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3) 브레히트의 이단자의 외투

필자 (匹子) 2023. 3. 11. 14:20

(앞에서 계속됩니다.)

 

그러나 그미는 당장 돈이 필요합니다. 생계를 위해서만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미는 세금을 내야 합니다. “세금은 너무나 과중했으며, 빵 가격이 최근에 폭등했다.”라는 구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미의 돈은 그미 혼자만의 돈이 아닙니다. 그미의 돈은 세금으로 징수될 수 있습니다. 세금으로 징수된 돈은 종교 재판소에서 쓰일 수 있습니다. 종교 재판소의 돈은 브루노를 심문하는 재판관의 “봉록”으로 지불될 수도 있습니다.

 

13. 외투의 상징성: 친애하는 K, 외투는 무엇을 상징하는가요? 외투는 어쩌면 브루노의 자유를 상징하는지 모릅니다. 브루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외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거든요.” 이로 미루어 외투를 쟁취하는 일은 브루노의 자유를 되찾는 일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재단사 부인은 다음에 찾아가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를 원하는 사람이 어째서 그따위로 처신합니까?” 바로 이 질문은 마치 번개처럼 브루노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쳤습니다.

 

지금까지 브루노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습니까? 그는 학자였습니다. 학자는 새로운 지식을 깨우쳐, 어리석은 인민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하여 학자는 인민들이 더 나은 삶을 이룩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지동설 자체는 단순히 물리학적 공식은 아닙니다. 지동설은 기독교 중심의 세계관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지동설을 깨우치면, 인민은 더 이상 권력의 교회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민에 대한 교회의 억압은 사라질 것입니다. 지동설은 세계와 우주에 대한 학문적 지평을 높이며, 동시에 인민의 해방을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입니다. 브루노는 이 사실을 처음부터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14. 브루노, 외투를 찾는 데 성공을 거두다: 준토 부인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를 원하는 사람이 어째서 그따위로 처신합니까?” 하고 대꾸했을 때, 브루노는 외투를 되찾기 위해서 모세니고를 고소하기로 결심합니다. 왜냐면 모세니고가 자신의 외투를 압류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지동설이 가난하고 헐벗은 인민의 삶을 위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외투를 정당한 방법으로 준토 부인에게 돌려주는 일과 다를 바 없습니다.

 

브루노는 고소를 통해서 끝내 외투를 찾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하여 준토 부인에게 외투를 되돌려줍니다. 그러나 브루노는 종교 재판소에서 자신의 지동설을 증명해내지 못합니다. 왜냐면 지동설은 주어진 여건상으로는 아직 증명해낼 수 없는 비가시적인 학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유물론자인 브루노는 외투를 둘러싼 가시적인 투쟁에서 성공을 거둡니다. 마지막 대목은 너무나 눈물겹습니다. “‘그는 사실 지금 당장 외투가 필요할지도 모르지요. 왜냐하면 그는 로마로 송치될 텐데 이번 주 안에 그리로 떠나야 하니까 말입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때는 1월 말이었으니까.”

 

15. 모세니고의 밀고의 의미는? 물론 모세니고가 종교 재판소에 브루노를 고발한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브루노는 수사 계급을 “인민을 어리석게 만드는 그룹”이라고 매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니고는 마음속으로는 브루노의 발언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모세니고가 당국에 브루노를 고발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즉 그는 오래전부터 브루노를 초대하여 응용 학문을 전수받고 싶었고 이를 위해서 외국에 체류 중인 브루노를 베네치아로 초대하였습니다. 이를테면 베네치아의 유지인 모세니고는 검은 마법을 배우게 되면, 자신의 경제적 이득을 확장시키는 데 유리하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브루노는 순수 자연과학자이며, 동시에 순수 정신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를 확장하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베네치아의 유지들에게 다만 수학적 지식을 약간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모세니고는 이에 대해 엄청나게 실망합니다. 게다가 브루노를 위해 지불한 식대, 숙식비 등을 고려하면 불필요한 경비를 너무 많이 지출했다고 생각합니다. 요약하건대 모세니고가 브루노를 고발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경제적 손실 때문이었습니다.

 

16. 준토 부인, 종교 재판소, 브루노 그리고 모세니고 (1): 그렇다면 우리는 준토 부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준토 부인은 일견 몹시 이기주의적인 여자처럼 비칩니다. 그미는 오로지 빚을 돌려받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미는 브루노가 처한 불행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매정한 소시민 여자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준토 부인은 힘들게 살아가는 여인입니다. 준토 그리고 준토 부인은 힘들게 재단사로 일하면서 과도한 세금을 납부해야 하고, 최근에 인상된 빵 가격을 감당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외투값은 노동의 대가로 돌려받아야 합니다. 힘든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준토 부인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브레히트의 여러 작품에는 억척어멈과 같은 생활력이 강한 여인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 빵 가격을 인상하게 하고, 과도한 세금을 거두게 하는 기관은 국가입니다. 국가는 인민을 수탈하는 가렴주구의 정책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에는 두 개의 지지 그룹이 존재합니다. 그 하나는 교회이며, 다른 하나는 모세니고와 같은 명문 귀족입니다. 교회는 국가의 위계질서를 보조하고, 귀족들은 국가의 경제적 질서를 보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17. 준토 부인, 종교 재판소, 브루노 그리고 모세니고 (2): 종교 재판소는 어째서 브루노를 심문하고 결국 화형에 처하게 할까요? 그것은 브루노가 지니고 있는 이단적 자세 때문입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만물에 신성이 도사리고 있다고 믿고, 더 이상 성당에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로마 가톨릭이 내세우는 모든 세계관이 절대적으로 타당하다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와 국가의 담합으로 이루어진 정치적 위계질서는 허물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신학과 정치학이 마련한 기독교 사상적 체계는 더 이상 존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종교 재판소는 인민으로부터 거두어들인 과도한 액수의 세금을 이단자를 처단하는 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18. 외투는 이단적 사고의 물질적 토대에 관한 비유이다: 그렇다면 브루노는 어째서 한편으로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법적인 투쟁을 벌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견 그렇게 하찮게 보이는 외투의 문제에 골몰하여, 외투를 강제로 압류하고 있는 모세니고와 법적 다툼을 벌였을까요? 어쩌면 브루노는 외투를 돌려받는 일이 자신의 지동설을 입증하는 일과 근본적으로 같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왜냐면 지동설에 대한 입증은 인민으로 하여금 미래에 더 나은 경제적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토대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천체에 관한 자신의 연구 그리고 자신의 세계관과 관련된 브루노의 법적 싸움은 준토 부인이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돌려받게 하는 “과업”과 근본적으로 같습니다. 아니, 브루노로서는 범신론 내지는 우주에 관한 자신의 학문적 입장을 증명해내는 일보다는, 준토 부인에게 외투 값을 돌려주는 일이 더 수월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왜냐면 그러한 일은 가시적으로 증명되는 일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단자”의 외투는 자신의 이단적 사고의 물질적 토대에 관한 비유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