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근대영문헌

서로박: 도리스 레싱의 '풀은 노래한다'

필자 (匹子) 2021. 5. 20. 10:55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 (Doris Lessing, 1919 - )은 올해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오늘 나는 레싱의 문학에 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레싱은 6살 나이에 1925년에 부모를 따라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레싱 가족이 정착한 곳은 지금의 짐바브웨에 해당하는 남부 로데지아의 평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곳 식민지를 다스리는 영국 장교였고, 어머니는 간호사였습니다. 도리스 레싱은 이곳에서 힘들고 불행한 삶을 보내야 했습니다. 척박한 땅에서의 힘든 삶은 그미의 문학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레싱의 가족은 아무런 수입을 벌지 못하고, 척박하고 황량한 아프리카를 등지고 영국으로 되돌아옵니다. 

 

도리스 레싱은 결혼 생활에서도 불행을 겪었습니다. 1939년에 프랑크 찰스라는 남자와 결혼하여, 아들과 딸을 낳았으나, 1943년에 이혼하였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남편과의 이혼이 아니라, 두 아이들과의 결별이었습니다. 전남편이 두 아이를 데리고 갔기 때문입니다. 레싱은 1945년에 독일에서 아프리카로 망명한 고트프리트 레싱이라는 남자와 결혼하였습니다. 두 번째의 결혼 생활도 4년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레싱이 펜을 든 때는 두 번째로 결혼하기 전이었습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미는 레싱이라는 이름을 고수했습니다.

 

도리스 레싱의 문학 세계는 대체로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1944년부터 1956년까지 그미의 관심사는 공산주의의 발전 과정이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사회주의 국가, 특히 소련에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작가의 정치적 입장과 관련됩니다. 식민지에서 경험한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의 대립과 애환은 그미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에 눈을 돌리게 했습니다. 1956년부터 1969년까지 레싱은 인간의 애정과 갈등이라는 심리적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가령 1962년에 발표된 대표작 『황금의 메모 첩 (The Golden Notebook) 』에는 “자유로운 여성 (free women)”으로서의 삶에 관한 문제가 과감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레싱이 관심을 기울인 것은 이슬람 신비주의에 해당하는 수피즘 사상입니다. 수피즘 사상은 기원후 600년경에 타나난 모하메드 종교와 관계되는 게 아니라, 이슬람의 신비로운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인류 역사 전체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이제 레싱의 첫 번째 작품인 『풀은 노래한다. The Grass is Singing』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소설은 그미의 첫 번째 작품으로서, 영국으로 되돌아온 그 다음해인 1950년에 발표되었습니다. 발표 직후에 레싱은 일약 문명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30년대와 40년대의 남부 로데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소설에서 불행한 결혼 생활과 어떤 끔찍한 파국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독자는 맨 처음 다음과 같은 살인사건을 접합니다. 즉 메리 터너는 45세 나이의 영국 출신의 여인입니다. 그미는 남부 로데지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누군가 그미를 살해했던 것입니다. 범인은 메리 터너의 집에서 일하던 흑인 모세로 판명되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살인 사건을 하나의 단순 사고로 축소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가령 정신 나간 남편, 젊은 소작농 마르스톤, 경찰 덴함 그리고 이웃집 농부들은 법정에서도 진실을 은폐하려고 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흑인 모세가 몰래 집으로 잠입하여, 여주인을 죽이고, 값비싼 물건을 훔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살해당한 여주인공과 그미의 결혼 생활에 얽힌 이야기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됩니다.

 

메리의 아버지는 철도청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는데, 술을 너무 좋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미는 학교를 조금 다니다가, 부모의 집을 떠나, 로데시아의 어느 소도시에서 여비서로 일하였습니다. 부모를 떠나 독립하게 되니, 메리의 마음은 한결 편해졌습니다. 이제 경제적 어려움도 없었고, 부모의 간섭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메리는 아무런 걱정 없이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남자를 사귀지 않은 것은 자신의 천진난만한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그미를 “노처녀”라고 쑥덕거렸습니다. 메리는 노처녀라는 표현에 충격을 받아서, 내심 원하지 않으면서도 남편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그미가 섹스에 관해서 거의 병적으로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농부 리처드 터너를 알게 되었을 때, 사랑과 성에 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그와 결혼하기로 성급하게 결정합니다.

