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소리
- 어느 의사의 고백 -
송용구
앞 못 보는 자의 눈이 되고
앉은뱅이의 다리가 되는
그런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면
너의 눈과 너의 다리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나의 혀끝에
전사(戰士)처럼 칼을 들이대던
스무 살적 바람소리여
백일몽을 가위누르던
서슬 퍼런 바람 소리여
나를 잊으라 나를 용서하라
온 하루 빈 들녁에 퍼붓던
겨울 소나기 잠잠해지면
나는 쓸쓸히 저무는 강가에 꿇어 앉아
잊혀진 연서 (戀書)의 언약 같은
마른 억새 잎으로 입술을 내리치며
눈시울 붉은 달빛 속에
저주 받은 승냥이의 울음을
꺼이꺼이 게워내고 있는가
송용구 시인이 어떠한 계기로 이 시를 집필했는지 나는 모른다. 아마도 젊은 날 "공부해서 남 주어야 한다."고 다짐하지 않았을까? 그래, 한 인간으로 태어나, 이웃과 사회 그리고 나라에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결심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주어진 삶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시인과 학자의 삶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사람의 행복을 송두리채 앗아가곤 한다. "바람 소리" 앞에서의 참담함 그리고 부끄러움과 절망. 브레히트의 시구가 떠오른다. "아, 이땅에서 친절을 마련하려고 한 우리는 (누구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친절하지 못했네.Ach, wir/ Die wir den Boden bereiten wollten für Freundlichkeit/ Konnten selber nicht freundlich sein."
오늘 이 시를 다시 읽으면서 병원에서 사라진 많은 전공의들이 떠올랐다. 의사라면 누구나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싶을 것이다. 의사라면 누구든 간에 환자의 병을 치료해 주면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과거나 지금이나 간에 의사들의 크고 작은 요구사항을 처음에는 받아주는 척하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무시한다. 존경하는 이국종 교수는 정부로부터 필수 의료 지원을 받으려고 수없이 노력했지만, 거부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생명보다 돈이 중요한가?"하고 일갈하였으며, "보건 복지부 공무원들은 숨쉬는 것 외에는 전부 거짓말을 일삼는다."라고 토로하면서, 아주대를 떠났다고 한다.
심의(心醫)는 있다. 의사에게 자신을 바쳐서 타인의 목숨을 살릴 기회를 빼앗지 말라. 현 정부는 의료 대란을 일으키고, 의사들, 특히 전공의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의 일을 계속하지 않겠단다. 전공의들은 의술을 익혀서 훌륭한 전문의 내지는 의학 교수가 되리라는 희망 하나를 견지하면서 병원에서 박봉으로 버티며, 필수 의료를 담당했던 분들 아닌가? 젊은 전공의들의 마음에 이토록 처참한 실망감과 분노 그리고 참담함을 안겨준 자는 누구인가? 그의 무슨 말이 모든 사명감을 내려놓고, 전공의들을 병원에서 사라지게 했을까? 하루 빨리 무능하고, 무도하며 무지한 굥석열 정권을 탄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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