되고, 산출되는 자연은 삼라만상의 피조물을 가리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