 

리처드 터너 역시 “지저분한 성”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리처드로서는 처음에는 자신의 고적한 농장에서 함께 살아주겠다는 메리가 그저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그는 메리에게 불만을 토로합니다. 즉 자신의 아내 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한 만큼 일을 척척 해내지 못했고, 자신만큼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남편의 입장에서 볼 때 메리는 농촌의 비참한 현실에 몹시 실망했고, 특히 흑인 하녀 내지 흑인 노동자들을 다룰 줄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미가 팔을 걷어붙이고 억척스럽게 일하는 적극적인 스타일도 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메리에게는 사교성도 없었습니다. 그미는 지금까지 혼자서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온 터라, 주위에 살고 있는 백인 농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도 못했습니다. 메리 역시 자신의 결혼 생활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감지합니다. 자신이 보기에 남편은 농부로서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서, 결코 재정적 빈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힘든 상황 속에서 아무 희망 없이 살다가, 더 이상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됩니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흑인 노동자 모세가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리처드는 모세에 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를 노동자로 고용한 뒤에 채찍으로 그의 얼굴을 가격한 적이 있었습니다. 메리는 모세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메리는 한편으로는 모세에 대해 두려움을 품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동정합니다. 메리와 모세 사이에는 백인 여주인과 흑인 노예 사이의 거리감이 서서히 사라집니다. 어느 날 리처드가 그를 해고하려했을 때, 모세는 지금이라도 일을 당장 때려치울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지릅니다. 이때 메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제발 떠나지 말라고 모세에게 부탁합니다. 이로써 그미는 주인으로서의 권위를 모조리 팽개치고 맙니다. 모세는 농장을 떠나지 않습니다. 모세는 내심 백인 여주인의 콧대를 꺾은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이 발생한 다음부터 메리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즉 메리의 영혼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미는 어떤 기이한 정신 착란에 시달리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하지만, 유독 모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모세에게 향하는 어떤 “어두운 감정”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찬란한 감정으로 바뀌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이른바 두려움과 사랑이 합쳐진 신비로운 감정이었습니다. 모세를 만난 뒤부터 여주인공은 꿈을 꿉니다. 이 꿈속에서 드러나고 있지만, 모세에 대한 그미의 감정은 그미의 내면에 억압된 성적 감정 그리고 두려움의 콤플렉스에서 비롯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메리가 모세를 자신의 아버지와 동일시한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에 그미가 술 취한 아버지를 증오하여 그의 곁을 떠났듯이, 이번에는 모세의 검은 피부가 한편으로는 신기하게 다가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두려움에 사로잡히도록 작용하였습니다. 사랑과 두려움이 합쳐진 감정은 한 인간으로 하여금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듭니다. 이는 결국 끔찍한 비극을 불러일으키지요.

 

뒤이어 어떠한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리처드는 자신의 농장을 이웃 소작인 마르스톤에게 팔아넘기려고 합니다. 마르스톤은 다음과 같이 착각합니다. 즉 모세가 아름다운 백인 부인인 메리 터너를 유혹하려는 흑심을 품고 있다고 말입니다. 자고로 까만 수컷 말이 아름다운 백마 주위에서 맴돌고 있을 때, 주위의 카우보이들은 이를 수수방관하지 않습니다. 소설은 끝내 흑인 노예 모세와 백인 여주인 메리 사이에 과연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해서 서술하지 않습니다. 노예가 메리의 방에 침입하여, 그미를 끌어안고, 성을 탐하려고 한 것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합니다. 설령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메리는 모세에게 자연스러운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그를 끌어안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메리의 감정 속에는 항상 두려움이 자리해야만, 어떤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묘한 감정은 메리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다음의 사실입니다. 이웃 소작인 마르스톤이 모세가 백인 여주인을 탐하려고 한다는 데 대해 격분하여, 모세를 심하게 구타합니다. 마르스톤은 자신과 무관하지만, 다만 백인이라는 이유에서 메리의 편에 서서 모세를 사악한 인간으로 규정했던 것입니다. 거의 초죽음이 된 모세는 동네에서 영영 쫓겨납니다. 처음에는 메리는 마르스톤에 대해 고마움을 표합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사라지면, 자신은 심리적 안도감을 느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메리의 마음속에는 일말의 허전함이 떠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허전함은 불안감과 뒤섞여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죽도록 얻어맞은 흑인이 자신의 침실로 침입하여, 자신의 육체를 탐하고 매질할지 모른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메리의 불안감은 거의 병적으로 치닫습니다. 결국 메리는 남편과 함께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그미는 15년의 참혹한 세월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날 밤 메리는 모세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소설은 기법 상으로는 다소 인습적인 특성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작가는 한편으로는 주인공의 병적 심리 상태를 세밀하게 서술할 뿐 아니라, 흑인과 함께하는 백인들의 실제 삶을 정교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아프리카 대륙에 발을 들여놓은 정복자들의 심적 상태에 관한 작가의 예리한 서술입니다. 도리스 레싱은 한편으로는 아무 생각 없이,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극복하기 위해서 착취자로 돌변한 정복자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