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Bloch 흔적들

블로흐: 방해하는 망상

필자 (匹子) 2020. 9. 1. 11:36

사내는 어둠 속에 서성거리면서, 대체로 자기 자신을 성찰하거나 거울에 비춰보지 않는다. 사내는 컨베이어 시스템 옆에서 하루 여덟 시간 일한다. 말하자면 동일한 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마치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처럼 거의 실종 상태에서 일하는 셈이다. 사내는 아주 아름다운 눈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50대의 그 사내를 사랑하지 않는다.

 

바로 그곳에 다른 사내가 나타나서, 자신이 어떻게 공산주의자가 되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사내는 가난하게 살아왔으며, 많은 분야에서 무산계급과 함께 노동에 임했다고 한다. 인품의 측면에서 사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적개심 없은 얼굴에는 여전히 슬픔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시민 주체 속에는 부르주아가 숨어 있어.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동지들 사이에는 사악한 인간이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 신에게 은총을 바랄 수밖에.”

 

뒤이어 그는 노동자 계급의 소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첨가하였다. “그래서 너희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 미래의 새로운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관해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말이야. 너희는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프로이센 특유의 정확성을 지니고 있어, 만약 어떠한 사회가 출현하게 될지 알려고 한다면, 너희는 모든 것을 마치 오스트리아 사람들처럼 내일로, 아니 그 다음날로 연기할 게 뻔해. 가령 1789년 제 3의 평민 계급이 혁명을 일으켰을 때를 생각해 봐. 프랑스인들은 사회 형태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어. 그렇다고 해서 신중한 몽상가들도 아니었지.

 

그래도 당시에는 최소한 기억해내야 하는 많은 내용이 자리하고 있었어. 당시에 ‘황새가 된 칼리프’와 같은 사람들은 낯선 문제에 개입할 필요가 없었으며, 그저 혁명이 그 자체 마법에 홀린 부엉이, 즉 아름다운 공주라고 믿으면 족했을 뿐이야. 너희들 또한 조만간 도래할 미래에 신중할 정도로 머뭇거리고 있어, 그럼에도 너희는 오래 전부터 마치 하나의 기적과 같은 무엇을 꿈꾸고 있어, 이 경우 노동자 계급은 마치 경건한 신앙인처럼 여겨진단 말이야.

 

너희는 냉엄한 자세로 궁핍함과 착취를 극복하려 할 뿐 아니라, 아직도 결판나지 않은 땅에서 멍하니 전인적 인간 내지 새로운 인간만을 갈구하고 있어. 현재의 무산계급은 대부분의 경우 실패한 소시민에 불과해. 예컨대 민중성을 동경하면서, 낡아빠진 붉은 소파에 앉아 있는 국가의 관리에게 쏜살같이 달려는 자들을 생각해 봐.

 

국가의 관리는 너희의 경제적 여건과 매우 흡사한 어떤 계급의식에 관해 연설하지만, 우리에게는 기껏해야 간단한 멜로디로 들릴 뿐이야. 흐릿하지만 전혀 즐겁지 않는 멜로디를 생각해 봐. 멜로디를 듣는 순간 불만족의 느낌만 감지될 뿐이니까. 그럼에도 오늘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식의 내용이 분명히 전해지는 게 사실이야. 이런 식으로 터져 나오는 멜로디는 설령 자동차 소음 속에 뒤섞여 있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쉽사리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하게 울려 퍼지고 있어."

 

기이한 사내는 이런 식의 발언을 큰 소리로 소리쳤다. 마치 고향을 상실한 것 같았고, 그저 이따금 혼자서, 혹은 아는 사람끼리 모여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술을 마시곤 하였다. 사내는 대화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창의적인 사고를 부추겼지만, 사회주의 동지들이 자신을 얼마든지 실망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처음부터 개의치 않으려고 작심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사내는 왕년에 시민 사회에서 자신을 실망시킨 바 있는 자들을 현혹시킨 바 있지만, 적어도 사회주의 노동자들에게만큼은 어떠한 거짓말도 전하려고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적어도 시민 사회의 승리를 논할 때 놀랍고도 인간적으로 위대한 무엇이 언급되곤 하지만, 주어진 구체적 현실의 토대는 분명히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사실 무산계급이야 말로 스스로 하층민이기를 포기하려고 하는 유일한 계급이다. 아니, 스스로 위대한 계급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하지도 않고 그렇게 주장할 수도 없다. 어쩌면 모든 프롤레타리아 문화혁명은 거짓이며, 시민 문화에 감염되어 있는지 모른다. 만약 국가 기관이 무산계급을 폐지할 경우, 이들은 오로지 식욕 충족을 위한 찬장의 열쇠만을 내놓겠노라고 항변할 테니까 말이다. 이 경우 국가 기관은 놀랍게도 무산계급이 맛있는 음식이 담겨 있는 찬장일 수 있으며, 동시에 음식 자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고려하지 않은 셈이다.

 

무산계급은 급진적 태도를 취하며 자신이 완전히 비인간적으로 취급당한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론을 내세운다. 즉 지금까지 한 번도 인간적인 삶이 존재한 바 없으며, 인간을 옥죄이고 노예 내지 착취자로 전락시킴으로써 인간의 삶을 거짓된 것으로 만든 것은 오로지 경제적 제도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뒤이어 무엇이 도래할 수 있을까? 미래에는 어쩌면 착취자가 출현하지 않을지 모른다. 설령 어떤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깨끗한 식탁만큼은 주어져 있을 것이다. 인간이 먼 훗날 자유롭게 변하거나 아직 그러한 상태에 도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배고픔을 채울 식탁만은 지니게 될 것이다. 물론 가난이 척결된 뒤에도 인간은 분명히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어떤 거짓으로 조건화되어 있을지 모른다. 우연, 근심 그리고 숙명이 자리할 공간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죽음을 차단시킬 약초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의 동지애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인간의 본성 속의 무엇이지, 인간을 원래의 자유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비참한 경제의 구체적 현실적 조건은 아닐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기이한 공산주의자가 무언가를 강하게 피력하면서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경우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주장은 그 자체 신뢰할만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은 이제 서서히 발견되어야 하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동화 속에 등장하는) 마술사의 포대기를 마구잡이로 헤집지 말아야 하며,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어떤 아름다운 공주와 직접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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