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국가주의의 긍정적 유토피아 모델: 조지 오웰은 1948년에 국가 소설의 마지막 디스토피아에 해당하는 작품인 『1984년』을 발표했다. 많은 사람들은 오웰의 작품을 “정치적 유토피아의 대미를 장식하는 검은 디스토피아”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해에 간행된 버러스 프레드릭 스키너 (Burrhus Frederic Skinner, 1904 – 1990)의 『월든 투』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리 말하지만 스키너의 작품은 일련의 디스토피아 문학작품이 득세한 20세기 전반의 마지막에 출현한,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인 사회상을 표방하고 있다.
특히 『월든 투』가 제 2차 세계대전 와중에 집필되기 시작했다는 점, 인간의 심리 속에 도사린, 인간에 대한 공격성향을 극복하기 위한 단초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그 자체 독창적인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나아가 작품은 20세기 전반에 출현한, 어두운 경고의 상으로서의 디스토피아 대신에 새로운 소규모 공동체의 유토피아의 확산 가능성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헌이 아닐 수 없다. 스키너는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기주의의 정복 욕구 내지 공격성향을 떨치기 위한 방편으로서 비-국가주의에 근거한 소규모 공동체의 형성과 발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하고 있다.
2.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 스키너는 사회 심리학 내지 교육 심리학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미국의 학자이다. 교육 심리학에서는 다음과 같은 본질적 질문을 다루곤 한다. 인간의 발달 능력은 유전적 요인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주위 환경의 요인에 의해서 커다란 영향을 받는가? 하는 질문 말이다. 가령 어린이의 지적인 능력은 “떡잎부터 다르다.”는 속담대로 유전적으로 타고나는가? 아니면 어린이는 주위 환경의 변화 내지 교육 습관에 의해서 더욱더 커다란 영향을 받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전자를, 스키너는 후자를 선택하였다.
촘스키는 인간의 선험적 능력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피교육자의 변화의 여지를 어느 정도 무시하고 있으며, 스키너는 행동주의를 처음부터 과감하게 도입함으로써, 인간의 천부적 선험적 능력의 차이를 부분적으로 좌시하고 있다. 어쨌든 이 질문은 적어도 교육 심리학에서 끊임없이 논의될 난제임에 분명하다. 스키너는 『조직체의 행동 The Behavior of Organisms』 (1938), 『과학과 인간 행동 Science and Human Behavior』 (1953) 그리고 『행동주의에 관하여 About Behaviorism』 (1974) 등과 같은 일련의 학문적 논문과 저서·를 통해서 인간의 행동과 주위 환경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오랫동안,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에 이르기까지 주로 쥐와 비둘기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행동주의를 연구해 왔다.
3. 스키너의 행동주의 실험과 인간의 행동: 문제는 자신의 이론이 과연 구체적 현실의 조건 속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물음에 달려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특정한 조건의 현실에서 생활하면, 자신의 습관과 심리적 태도 역시 조금씩 순응하게 된다고 스키너는 생각했다. 만약 주어진 특정한 조건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면, 인간은 지적 능력과 심리적 영역에서도 더 향상될 수 있을지 모른다.
스키너의 이러한 사고는 사회유토피아의 소설, 『월든 투. 공격성향으로부터 해방된 사회에 관한 비전』(1948)으로 결실을 맺었다. 스키너 역시 고전적 유토피아의 모델을 고려하여 작품을 집필하였는데,. 이를테면 조지 오웰의 『1984년』이 스키너의 작품과 비교될 수 있다. 사회주의자, 조지 오웰이 스탈린주의를 경고함으로써 역사와 정치에 관한 자신의 회의주의의 시각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면, 스키너는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의 경향을 지닌 사상가들로부터 처음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 그는 1944년에 간행된 앨리스 F. 타일러Alice F. Tyler의 『자유의 효모 Freedoms Ferment』라는 책을 읽고, 이상적 공동체에 관한 영감을 얻었다.
4. 타일러의 『자유의 효모』: 타일러는 『자유의 효모』에서 19세기 초 이후의 시점부터 미국에서 전개된 종교적 실험과 관련된 일련의 운동을 비판적으로 서술한 바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출신이 다른 여러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종교적 실험을 추구하였는데, 이들 가운데에는 퀘이커 교도, 모르몬교도 그리고 그밖에 여러 가지 유형의 종교적 집단이 미국 전역에 산발적으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무엇보디도 세계의 종말론을 신봉하고 있었다.
그들은 1844년 10월 22일을 세계 종말의 날로 규정하였다. 종교인들이 파국이 도래할지 모르는 휴거의 날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심령학적으로 어떤 끈끈한 유대감을 고수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들의 종교 단체는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균등을 추구하고, 지역 공동체를 결성하여 여러 가지 실험을 감행하였다. 가령 인간의 개혁, 신앙 운동에 바탕을 둔 자활 자치의 거주 공동체에서의 일련의 노력 등이 바로 그러한 실험이었다.
이들의 공동체는 타일러의 견해에 의하면 때로는 방종한 사랑의 삶 그리고 주위의 이웃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고립적으로 살아가는, 이른바 극단적 외곬수의 신앙 공동체로 변질되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861년 미국의 남북 전쟁이 발발할 무렵까지 사회적으로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공동체는 미국에서의 감옥의 철폐, 교육의 개혁, 죄수들의 교화 작업, 노예제도 비판 그리고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서 크게 공헌하였다.
5. 소로의 『월든, 숲속의 삶』: 스키너는 작품의 집필 시에 또 한 권의 책을 고려하였다. 그것은 1854년에 간행된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월든, 혹은 숲 속의 삶 Walden, or Life in the Woods』을 가리킨다. 작품의 제목 “월든” 역시 여기서 착안한 것이다. 소로는 1845년 매사추세츠의 숲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혼자서 고독하게 살았다. 이는 “자연으로부터의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어떤 대안적 삶의 방식을 발전시키는 과업이었다. 소로의 책은 문학 작품이라기보다는, 일기 형식의 기록이다. 도합 1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양한 계층 사람들에게 헌정되어 있다.
1862년 3월, 죽기 2개월 전에 소로는 편집자에게 “숲속에서의 삶”이라는 부제를 생략해 달라고 요청했다. 왜냐하면 숲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기이한 일이 아니라, 자유인 내지 자연인이 행해야 할 필수적인 생활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요청은 수용되지 않았다. 소로의 작품은 나사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 등이 추구한 미국의 초월주의의 사고 내지 예술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세기 후반부에 이르러 소로의 책은 자연보호 운동 그리고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주의 내지는 무위의 금욕주의와 접목되어, 68 학생 운동 세대에게 커다란 영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소로의 작품의 제목은 스키너의 그것과 동일하지만, 공동체라는 점을 제외하면, 내용상으로는 어떠한 공통점도 드러나지 않는다. 스키너는 플라톤, 토마스 모어 그리고 벨러미 등의 유토피아의 전통을 고려하면서, 현대인들의 고립된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초월하기 위한 어떤 공동체의 삶의 가능성을 신중하게 타진하고 있다.
실린 곳: 오늘의 문예 비평 통권 96호, 2015년 봄호, 2015, (232 -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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