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뷔르거 (1936 -)의 책은 1974년 프랑크푸르트에서 간행되었다. 20세기초에는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 혁명적 예술 사조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것은 미래주의, 다다이즘 그리고 쉬르리얼리즘 등으로서 형식적으로는 상투성 내지는 실험과 같은 문체적 실험을 시도했으며, 사회적으로는 시민적 자본주의에 대항하려고 했다. 이와 관련하여 로마 어문학자 페터 뷔르거는 70년대 초 학생 운동의 슬로건에 입각하여 비판적 문예학을 연구하며, 아방가르드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아방가르드의 이론은 (18세기부터 형성된) 영향사적으로 전개된 “제도로서의 예술”의 개념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 개념으로써 뷔르거는 문학과 예술의 생산 분배 그리고 재생산 등을 어떤 주어진 역사의 단락속에서 조절하는 물질적 이념적 조건들을 요약하려고 한다. 중세 예식을 위한 예술 내지는 절대주의의 궁정 예술을 제외한다면, 시민적 제도로서의 예술은 실러 (일련의 편지에 나타난,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하여) 그리고 칸트 (판단력 비판)에 의해 생각된 사회적 자율성으로서의 현상으로 특징지워질 수 있다. 이로써 예술은 한편으로는 기존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반대상을 획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된 사회 현실을 보상해주는, 어떤 보다 나은 질서에 대한 긍정적인 예측적 상을 지니게 된다. 뷔르거는 헤겔과 마르크스가 시도한 예술의 변증법적 비판의 기능 (물론 마르크스의 후기 저작에서는 그러한 기능은 약화되고 있는데)을 계속 추적하였던 것이다.
예술적 자율성의 이중적 성격은 20세기 초의 유미주의가 첨예하게 제기한 것이다. 이로써 예술은 사회와 유미주의적으로 단절되었으며, 예술 수단 역시 완전한 구분되었다. 그리하여 예술 자체는 예술의 내용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뷔르거가 아방가르드 운동의 명제로서 제기한 카테고리로서의 틀이다. 1. 역사적으로 화한 아방가르드 운동은 시민주의 제도인 예술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비판하였다. 왜냐하면 아방가르드 운동은 예술이 삶의 실제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점, 나아가 유미주의의 예술 창작 그리고 고립되고 분화된 예술적 수용 등을 강하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2. 아방가르드 예술은 지난 시대의 예술 수단을 자유롭게 원용하기를 처음부터 포기함으로써, 예술 사조의 어떤 가능한 일원적인 양식을 청산하였다.
이러한 명제를 추적하며 뷔르거는 (아방가르드 예술이 구성하고 있는) 면모, 제스처 그리고 미적 수행 방식 등을 사회적 기능으로 명확히 투영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작품 카테고리의 독립성 및 응집력을 파괴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스스로 완성되는 상징적 예술 작품이 지니는) 일원성이라는 유형적 특성을 깨뜨린다. 몽타쥬의 기법, 소외화의 모습 새로움의 제스처 그리고 의도적으로 유희속으로 도입된 우연의 동기 등은 예술적 인공물을 창조하게 한다. (뷔르거는 예술적 인공물을 벤야민의 알레고리 개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비조직적 알레고리의 작품들로 명명한다.) 예술적 인공물은 스스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드러내고, (종합을 포기함으로써) 미적인 화해를 배제시키며, 명상적 관찰이라든가 해석학적인 의미 부여를 포기한다. 그 대신에 아방가르드 예술 작품은 예술 감상자의 태도 변화를 꾀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놀라운 쇼크를 던진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뷔르거의 주장에 의하면) 과거에 제도로서의 예술을 맹렬히 공격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과연 아방가르드의 프로그램이 (“실제 삶의 미학화”라는 슬로건 하에 문화 산업과의 결합속에서) 예술을 실제 삶으로 돌아서게 했는가? 아니면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드러나는 예술 수단의 자유로운 원용이 나중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절충주의에서 완전히 발전되었는가? 하는 물음은 아직 대답하기 어렵다. 확실한 것은 아방가르드의 요구 사항은 “영원한 다다이즘” 의 새로운 운동속에서 완전히 소진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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