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조형 예술

서로박: 모나리자, 눈부신 현혹 (3)

필자 (匹子) 2021. 4. 29. 09:34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모나리자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첫째로 초상화 속의 인물은 어쩌면 거울 속의 상일 수 있습니다. 모나리자의 시선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거울 속 자기 자신을 대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그미는 주어진 현실 속에서 타자를 고찰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이상화된 내적인 자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은 대상화 이론에서 이러한 관점에 관해서 자세히 언급한 바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머니 (혹은 애호의 대상자)와의 관계 속에서 외부적 조건을 알려고 합니다. 자신과 어머니 사이의 관계는 주위 환경에 대한 이해 내지는 관심사와 정비례하지요. (Melanie Klein: Ein Kind entwickelt sich. Methoden und Technik der Kinderpsychoanalyse. Kindler, München 1981, S. 26).

 

그런데 이러한 관계의 끈이 배제되거나 느슨하면, 아이의 관심은 외부가 아니라, 자신에게로 향합니다. 여기서 어떤 나르시시즘의 정서가 출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은폐하는 감정은 근본적으로 질투와 공격 성향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나리자의 마음을 투시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모나리자의 그림을 대하는 자는 일시적 청맹과니로 돌변하기 때문입니다. 모나리자의 차단된 시선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 모나리자 그리고 그미의 현실 속에서 배제되어 있음을 감지합니다. 이러한 아쉬움은 그림 속의 인물을 더욱더 추상화시키도록 작용합니다. 어쩌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통해서 아름다움의 “허망함Vanitas”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12. 모나리자는 모순된 여성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둘째로 이 세상의 모든 해석은 자의적입니다. 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대상으로서의 여인은 다르게 보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바라보고 싶은 것만 바라봅니다. 괴테는 진선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에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눈이 태양과 같지 않다면/ 태양은 그걸 찾아 바라보지 못하리라./ 신의 고유한 힘이 우리의 내면에 없다면/ 신적인 무엇은 어찌 우리를 황홀케 하겠는가?

 

아름다움 그리고 세상의 가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눈이 밝고 영민해야, 아름다움과 가치는 우리에게 인지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청맹과니처럼 아름다움과 가치를 직시하지 못합니다. 모나리자가 다양한 여인으로 느껴진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모나리자를 정결한 여인으로, 마치 동정녀 마리아와 같은 여인으로 고찰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브, 마리아 막달레나, 헬레나 팜므 파탈 등과 같은 부류의 여인과 동일시했습니다. 이렇듯 모나리자가 여러 부류의 다양한 여인상으로 수용된 까닭은 사람들의 마음의 그릇이 각자 다르기 때문입니다.

 

13.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파악한 모나리자의 미소: 셋째로 모나리자의 미소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그리고 여성의 몸이 언제나 객체로, 미의 대상으로 이해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혐오합니다. 필자의 시 가운데 「모나리자

 

」가 있습니다. 모나리자의 독백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하이너 뮐러의 「햄릿 기계」의 마지막 대목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그미의 음성은 지금까지의 여성 학대에 노여워하며 복수를 꿈꾸는 엘렉트라의 외침을 떠올리게 합니다. “비굴한 삶의 행복이여 몰락하라. 증오와 경멸, 폭동과 죽음들은 영원히 칭송받을지어다. 만약 여자가 칼을 들고 너희의 침실로 향한다면, 너희는 진실을 알게 되리라.”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