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독일 영화

영화 타자들의 삶

필자 (匹子) 2023. 12. 11. 18:57

친애하는 Y, 영화 『타자들의 삶』은 2006년에 발표된 영화입니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Florian Henkel von Donnersmarck)가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맡았으며, 막스 비더만 외 네 사람이 제작을 담당한 이 영화는 수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문제는 이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에 있습니다. 혹자는 이 영화를 동독 스타지의 감시를 예리하게 해부한 작품이라고 긍정적으로 평하는 반면에, 혹자는 영화 자체가 서독인의 시각에서 투영되고 있기 때문에 동독 현실의 어떤 긍정적인 측면을 모조리 생략했다고 비난하곤 합니다. 일단 작품에 대해 소개할 테니, 이에 관해서 당신 스스로 모든 사항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비판하기 바랍니다.

 

영화의 배경은 1984년 동베를린입니다. 주인공은 국가 안기부 (MfS)에서 일하는 게르트 비슬러입니다. 그의 고유 번호는 “HGW XX/7”입니다. 어느 날 문화부 장관 브루노 헴프는 주인공에게 하나의 재미있는 일감을 떠맡깁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동독의 극작가 게오르크 드라이만의 사생활을 철저히 감시하라는 일감이었습니다. 게오르크 드라이만은 동독에서 저명한 극작가로서 평소에 체제 옹호적인 발언을 일삼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예술가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것은 주인공으로서도 매우 흥미로운 일감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은 대체로 자유분방한 삶을 영위하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이성과 만나서, 술 마신 뒤 사랑을 나누는 것을 몰래 바라보는 것 자체가 약간 칙칙하지만, 주인공을 흥분시키기에 족했으니까요. 사실 극작가에게는 애인이 있습니다. 그미는 크리스타 마리아 질란트라는 아름답고 매력 있는 배우였습니다.

 

 

 

 

드라이만은 비교적 당과 국가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극작가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스타지로부터 감시를 당합니다. 극작가 드라이만에 대한 감시 조처는 동독 문화부 장관인 브루노 헴프의 사적 감정 때문에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브루노 헴프는 극작가의 애인에게 넋이 나가 있었습니다. 크리스타 마리아는 계속 배우로서 경력을 쌓으려고 했는데, 문화부는 여러 가지 결함들을 지적합니다. 이러한 결함은 비록 하찮은 사항들이었으나, 그미가 배우로 성공하는 데 치명적인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미는 모든 것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여러 번에 걸쳐 문화부 장관을 만나서 카섹스를 행합니다. 브루노 헴프는 목요일마다 그미와 만나 성행위를 나누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미를 자신의 연인으로 만들려면, 비열한 당 문화 관료는 게오르크 드라이만의 약점을 찾아내어, 그를 제거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주인공은 나중에야 비로소 모든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직속상관인 안톤 그루비츠의 업무를 자극하기 위하여 모든 사실을 은밀하게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게르트 비슬러는 독신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그는 새로 축조된 건물에 혼자 거주하며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그는 극작가의 감시를 통해서 예술의 세계가 어떠한지를 어느 정도 감지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정신세계라든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비록 막연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타당한 시각을 견지할 수 있게 됩니다. 비슬러는 시내에서 문화부 장관을 만나려고 술집에 머물던 크리스타 마리아 질만에게 다가가서, 어떤 암시를 던집니다. 이는 사랑하는 임을 실망시키지 말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뒤이어 그미는 문화부 장관을 만나 마음에도 없는 육체관계를 더 이상 나누지 않고, 드라이만에게 되돌아옵니다. 말하자면 비슬러는 모든 것을 감시하면서, 문화부 장관의 횡포에 교묘하게 제동을 건 셈입니다.

 

가령 게오르크 드라이만을 감시하는 동안에 어떤 놀라운 정보를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드라이만의 친구이자 동독의 저명한 연출가인 알베르트 예르스카 (Albert Jerska)가 7년 전부터 당국으로부터 직업 금지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주인공 비슬러에게 이 사실은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알베르트 예르스카는 드라이만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여, 브레히트의 시를 읽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나중에 몰래 극작가의 방에 비밀리에 잠입하여, 그 책을 펼쳐보기도 합니다. 이때 그는 생일날 언급된 브레히트의 시가 「마리 A에 관한 기억」임을 알게 됩니다. 어느 날 친구 알베르트 예르스카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게오르크 드라이만은 국가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저버립니다.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는 거의 미친 듯이 피아노를 연주합니다. 게오르크 드라이만이 연주한 곡은 피아노 간주곡, 「착한 사람들에 관한 소나타」였습니다. 사실 예르스카는 자신의 생일날에 바로 이 피아노 간주곡의 악보를 선물로 전해준 바 있었습니다. “착한 사람들에 관한 소나타”는 브레히트의 극작품 「사천의 선인」을 연상하게 합니다. 작품의 주인공 센테는 비록 창녀로 일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손해를 감수하는 인물이 아닙니까?

 

 

 

이 대목은 영화의 주제 그리고 영화의 제목이 암시하는 내용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브레히트는 “자본주의 사회 구조 하에서는 선을 베푼다는 일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 극작품을 집필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선을 베풀려는 의지 내지는 인간애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주인공 게르트 비슬러는 바로 이 사실을 서서히 깨닫습니다. 즉 체제 내지 직업과는 무관하게 타인에 대한 정과 배려로 살아가는 태도 - 이것이야 말로 자본주의의 사회든 사회주의의 사회든 간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조금씩이나마 소지해야 할 덕목이라고 믿습니다. 주인공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의 일에 대해 회의감을 느낍니다. 그는 드라이만의 집 천장에 도청기를 설치하여, 동독의 저명한 극작가에게 해악을 가하려는 일이 참으로 치사한 작업임을 깨닫습니다.

