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림 (명저)

(명저 소개) 김상일: 부도지 역법과 인류세

필자 (匹子) 2024. 8. 7. 11:40

자고로 지식인의 과업은 주어진 시대의 시대 정신에 의해 측정되고 정해지는 법입니다. 필자는 오늘날 지식인의 과업으로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항을 중요하게 여겨 왔습니다.  1. 협동과 상생으로서의 경제적 삶을 실천하는 일 (자본주의의 극복), 2. 남녀평등을 실천하는 일 (폭력과 차별의 극복), 3. 동식물과 함께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살려나가는 일 (자연과 지구 파괴의 극복). 만약 필자가 지금 그리고 여기가 아니라, 다른 시대 그리고 다른 장소에 태어났더라면, 세 가지 과업은 아마도 이와는 다르게 설정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충족시켜주는 책이 한 권 간행되었습니다. 김상일: 부도지 역법과 인류세 (동연 2021). 김상일 교수는 한국 철학 가운데 지금까지 아무도 다루지 않은 테마를 집요하게 구명함으로써 한 사상 내지 한 철학의 대가라는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본서에서 그리고 다른 여러 책에 담겨 있는 김상일 교수의 사상은 김용욕의 동양학의 사유를 한 단계 뛰어넘어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김용옥은 한국 사회를 유교 문화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규정하면서, 맹자의 왕도 정치에서 어떤 바람직한 방향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를 고려할 때 김용옥의 동양학은 유교, 도교 그리고 불교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김상일 교수는 동양사상을 더욱 심층적으로 구명하면서, 사상적 근원과 가치를 무엇보다도 단군 사상에서 발견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부도지의 23장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 책을 저술하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동양사상의 정수는 요순 황제에 의해 전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부도지"의 저자는 요왕을 오미의 난, 오행의 난을 저지른 사악한 임금으로 규정하며, 요임금, 순임금 그리고 우임금을 나쁜 사람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동이족 출신의 제준 (帝俊), 다시 말해서 순왕을 중국 고대 사상에서 배제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만, 우리는 고대 중국의 문화가 오래전의 환국 내지 고조선 문화의 아류임을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계연수의 "환단고기"는 단군 사상이야 말로 유교 불교 그리고 도교 이전의 원류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부도지 역법과 인류세는 저자의 동양사상이 한(漢)이 아니라, 한()에서 유래하였다는 학문적 이론에 근거하여 집필된 것입니다.

 

저자는 기상이변과 생태계 파괴에 직면한 인류가 살아가는 시대를 “인류세”라고 규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류가 1568년부터 그레고리우스 역법에 의해 달력을 규정하고 오랜 기간 이를 사용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시간을 인위적으로 수정하려는 의도가 숨여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9월은 7에 해당하는 September로, 10월은 8에 해당하는 October로, 11월은 9에 해당하는 November로 12월은 10에 해당하는 December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래 전에 부도지에서는 마고의 역법이 사용된 바 있었습니다. 차제에는 한 달을 28일, 1 년을 13 개월 설정하는 새로운 역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시간의 질서는 서양에서는 오귀스트 콩트에 의해서, 동양에서는 부도지에 의해서, 신대륙에서는 마야 인디언들에 의해서 제기된 바 있습니다.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는 실제로 1849년에 실증주의 달력을 만들었는데, 28일 13개월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달력 하나를 바꾸는 일이 뭐 그리 중요한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달력을 바로잡는 일은 시간의 질서를 바르게 설정하는 중요한 과업입니다. 이는 단순히 달력 하나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의미를 넘어서서, 삶과 죽음을 포괄하는 시간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과 일맥상통합니다. 예컨대 이조시대, 1433년에 장영실이 만든 혼천의 (渾天儀)는 천체 관측 기구로서 천체의 운행과 위치 그리고 적도 좌표를 관찰하는 데 쓰였습니다. 그러나 명나라는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장영실의 과학 기술을 탄핵하는 데 앞장 섰습니다. 달력을 새로 만드는 일, 혼천의를 제작하는 과업은 그 의도에 있어서 단순히 자연과학 기술의 발전 외에도 세계의 근본을 이해하고 세계의 질서를 바로 잡으려는 의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도지 역법은 마고의 역법으로서 남성적 투쟁적 시간관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됩니다. 예컨대 한 달을 (여성의 멘스 주기인) 28일로 설정했다는 사실 속에는 비록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남성적 투쟁적 시간 개념을 극복하려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여성운동과도 묘하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시간의 질서를 올바르게 세운다는 것은 모든 문제를 외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단 (內丹) 그리고 양생(養生)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은 오늘날 생태 공동체가 주창하는 자기 수련,  자활, 자치 그리고 자생의 세계관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맨 처음에 자신의 내적인 기를 연마하여 스스로의 존재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상생과 협동을 자연스럽게 도모할 수 있습니다.  내단과 양생을 중시하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를 국복하는 환경 평화 운동과 접목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바로 잡는다는 것은 삶과 죽음의 시점을 분명히 정하려는 노력입니다. 그것은 복본 (復本), 다시 말해서 찬란한 과거의 영화로움으로 되돌아오려는 노력입니다. 상기한 이유로 인하여 『부도지 역법과 인류세는 시간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과정 속에서 필자가 모두에서 언급한 세 가지 사항인 자본주의의 극복, 폭력과 차별의 극복 그리고 자연과 지구 파괴의 극복이라는 세 가지 과업을 충족시켜주고 있습니다. 올바른 달력은 인류세를 살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의 질서를 바로잡게 만들고, 나아가 더 이상 (1) 전쟁과 경쟁, (2) 차별과 학대 그리고 (3) 힘없는 생명체에 대한 죽음과 학살을 사전에 차단시키게 작용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