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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그뢰쉬너의 모스크바의 얼음

필자 (匹子) 2022. 5. 27. 21:24

친애하는 G, 오늘은 당신에게 전환기의 소설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맨 처음의 작품으로서 마그데부르크 출신의 작가 아네테 그뢰쉬너 Annette Gröschner (1964 - )가 2000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모스크바의 얼음 Moskauer Eis』를 선택해 보았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냐 코베라는 여성입니다. 그미는 베를린에서 나이든 할머니의 임종 소식을 접하고, 고향인 마그데부르크로 향합니다. 할머니의 집에는 아버지가 사용하던 방이 있었습니다. 수년 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버지의 방은 먼지 그리고 거미줄로 뒤엉켜 있었습니다.

 

아냐는 아버지의 방에서 커다란 냉동박스를 발견합니다. 아냐는 일순간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냉동박스 안에는 오랫동안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아버지의 시체가 있었던 것입니다. 냉동 박스의 전기선은 연결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혹시 아버지가 자신의 몸을 실험대상으로 삼은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사회주의 통일당의 요원이 몰래 방안으로 잠입하여 아버지를 살해한 것일까? 아냐 코베는 모든 의혹을 떨치기 위해서 자신의 가족의 역사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아네테 그뢰쉬너 (1964 - )

 

소설은 3대에 걸친 가족사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관해서는 명료하게 서술할 수 있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삶은 완벽하게 재구성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의 과거사의 탐색은 사실 그리고 추론으로 뒤엉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함께 소설은 한 가지의 뚜렷한 줄거리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마그데부르크의 유년 시절,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주인공의 학교생활, 오빠에 관한 흐릿한 기억 등은 마치 모자이크 식으로 드문드문한 흔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냐는 과거사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던 놀라운 사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몇 년 전에 사망한 할아버지의 사인이 심장마비로 밝혀집니다. 할아버지는 어느 매춘부와 정을 통하다가 급사했던 것입니다.

 

평소에 주인공은 가부장적이지만 따뜻하고 열정적이었던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할아버지의 상은 순식간에 돌변하게 됩니다. 그밖에 주인공은 또 다른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자신의 오빠가 동독을 탈출하다가 국경수비대의 총에 맞아서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사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공의 아버지 곁에서 실험을 돕던 여성 동료는 최근에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미의 죽음은 아버지와의 묘한 애정 관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습니다. 

 

아냐 코베의 아버지는 동독에서 능력을 인정받던 냉동 연구가였습니다. 그는 약 30년 동안 냉동 저장의 방법을 연구하면서, 실험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는 동독의 국영기업에 속한 연구원인 셈입니다. 아버지는 사회주의의 이념을 옳다고 굳게 믿지만, 동독의 관료주의 그리고 체제에 빌붙어서 살아가는 관료들을 사악한 기생충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사회주의 통일당과 알력 관계에 처하게 된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습니다. 한 개인으로서 거대한 권력의 공갈을 모조리 견뎌내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예컨대 “당은 너 같은 놈 하나를 얼마든지 깔아뭉갤 수 있어.” 하는 협박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냐의 아버지는 시간이 갈수록 과묵해집니다. 사회적 분위기는 한 인간의 심리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어느 날 아냐의 아버지는 어떤 놀라운 냉동 저장의 기법을 제작해냅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당에 보고하지 않습니다. 이 기법은 다름 아니라 12 퍼센트의 우유 지방을 가미한 얼음 제작과 관련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냐의 아버지는 자신의 획기적인 기법으로 제작된 얼음을 “모스크바의 얼음”이라고 명명합니다.

 

 

 

 

 

 

1989년 11월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의 분단 시대가 종언을 고합니다. 동독의 국유회사는 붕괴되기 직전에 처해 있습니다. 서독의 재벌들은 신탁회사의 중개를 통하여 동독의 국영기업의 땅, 공장 그리고 모든 시설들을 헐값에 구매합니다. 이때 아냐의 아버지는 서류상으로 자신의 회사를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나중에 중개를 맡은 서독의 신탁회사가 술수를 사용했다는 게 밝혀집니다. 이로 인하여 아냐의 아버지는 이전의 국영 기업을 운영하던 구동독의 문화관료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매입한 서독의 재벌로부터 철저히 이용당한 채 길거리로 나앉게 됩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개발한 기술은 어느새 서독의 냉동회사 사람들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맙니다.

 

소설은 아냐 코베의 아버지가 실업자로 전락하게 된 과정을 상세하고도 비판적으로 서술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소설의 화자인 주인공을 무기력한 냉소주의자로서 서술하게 한 것은 거대한 노여움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쨌든 작가 아네테 그뢰쉬너는 아버지의 과거 행적 및 실업의 과정을 다루면서, 옳고 그름을 판결하는 대신에 사실과 추측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고 했습니다.

 

 

 

미하엘 오피츠와 아네테 그뢰쉬너. 그들은 잉게 뮐러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친애하는 G, 동독이 사라졌지만, 동독에서 살던 사람들이 모조리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동독 체제는 붕괴했지만, 동독 내에서의 삶에 대한 기억은 동독인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특히 체제가 잘못되었더라도 그 속의 모든 규칙이라든가 질서 자체에 하자가 도사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도 서쪽의 독일인들은 변환기 이후에 동독과 동독인들의 모든 사항을 폄하하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이른바 베시 Wessi의 경제적 우월감으로 인한 자만심이 묘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아도르노의 다음과 같은 견해를 비판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냉소적인 철학자 아도르노 Adorno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거짓된 삶 속에는 어떠한 진정성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입니다.

 

흔히 서독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편견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구동독에는 두 개의 그룹, 즉 관료주의를 지향하는 체제옹호자 그룹 그리고 체제를 비판하는 시민운동가 그룹만 존재한다는 편견 말입니다. 그러나 구동독에는 자유롭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매력적인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는 자신이 겪었던 가족 관계, 마그데부르크에서의 과거 삶 등을 글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정열적인 할아버지, 조화로움을 추구하던 할머니, 과묵한 아버지의 따뜻한 심성, 딸과 마찰을 겪던 어머니 등과의 관계는 세상이 변하더라도 결코 지울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일 것입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동독인들의 실제 삶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작품은 다음의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원칙상 모든 것을 꽁꽁 얼릴 수 있다. 모유, 시체, 완두, 콩, 아스파라거스, 동독 전체의 경제, 정육사업, 철강과 쇠, 서류들. 우리는 구동독의 모든 것을 냉동 창고에 넣고, 그것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네테 그뢰쉬너는 자신의 과거 삶을 문학작품이라는 통조림 속에 보관하여, 이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