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Bloch 저술

박설호: (1) 에른스트 블로흐 읽기 (III) 서문

필자 (匹子) 2023. 4. 22. 11:12

 

서문

 

 

“인간은 항상 초보자이다.” (블로흐) “일곱 번 깊이 생각해야 영특한 사고가 태동한다. 그런데 그 사고는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떠올리면, 동일한 명제라 하더라도 다른 의미를 전해준다.” (블로흐) “사랑이란 어떤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향하는 여행이다.” (블로흐)

...........................

 

친애하는 J, 오늘 유난히 중국 발 미세먼지가 하늘을 잿빛으로 가리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사회의 제반 사항을 은폐하는 자본의 횡포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중국은 거대한 곰처럼 강성해지고, 일본 사람들은 후쿠시마 사태로 인하여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한반도는 여전히 반으로 동강나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가난과 폭정에 시달리며, 남한 사람들은 -빈부 차이가 온존하지만- 그런대로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무엇보다도 황금만능주의의 횡포입니다. 돈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고 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재화를 추종하고 있습니다. 당신과 같은 산업 노동자들은 여전히 힘들게 살아가고, 거대 기업들은 이익을 위해서 언제나 정리해고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반 사람들은 이에 대해 격분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자신의 비판력을 몇몇 엘리트 정치가에 맡기고, 월급에 자족하며 일상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렇기에 학문, 사회 정의, 역사, 예술 등 찬란한 인간 정서의 산물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망각은 고통조차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참담한 망각의 시대 – 탈 역사의 시대적 문턱에서 아기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아기의 이름을 “사상의 보석은 아직 숨어 있다.”라고 작명해 보았습니다.

 

이 책에 실린 글의 내용과 출처를 간략하게 서술할까 합니다. 제 1부 맨 처음의 글 「사상의 보석은 아직 숨어 있다」는 미발표의 글로서 블로흐의 문헌에 관한 나의 개인적 체험을 담고 있습니다. 「유토피아의 정신 1, 2」그리고 「혁명의 신학자로서의 토마스 뮌처」는 블로흐의 초기 작품에 관한 간략한 소개의 글입니다. 「문학과 환상에 관한 12개의 테제」는 실천문학 2000년 겨울 호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사람들은 환상을 대체로 부정적인 관점에서 고찰하는데, 논문은 이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습니다.

 

이어지는 글은 「수직 구도의 계층 사회에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입니다. 이 글은 에른스트 블로흐의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의 번역을 계기로 집필된 미발표의 글이며, 「자연법은 만인의 자유와 평등을 지향한다.」는 역자 후기로 이미 발표된 바 있습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고찰하면 인간은 언제나 신분 차이 내지 계층 차이의 사회적 구도 속에서 살아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필자는 법과 정의가 실제로 어떻게 활용되며, 만인의 평등을 지향하는 자연법의 이상이 어떻게 끊임없이 의식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구명하고 싶었습니다.

 

제 2부에 실린 글들은 모두 미발표 문헌들인데 유토피아 연구의 일환으로 집필된 것입니다.「천년왕국의 사고와 유토피아」, 「유토피아의 시간화, 혹은 시간 유토피아」그리고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주체 유토피아」등은 4권으로 이루어진 필자의 미발표 문헌, 『유토피아의 역사』에 수록된 것입니다. 여기서 필자는 유토피아의 역사에서 꼭 정리되어야 하는 개념들, 특성들, 역사철학적 전제조건들 등을 해명하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에 첨부된 「블로흐의 유토피아에 관한 반론과 변론 III」은 필자의 저서 『꿈과 저항을 위하여. 블로흐 읽기 I』에 수록된 문헌의 속편과 같습니다. 여기서 필자는 20세기 후반에 활동한 미하엘 빈터, 헬무트 빌케, 부르크하르트 슈미트, 롤프 슈벤터, 이매뉴얼 월러스틴, 마빈 클라다, 한스 프라이어, 바르바라 홀란트-쿤츠 등의 유토피아의 견해를 피력하고 블로흐와의 상관관계를 추적하였습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 그리고 미셸 푸코의 글은 수정 보완되어 함께 실리게 되었습니다.

 

(2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