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곤 3

(명시 소개) 윤동주의 시, 「소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무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 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너: 아름다운 시로군요. 어째서 선생님은 윤동주의 시 가운데에서 이 작품을 선정했는지요? 나: 모든 시는 우리에게 기억의 퍼즐을 안겨줍니다. 기억은 여러 가지 편린의 상..

19 한국 문학 2023.02.06

(명시 소개) 조달곤의 시 「북십자성」(2)

(앞에서 계속됩니다.) 내 이 지상을 뜨는 날 은하철도를 타리 안드로메다행 999호 열차에 오르는 단 한 번 맞이하는 여행 앞에서 마음 몹시 부풀어 오르리 푸른빛의 지구를 등지고 원거리 셀카로 내가 살았던 창백한 푸른 점을 되돌라보고 모래 같이 작은 점 안에서 수십억 인류가 지지고 볶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신기해하면서 오르트 구름을 지나 검은 우주를 가로질러 별과 별 사이로 단품처럼 붉게 물들고 있는 은하를 향해서 가리, 슬프고 아픈 기억을 지우며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는 성경 구절도 되뇌면서 죽음이 꿈도 없는 깊은 잠고 같을 수 없다고 중얼거리면서 백조역에서 지선을 갈아타고 플라타너스 시골 신작로같이 뻗어 있는 길을 따라 은색 하늘색 억새가 하얗게 피어 있는 강기슭을 지나고 많은 등불이 빛..

19 한국 문학 2021.08.01

(명시 소개) 조달곤의 시, 「북십자성」(1)

너: 어린 시절 동화책을 읽다가 충격 받은 적이 있어요.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였지요. 아이들은 죽는다는 게 너무 슬퍼서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나: 그렇지만 어른이 되면, 우리는 간간이 죽음을 인지하곤 하지요. 마치 공자처럼 삶도 잘 모르는데, 죽음까지 알 필요가 있는가? 하고 뇌까리면서, 삶에 몰두하면서 살아갑니다. 너: 환갑이 넘으면, 죽음의 접근을 자주 인지합니다. 건강에 이상이 있기 때문이지요. 독일의 작가 그림 형제 Brüder Grimm, 즉 야콥 그림과 빌헬름 그림은 오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늙음을 하나의 행복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들은 귀 먹고 시력이 가물가물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주위의 쓸데없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새소리..

19 한국 문학 2021.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