 

놀라운 것은 주인공의 이러한 깨달음이 극작가 드라이만의 체제 비판적인 행동과 병행해서 출현한다는 사실입니다. 드라이만은 서서히 동독의 높은 자살률에 관한 기사를 집필하려고 결심합니다. 드라이만은 누군가 서독에서 몰래 밀수한 타자기를 사용하여, 기이할 정도로 높은 동독 인민들의 자살률에 관한 보고서를 집필합니다. 스타지는 어느 작가가 어떠한 타자기를 사용하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독의 슈피겔 잡지사에 송부된 그의 타자 원고는 어느 날 익명으로 발표됩니다. 드라이만은 동독의 정부의 입장에서 고찰할 때 이적행위를 저지른 셈입니다. 드라이만은 원고를 송부한 뒤에 서독의 타자기를 자신의 서재의 문지방에 몰래 감춥니다. 어느 날 드라이만은 이러한 사실을 애인인 크리스타 마리아 질만에게 말합니다. 비슬러는 이 모든 내용을 도청을 통해서 접하게 됩니다. 드라이만의 행위는 이적 행위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에 대해 개입하기는커녕,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그의 혐의를 덮어주려고 애를 씁니다.

 

크리스타 마리아 질만은 심리적으로 비참한 상태가 되어, 스타지에 끌려갑니다. 문화부 장관 헴프는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그미에게 다른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스타지의 오랜 심문으로 그미의 심신은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미는 어쩔 수 없이 드라이만의 원고와 타자기에 관한 사실을 실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후 IM (스타지의 비공인 협조자)로 일하겠다는 각서를 쓴 다음에 스타지 관청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안톤 그루비츠는 부하들을 이끌고, 즉시 드라이만의 집으로 향합니다. 타자기를 찾으러 극작가의 집으로 들이닥친 것입니다. 비슬러는 이 광경을 미리 간파하고, 신속하게 타자기를 몰래 빼내어 다른 곳으로 옮겨 놓습니다. 스타지 직원들은 드라이만의 집을 수색합니다. 이때 크리스타 마리아 질만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신의 밀고가 결국 사랑하는 임의 안녕을 위협했다는 생각에 고통을 느끼고 잠옷 바람으로 도로로 뛰어나갑니다. 이때 그미는 달려오는 차에 치여 숨지고 맙니다.

 

그루비츠는 서독 제 타자기를 발견하지 못하자, 모든 사건을 종결시킵니다. 대신에 지금까지 감시의 역할을 맡았던 비슬러를 직위 해제하고, 말단 직원으로 일하게 합니다. 약 4년 7개월이 지난 뒤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집니다. 극작가 드라이만은 우연히 연극 공연장에서 과거의 문화부 장관인 헴프를 만납니다. 이때 그는 자신이 속속들이 스타지에 의해서 감시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처벌당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HGW XX/7”이라는 암호를 지닌 스타지 요원 때문임을 알게 됩니다. 드라이만은 스타지 요원이 누군지 알기 위해서 스타지 문서를 뒤진 다음에 끝내 그가 누군지 알아냅니다. 비슬러는 통독 이후에 우체국 집배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드라이만은 끝내 그를 만나지 않습니다. 2년 후에 비슬러는 우연히 서점의 쇼우 윈도우에서 소설 “선한 사람에 관한 소나타”에 대한 광고를 목격합니다. 책을 펼쳐보니, 거기에는 “HGW XX/7에게 감사함을 보내며”라는 헌사가 적혀 있었습니다. 비슬러는 조금도 거리낌 없이 이 책을 구매합니다. 판매원은 선물용으로 포장해드리겠다고 묻습니다. 이때 그는 “아니오. 이 책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이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대답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비슬러의 도움으로 드라이만은 다시 글을 쓰게 된 것이었습니다.

 

영화는 80년대에 행해진 스타지의 감시 행위를 다루고 있습니다. 실제로 스타지 관청은 체제 비판적인 작가들과 예술가들을 세밀하게 감시하고 통제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스타지 직원이 영화에 나타난 대로 사보타지 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게르트 트레벨야르 (Gert Trebeljahr) 그리고 베르너 테스켈 (Werner Teskel)은 스타지 직무를 자의로 그만 두어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경직된 스타지 조직을 떠나려는 자라든가 서독으로 도주하려는 스타지 직원은 끔찍한 형벌을 당해야 했습니다. 예컨대 베르너 슈틸러 (Werner Stiller)라는 직원은 사회주의 통일당의 노선에 반대하다가, 당국에 체포될까 두려워서, 국경을 넘기도 하였습니다.

 

혹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온건한 독재국가 구동독에서의 삶은 영화에서 본 것만큼 그렇게 살벌하고 황량한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사실 동독은 전체주의 사회였지만, 히틀러 시대와 같이 개개인의 삶을 처절하게 옥죄이지는 않았습니다. 감시 체계가 존재했지만, 느슨했다고 할까요. 어쨌든 구동독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폐쇄적이지만 안온한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갔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구동독 출신의 사람들의 시각으로 고찰한다면 상당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체제비판적인 예술가 그리고 작가들에 대해서는 과도한 감시 내지 도청은 무척 과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청이라든가 감시는 존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