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조형 예술

서로박: 모나리자, 눈부신 현혹 (1)

필자 (匹子) 2021. 4. 28. 10:03

“눈을 떠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잘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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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의 부흥은 지원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예술은 야콥 브루크하르트Jacob Burckhardt의 말대로 "인류의 가장 위대한 가치를 담은 놀라움"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 위대한 예술가들이 동시대에 활약하여 이탈리아를 찬란한 빛의 공간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이탈리아의 탁월한 그림, 조각품, 위대한 건축물 등은 이들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그들이 생계의 걱정 없이 자신의 모든 삶을 예술 창조에 바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보다도 메디치 가문의 학문과 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때문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 재벌들이 기껏해야 비싼 그림을 구매함으로써 재산을 축적하고 탈세의 방식을 찾는 데 혈안이 된 데 반해, 메디치 가문은 무엇이 뼈를 깍는 예술 창조를 실질적으로 돕고, 수준 높은 예술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오늘은 불세출의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다빈치는 평생, 화가, 조각가, 건축가, 해부학자, 기계 공학, 엔지니어, 자연철학자로서 활약했습니다. 그의 「모나리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화입니다. 심지어 인도의 초등학교 학생들도 모나리자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림의 원 제목은 이탈리아어로 “밝은 여인La Gioconda”이었습니다. “피렌체의 리자 델 지오콘도 부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나는 마돈나, 즉 “아무개 부인”에 해당하는 호칭입니다. 그래서 정확히 표현하자면 “프란체스코 델 지오콘도 부인”이 바로 모나리자를 지칭합니다.

 

3. 불멸의 작품, 「모나리자」: 작품은 18세기 말부터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가로 53센티, 세로 77센티의 유화 작품으로서 1502년에서 150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몇몇 예술사 연구가들은 그림이 1503년에서 1506년 사이에 탄생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작품이 미완성이라는 가설도 유력하게 수용되고 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그림은 두 번에 걸쳐 루브르 박물관에서 자취를 감춘 적이 있습니다. 1871년에는 박물관의 직원이 파리의 엥발리드 박물관의 지하실에 몰래 감추어둔 적이 있었으며, 1911년에는 실제로 누군가 그림을 훔쳐간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림은 2년 후에 다시 뒤찾게 되어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모나리자의 그림을 직접 관람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합니다. 

 

4. 「모나리자」의 분실 (1): 다음의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로서, 에른스트 블로흐의 『흔적들Spuren』에 처음으로 소개된 바 있습니다. 에피소드는 내용상 애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The Purloined Letter」를 연상하게 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지만 자크 라캉J. Lacan은 나중에 이 작품을 토대로 자신의 3층 이론 (실재계, 상상계 그리고 상징계)를 해명한 바 있습니다. 1871년 프로이센 군인들이 파리를 점령하려 했을 때 박물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림을 숨겨놓아야 했습니다. 일단 모나리자 그림을 엥발리드 관으로 이전시키고, 내부에 장벽을 설치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안에다 온갖 쓰레기 그리고 낡은 의자 등을 가득 쌓아놓았습니다. 그 다음에 이곳을 빠져나와 장벽을 메워 놓았습니다. 이는 마치 무언가를 은닉하기 위해서 황급히 처리한 흔적처럼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며칠 후 독일 군인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곡괭이로 장벽을 파괴한 다음에 창고 안으로 침투했으나, 모나리자 그림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건물의 한복판에서 오를레앙 요새의 설계도를 찾아냈습니다. 독일 군인들은 전리품에 흐뭇해했습니다. 그런데 모나리자 그림은 놀랍게도 그곳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벽의 창문 아래에 뒤집힌 채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는데, 이를 예리하게 바라본 군인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군인들이 떠난 뒤에, 박물관 사람들은 모나리자 그림을 극적으로 구출하였습니다.

 

5.「모나리자」의 분실 (2): 1911년 8월 21일 이탈리아의 수공업자, 빈센초 페루지아Vincenzo Peruggia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잠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위대한 그림이 프랑스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데 대해 불만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모나리자 그림을 훔치기로 결심합니다. 공교롭게도 그는 박물관의 수리를 담당하는 임시직 노동자로 일하던 터였습니다. 행여나 유리에 자신의 지문이 묻지 않도록 장갑을 끼고, 액자에서 조심스럽게 모나리자 그림을 빼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림을 둘둘 말아서 작업복에 감춘 채 박물관을 빠져 나왔습니다. 다음날 모나리자의 그림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수소문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파리의 신문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6.「모나리자」의 분실 (3): 처음에 경찰은 프랑스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그리고 에스파냐 출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를 용의자로 생각했습니다. 아폴리네르의 이웃이었던 어느 남자는 당국에 시인을 범인으로 고발했던 것입니다. 언젠가 아폴리네르가 야밤에 몇몇 조각품을 파블로 피카소에게 넘기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인즉 누군가 루브르 박물관에 있던 두 개의 조각품을 빼내어 피카소에게 몰래 매도했습니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피카소는 파리 당국에 조각품들을 즉시 반환했습니다. 만약 모나리자가 도둑맞지 않았더라면, 피카소는 조각품들을 자신의 것으로 소장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페루지아는 자신의 별장에 오랫동안 그림을 감추어두었습니다. 1913년 12월 12일 그는 피렌체의 미술상인에게 그림을 팔려고 시도합니다. 미술상인은 페루지아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거기에는 모나리자의 그림 값으로 50만 리라가 책정되어 있었습니다. 미술상인은 이 사실을 당국에 알리게 되고, 모나리자는 다시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송되었습니다.

 

7. 신비로운 여인, 모나리자: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젊은 여인이 의자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습니다. 뒤에는 발코니가 있는데, 배후에는 낯선 풍경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인물과 배경은 서로 차이를 지닙니다. 화가는 정면에서 모나리자를 바라보고 있지만, 배경의 경우 약간 높은 위치에서 관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배경에는 호수와 꼬불꼬불한 길이 보이는데, 두 개의 대상의 눈높이가 맞지 않습니다. 왼쪽이 높고, 오른쪽이 낮습니다. 모나리자의 뺨은 도톰합니다. 이마는 넓고, 눈썹이 보이지 않습니다. 눈썹이 없는 데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난무합니다. 혹자는 다빈치가 눈썹을 채 그리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혹자는 넓은 아름다운 이마를 강조하기 위해서 화가가 의도적으로 눈썹을 생략했다고 주장합니다. 혹자는 다빈치가 마치 화룡점정처럼 눈썹을 마지막 작업 시에 그려 넣었는데, 먼 훗날 덧칠한 부분이 벗겨졌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