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4

박설호: 사상의 보석은 여전히 숨어 있다.

1. 나에게 직접 블로흐 사상을 가르쳐준 은사는 없었습니다.  맨 처음 에른스트 블로흐를 처음으로 접한 때는 아마 74년이었습니다. 독재와 민주화의 기운이 태동하여 서로 부딪치던 시기에 어느 친구는 나에게 얇은 책자 한 권을 건네주었습니다. 그것은 박종화 교수님이 번역한 부광석 (브라이덴슈타인)의 인간화 (人間化)였습니다. 기억하건대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의 분석 내지 신학적 견해 등이 씌어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부록에는 놀랍게도 블로흐의 삶과 철학이 간략히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블로흐 철학은 당시에도 미개척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지식은 일천하였고, 당시에는 블로흐 사상의 중요성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2.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를 처음으로 읽기 시작한 때는 그후 십 년 뒤..

2 나의 잡글 2024.11.27

(명저 소개) 이종찬의 (2) '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

(앞에서 계속됩니다.) 7. 조선은 서양의 문물, 특히 과학 기술과 의학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이러한 것들은 무인(武人) 그리고 중인(中人)인들이 관여하는 ”천박한“ 내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종찬 교수님은 한국의 자연 과학의 역사를 논하면서, 조선의 의사, 허준을 언급합니다. 허준은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집필할 때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세부적으로 참고하지 않았습니다. 『본초강목』에 소개된 수많은 약초의 가치에 매료된 사람들은 놀랍게도 유럽의 상인들이었습니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은 서양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종의 기원을 쓴 다윈은 이시진의 책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식물학자 다윈은 이시진의 문헌이 자연의 선택을 명확하게 지적하였다고 서술하고..

1 알림 (명저) 2023.12.10

박설호: (1) 욱일(旭日)의 맹점

1.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연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여 몇 년에 공표했는가? 하는 수능 시험의 문항보다 더 중요한 물음입니다. 언젠가 『조선은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가?』 (에디터 2001)라는 책이 간행되었습니다. 저자 이덕주는 이에 대한 해답을 무엇보다도 조선 후기의 역사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19세기 말 조선은 열강의 세력에 대항할 힘을 비축하지 못했고, 처음부터 서양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의향 또한 없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흥선 대원군의 쇄국 정책에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납득할 만한 답변이 아닙니다. 왜냐면 대원군은 폐쇄적 외교 정책을 제외한다면. 여러 가지 바람직한 내부 정책을 실행에 옮겼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대원군의 쇄국 정책이 독..

2 나의 잡글 2023.08.14

잔인한 낙향

정약용의 제보은산방을 읽었습니다. 나 서로박은 짤막한 장편소설로 시인 정약용의 심경과 처지를 전하려고 합니다. ............................................ 세상에 이 정도로 잔인한 낙향은 아마 없을 것이다. J의 낙향이 그러했다. 기독교가 나라를 말아먹는 신앙으로 낙인 찍힐 무렵 셋째 형, 약종은 다만 우연으로 기독교를 접하게 된다. 박애의 늪에 빠져들면서 종교적 희열에 서서히 감복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서구에서 유입된 기독교 신앙은 19세기 한반도에서 혹세무민하는 이단 종교로 박해 당하기 시작했다. 정씨 가족은 이름 있는 가문으로서 수많은 학자들을 배출한 집안이었는데, 서양의 신비로운 신앙을 접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가문은 삼족이 멸하는 고초를 감수해야 했다. 천신..

19 한국 문학 2020.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