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10. 과연 조선은 처음에 서양의 문물을 거부했고, 과연 일본은 이를 난학(蘭学)으로 받아들여서 일본의 정신적 문화적 꽃을 활짝 피웠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인들은 서양의 정신적 뿌리인 기독교를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일본에서 가톨릭교도가 95만이고 개신교 신자의 수는 43만에 불과합니다. 기독교인은 일본 인구의 2%도 되지 않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일본인들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지만, 이것은 그들의 정신과 영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물질적 향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조선은 서방의 문물과 서양의 선교사들을 처음에는 배척했지만, 오늘날 한국의 인구 40%가 천주교와 개신교를 믿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의 경우와는 현저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일본은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과는 무관하게 서양 문명을 피상적으로 수용하였습니다. 화혼양재(和魂洋才)라고, 서양의 문물은 하나의 필요성에 따라 습득한, 낯설고 새로운 무엇,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메이지 유신은 자아와는 무관하게, 그저 먼 곳의 타자를 수용함으로써 이룩한 경제적 군사적 성장과 승리로 이해됩니다. 일본이 1945년에 원자폭탄의 피해당하게 된 것은 강상중 교수에 의하면 "일본 민족 본연의 진정한 자아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강상중: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이경덕 옮김, 이산 1997) 바꾸어 말하자면 일본인은 일본 민족의 자아 또한 얼마든지 비판 당할 수 있으며, 변모 가능하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1. 일본인들은 자신의 영혼과 정신을 바꾸기 위해서 서양의 문물을 수용한 게 아니라, 다만 실용적 차원에서 활용하기 위해서 그것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개개인은 자기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파악하지 않고, 자아를 회피할 수 있는 탈출구로서의 믿음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파이데우마παίδευμα"라는 심리적 특성으로 명명될 수 있습니다. 원래 어린아이들은 낯선 세계가 두려울 때 안온한 동굴을 찾습니다. 동굴에 자신을 숨기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입니다.
문화 인류학자 레오 프로베니우스Leo Frobenius는 “파이데우마”를 “특정 국가에서 환경과 자기 교육을 통해서 형성되는 삶의 느낌”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이는 영혼으로서의 자기 차단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둥근 천황 폐하의 욱일(旭日)에 자신을 맡기면,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리라고 믿습니다. 메이지 유신의 근대화로 군사 대국이 이루어지자, 일본인들은 서구 문물의 본질과 기독교의 이념을 알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천황 숭배라는 토착 문화에 집착하였습니다. 이로써 일본 고유의 욱일 문화가 새롭게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선불교의 관점에서 “아침에 떠오르는 해(旭日)”를 유일무이한 천왕으로 숭배했습니다. 원래 인간의 의식이란 통합만 할 때는 “애집증inzestuöse Krawatte”에 시달리고, 분열할 때에는 정신분열증에 걸리는 법입니다. 일본은 통합만 추구한 나머지 애집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12. 문제는 자신의 문제점과 하자를 분명히 직시하고 이를 수정하려는 각고의 자기 성찰이 일본 사람에게 없거나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맹점이 태동하게 된 근본적인 원천은 문화 영혼으로서의 자기 차단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먼 곳에서 찬란한 빛을 얻어서, 가까운 곳을 밝히리라." "나에게 향하는 치욕을 감당하느니, 차라리 할복하겠다." - 이것이 대부분 일본인의 내면에 도사린 감정입니다. 할복, 즉 하라키리는 자신의 패배뿐 아니라, 자신을 비판적으로 돌이켜보려는 마음가짐조차 용인하지 않은 채, 강자 앞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과시하려는 패자의 자해 행위와 같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소녀상, 소녀의 눈동자, 소녀의 어깨에 새처럼 앉아 있는 영혼을 바라보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욱일에 대한 맹점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스스로를 비판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안타깝게도 자기비판을 통한 성숙의 기회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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