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단상

(단상. 351) 성 단상 (6)

필자 (匹子) 2017. 2. 13. 12:02

41: 호모 아만스는 자구적으로도 강력한 저항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사랑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사회적 국가적 강령을 전적으로 추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써 호모 아만스는 인내 그리고 저항의 자세, 때로는 아나키즘의 태도를 고수할 수밖에 없다.

 

42: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네발짐승으로서의 직립원인homo erectus”과는 구분되는 명칭으로 이해될 뿐이다. 그것은 20세기 초반까지 가부장주의 시민 사회에서 이성만을 강조하다 제 역할을 다한, 시대착오적인 개념이다. 생태주의를 고려할 때 호모 사피엔스는 더욱더 진부한 개념이다.

 

43: 개별적 인간동물은 무의식의 대양에서 이리저리 유동하는 충동의 물방울이다. 아니, 호모 아만스는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과 같다. 물론 인간의 행동에 이성이 작용할 수 있지만,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가슴 그리고 발이다. 전자는 감동하게 하고, 후자는 우리로 하여금 어디론가 이동하게 하지 않는가?

 

44: 강제적 성윤리가 불필요한 시점인 오늘날에 호모 사피엔스의 역할을 과도하게 맹신하는 태도 역시 그야말로 경직된 편견을 고집하는 몽니에 해당할 뿐이다.

 

45: 호모 사피엔스가 기능상으로 우리에게 불충분한 의미를 가져다주는 까닭은 인간이라면 누구든 간에 이성 그리고 본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식욕을 위해서 빵과 밥이 중요하다면, 성욕을 위해서는 사랑과 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주지하다시피 정치적 경제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식욕이 성욕보다 더 절실하다. 그렇지만 식욕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사랑과 성이다.

 

46: 호모 아만스homo amans”는 가장 정치적 의미를 표방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가장 사적인 삶에 관한 영역, 사랑, 결혼, 출산 등은 주어진 특정한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 등의 토대 하에서 유기적 관련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47: 사생활 (私生活)은 사회생활 (社会生活)과 겉보기에는 반대되나, 기능적 의미를 고려할 때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사적privat”이라는 말은 라틴어에 의하면 타인으로부터 빼앗은privare”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행복한 사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은 그만큼 사생활을 누릴 수 없는 사람의 삶의 가치를 빼앗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사랑과 성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그렇기에 가장 정치적 사안과 관련될 수밖에 없다. “성 정치 Sex-Politik”는 그 자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48: 모든 심리학의 관점은 사회 경제적 문제를 함께 고려하지 않을 때 이른바 임상 실험이라는 좁은 영역의 한계를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49: 사랑과 성에 관한 도덕적 관습은 다른 공간, 다른 시간 등을 전제로 할 때 절대적인 게 아니라, 언제나 상대적 의미를 지닐 뿐이다. 만약 절대적으로 유효한 성도덕이 지구상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어떤 주어진 관습과 도덕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용인하는 처사나 다를 바 없다.

 

50: 지금 여기의 성도덕은 엄밀하게 고찰하면 과거의 다른 지역에서의 그것과는 다르다.

 

51: 어떤 연애 소설이 내용상으로 그리고 주제 상으로 오로지 인간의 사랑과 성만을 다루고 다면, 그 작품은 통속적 키치 kitsch”와 같다. 하나의 소설이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포괄하거나 암시한다면, 의미심장한 수준작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52: 소년 소녀 가장 한명씩 친구 혹은 자식으로 삼을 수는 없을까?. 나이 어리다고 해서 사랑받고 싶으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53: 영혼은 사랑과 우정으로 인간 개체를 연결시켜주는 연결고리이다.

 

54: 예컨대 남자와 여자는 자아의 개념을 고려할 때 별개의 존재이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영혼의 개념을 고려할 때 어떤 전제 조건 하에서는 영혼의 신비적 합일unio mystica”을 통해서 하나의 동일한 존재로 이해될 수 있다. 즉 서로 사랑한다는 전제조건 하에서 말이다.

 

55: 영혼은 때로는 주체의 개념을 확장시키기 위한 촉매로 활용될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주체의 개념은 대부분의 경우 개인 즉 나누어지지 않는 존재 in + dividuum”으로 고착되고 말았다. 인간의 소외 현상 역시 고립된 개인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보다 큰 자아Atman”의 삶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정이라는 영혼의 아우르기를 통해서 실천될 수 있을지 모른다.

 

56: 인간은 한편으로는 생물학적 조직체로 본능에 의해서 움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에 이끌리곤 한다. 이에 관해서는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이 언젠가 언급한 바 있다. 개개인은 자신의 고유한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지만, 언제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로 인하여 여러 가지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규범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개인주의를 반대하지 않고, 주어진 사회 내에서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 불안 그리고 절망 등을 극복하려고 평생 노력한다.

 

57: 그러나 사회가 발전할수록 인간과 인간 사이를 결속시켜주는 관계의 그물망은 더욱더 느슨해지는 법이다. 오늘날 여성들이 자신의 자유를 구가하게 되는 것도 페미니스트들의 공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느슨하게 변화된 관계망의 결과인지 모른다.

 

58: 영혼은 근대에 이르러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오성Ratio”, 남성적인 것 그리고 합리적인 것이 득세하고, 감성, 여성적인 것 그리고 영혼적인 것은 서서히 무시되었다. 자연신, 자연 주체의 개념, 질적 자연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내몰렸다. 그러나 영혼은 주체 속에 차단되어 살아가는 개별적 인간의 개념을 확장시키게 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영혼이다.

 

59: 영혼의 무게는 과연 얼마나 될까? 1907년에 미국 매사추세츠의 어느 의사, 던켄 맥더갈Duncan Macdougall은 실험을 통해서 인간의 영혼의 무게가 21그램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수십 명 환자의 몸무게를 살았을 때와 죽었을 때를 비교해본 결과 그러한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 후에 네덜란드의 의사, 찰베르크 반 첼스트Zaalberg van Zelst 그리고 J. L. Wl P. 마틀라J. L. W. P. Matler는 영혼의 무게가 69.5 그램이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중요한 것은 영혼의 무게가 얼마인가? 하는 물음이 아니라, 영혼이 무게로 측정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생명체는 그게 에테르-개체Äther-Körper”이든 아니면 아스트랄-개체Astral-Körper”이든 간에 그 자체 무게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