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건 선생님은 미국 엘에이 정신분석 연구소에서 공부하였으며, 신경 정신과 의사로 일하다가, 책 "당신은 마음에게 속고 있다."라는 책을 간행하였습니다. 현재 다시 미국 뉴욕에 가서 공부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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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 세상 모든 일이 신의 뜻에 따라 일어난다고 사람들이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가 그랬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해와 달이 뜨는 것도, 천둥번개가 치는 것도 모두 신 때문이라고 그때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만 5000명에 이른다고 하니, 그들의 세상에서는 신이 끼어들지 않는 일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지어낸 사람의 마음을 반영합니다. 그리스 신화도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마음과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5000명의 신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것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원인이 인간이 아닌 신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일을 내가 아니라 남이 한 것이라는 이야기이고, 책임도 남에게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사고방식은 일종의 ‘남 탓’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가장 잘 표현된 것이 에로스 신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신과 인간을 막론하고 누구든(에로스 자신까지도) 그의 화살을 맞으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이 이야기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사랑마저도 그 마음의 주인인 인간이 아니라 신에게 좌지우지된다는 생각을 반영합니다. 이런 이야기까지 지어내서 신을 원망한 걸 보면 누군가에게 매혹되고 사랑에 빠지는 일은, 옛날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신의 장난으로밖에는 설명되지 않을 만큼 난감한 일이었나 봅니다.
누구나 제 마음속 환상을
투사해서 세상을 해석합니다
그 환상이 ‘시각’을 만듭니다
남의 마음 이해한다는 것도
결국 투사로부터 시작합니다
투사의 가장 좋지 못한 예는
왕따 등의 희생양 만들기
사람이 아닌 더 만만하고
익숙한 희생양 찾기도 합니다
그게 바로 ‘한국인’ 정체성이죠.
멜라니 클라인이라는 정신분석가의 이론을 적용하면, 이런 신화적 사고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클라인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아기의 마음속에 구체적인 내용의 환상(Fantasy)이 저장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는 의미에서 융의 집단 무의식이나 플라톤의 이데아와 공통점이 있는 개념입니다.
이 환상 속에는 항상 대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어떤 대상이 어떤 행위를 한다’는 것이 클라인이 생각하는 환상의 문법입니다. 아기가 무언가를 경험하면 선천적으로 마음에 새겨져 있는 환상 중에 그 경험에 부합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상기됩니다. 그렇다는 것은, 환상 속 대상 때문에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아기가 생각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선천적 환상 속 대상의 대부분은 부모, 특히 엄마의 신체 부위입니다. 갓난아기는 엄마를 사람이 아니라 신체 부위로 경험합니다. 각각의 신체 부위가 모두 엄마라는 한 사람에게 속한다는 것은 나중에나 깨닫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기의 환상 속에는 엄마의 좋은 가슴과 나쁜 가슴이 있습니다. 젖을 먹고 배가 부른 건 좋은 가슴이 젖을 주기 때문이고, 배가 고픈 건 나쁜 가슴이 젖을 안 주기 때문입니다. 배가 아픈 건 나쁜 가슴이 독이 든 젖을 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느낌이 들든, 외부의 뭔가가 그런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고 아기는 생각합니다. 역시, 일종의 남 탓입니다.
갓난아기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사람이 그런 환상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클라인의 주장을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를 떠나, 사람의 마음속에 제각각의 환상이 존재한다는 데는 모든 정신분석 이론이 동의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제 마음속 환상을 투사(投射, Projection)해서 세상을 해석한다는 것에도 모든 이론이 동의합니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세상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모두 제각각 자신만의 환상을 품고 세상을 살고, 경험합니다. 물론 환상의 내용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세상은 누군가에게는 약육강식의 정글이고, 누군가에게는 주님의 은총이 충만한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허무와 고통만이 가득한 곳입니다. 제각각 환상의 내용에 따라 세상의 모습이 정해집니다. 마음속 환상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만듭니다.
세상에 대한 시각을 갖는다는 것, 즉 환상을 투사해서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일종의 왜곡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세상을 이해하는 유일하고도 불가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아무런 시각도 갖지 않는다면 세상은 거대한 혼란의 덩어리일 뿐, 우리는 세상에서 아무 의미도 찾아낼 수 없습니다. 무엇에서든 질서와 패턴, 그리고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세상 같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시각으로 구성한 세상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세상은 5000명의 신이 좌지우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남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 파일을 복사하듯, 남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내 마음속으로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에 내 마음을 투사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면 나는 어떨지 상상하는 것이 이해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왜곡의 원인인 투사는, 동시에 이해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것과 왜곡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입니다.
이해하려면 나만의 시각이 있어야 하지만, 나만의 시각은 곧 선입견 혹은 편견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제멋대로 세상을 봅니다. 늘 바깥세상에, 타인에게 내 마음을 투사해서 나만의 세상, 나만의 타인을 창조해냅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내 마음속의 어떤 환상 혹은 이미지가 타인에게 투사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모습이 정해집니다. 좋은 환상이 투사되면 이상화(理想化)가 일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무서운 환상이 투사되면 그 사람은 두려운 사람이 되고, 나쁜 환상이 투사되면 그 사람은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 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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