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르네상스 유토피아의 세 가지 기본적 특성, 정태성, 부자유 그리고 폐쇄성: 모어의 『유토피아』의 전언은 너무나 강력하여, 수세기 동안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습니다. 비록 작품이 1516년 네덜란드에서 라틴어로 소개되었지만, 이듬해 파리에서 그리고 1518년 스위스의 바젤에서 간행되었습니다. 독일에서는 “놀라운 섬, 유토피아에 관해서라는 제목으로 1524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이로써 모어의 『유토피아』는 이어지는 다른 문헌들과 함께 고전적 유토피아로서 기능하게 됩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토머스 모어가 실제로 어떤 혁명적 행위를 주창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어떤 바람직한 국가의 체제로서의 기관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는 사실입니다. (Kamlah: 25f).
르네상스의 고전적 유토피아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본적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로 모어, 캄파넬라 그리고 베이컨으로 이어지는 정태적 모델들은 역사 발전의 역동성을 자극하는 힘을 결여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국가주의의 유토피아를 강조함으로써 개개인들은 약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모든 것은 국가중심으로 영위됩니다. 셋째로 고전적 유토피아는 섬 내지 폐쇄적 공간으로 상정되고 있으므로, 국제적 시각을 드러내지 않고, 고립된 특성을 드러냅니다. 물론 이러한 세 가지 특성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노붐 오르가눔』 경우 전적으로 일치되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솔로몬의 집에서는 세계 전체의 보편적 질서가 중시되고, 개방적 역동적 특성이 나타나고 있지만 (Höffe: 210), 이는 하나의 지엽적인 예외 사항에 불과합니다.
2. 에벌린의 「15 명의 동맹 동지들에게」:『유토피아』는 동시대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데, 우리는 에벌린과 도니의 문헌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독일 출신의 요한 에벌린 폰 귄츠부르크 (Eberlin von Günzburg, 1470 – 1533)은 자신의 이상 국가를 “볼파리아”라고 명명했습니다. 에벌린은 15 장으로 이루어진 연작 팸플릿, 「15명의 동맹 동지들에게」가운데 10 장과 11장에서 자신의 이상 국가인 “볼파리아”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에벌린의 문헌은 마르틴 루터의 표현에 의하면 “종교 개혁의 초기에 나타난 언어적으로 탁월하고 문체상으로 놀라운 사상을 드러낸 팸플릿”이라고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상 국가, “볼파리아”는 프로테스탄트의 이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Saage: 186). 그러나 에벌린의 글은 사회 정치적인 관점에서는 계층 사회를 용인하는 귀족적 보수주의에 근거하고 있어서, 유토피아의 역사 연구에서 배제되었으며, 유토피아의 역사의 영역이 아니라, 교회사의 영역에서 이따금 논의되는 실정입니다.
3. 에벌린의 삶 (1): 에벌린은 1470년 귄츠부르크 근처의 소도시 클라인쾨츠에서 태어났습니다. 조실부모하여 친척들의 도움으로 힘들게 살았습니다. 가난에 대한 뼈저린 경험은 그의 마음속에 주위의 고통당하는 이웃을 돕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에벌린은 1487년에 어느 독자가의 도움으로 잉골슈타트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2년 후에 학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잠시 사제로 일하다가, 1489년 스위스의 바젤로 가서 신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게 됩니다. 하일브론에서 생계를 위해 프란체스코 교단에 들어갔으나, 가톨릭 교리의 허례허식적인 제도에 식상해 있었습니다.
16세기 초반에 에벌린은 가톨릭 교단과는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신학을 공부하는 모임에 가담하였습니다. 1519년 우연한 기회에 그는 루터의 종교 개혁 사상에 매료되었습니다. 1521년 울름으로 향하여, 그곳에서 마르틴 루터의 사상에 경도하였습니다. (Seibt: 73). 에벌린은 종교적으로는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으나, 정치적으로는 선한 귀족을 동경하는 등 다소 어긋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신학에 그의 급진적인 신학적 견해는 자신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급기야 에벌린은 프란체스코 교단으로부터 추방당하는 비운을 맞이합니다.
4. 에벌린의 삶 (2): 에벌린은 1521년에 교단에서 추방당한 뒤에 「15명의 연맹 동지들에게」를 착수하여, 방랑기간에 집필했습니다. 이 글은 1522년 뷔르템베르크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신앙을 알리고, 가톨릭의 제반 계율들을 철폐하게 만들기 위해서 다른 방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에벌린은 쉬운 독일어 문장을 사용하여 인민의 관점에서 구태의연한 예식 절차 그리고 수사의 결혼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세웠습니다. 그는 수사들도 결혼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교황에게 직접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종교적 투사인 그에게 직접적으로 압박을 가했습니다. 에벌린은 평생 가난하게 살았으며, 만년에는 아내와 네 명의 자식과 함께 안스바흐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궁핍하게 살다가 1533년 유명을 달리합니다.
5. 집필 계기: 에벌린은 연작 팸플릿을 통해서 독일인들에게 현재 성당과 교회의 실상을 알리고, 종교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특히 강조된 사항은 마르틴 루터와 울리히 폰 후텐Ulrich von Hutten의 새로운 신학 사상이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종교 개혁이 성공리에 끝나기를 애타게 갈구하였습니다. 1520년에 신성로마제국의 새로운 황제로 등극한 젊은 카를 5세는 기독교가 새롭게 발전되고 개혁되어야 한다고 설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발언은 종교적으로 탄압 당하던 유럽 인민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에벌린은 상인 계급 외에도 로마 교황청의 교위수사들에 대한 저주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었습니다. 이들은 오로지 법칙만을 준수하며, 인민의 고혈을 빨아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은 가톨릭 교단의 고위수사 가운데 몇 명이 직접 권력자의 곁에서 모든 정책을 개입하는 데 있었습니다. 실제로 에벌린은 작품 「15명의 동맹 동지들에게」에서 이러한 사항을 직접 논평하고 있습니다. 교회 세력이 신성로마제국의 정책에 노골적으로 개입함으로써 국가의 엄청난 세금은 백성들을 위해서 지출되지 않고, 교묘한 방법으로 교회로 빠져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는 에벌린에 의하면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의 책사, 요한 글라피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6. 작품의 내용: 에벌린의 15 편의 연작 팸플릿 가운데 제 10장과 11장에서는 기독교 이상국가인 “볼파리아”의 면모가 일목요연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미지의 섬, “볼파리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모든 물품을 나누어 사용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면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둘째로 미지의 섬, 볼파리아에는 사유재산제도가 철폐되어 있으며, 농업을 중심으로 모든 재화는 균등하게 배분됩니다. 셋째로 남녀의 값싼 의복은 구별되어 있으며, 일부일처제의 결혼 생활 역시 강조되고 있습니다. (Seibt: 79). 넷째로 에벌린은 이곳의 하루 일과를 새벽부터 밤까지 세밀하게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섯째로 안식일은 일주일에 한 번이면 족하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에벌린은 사제 계급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였습니다. 종교인들은 자신의 권리를 더 이상 확장시킬 수 없으며,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수사들 역시 얼마든지 결혼하여 자식을 거느릴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섯째로 이른바 탁발 수도원은 모조리 철폐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탁발 수도원은 프란체스코 수도원, 카멜리트 수도원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탁발 수도원은 겉으로는 청빈을 중시하면서도 속으로는 수도원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데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곱째로 결혼을 원하는 자 그리고 상인으로 근무하고 싶은 자는 반드시 볼파리아 관청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에벌린은 방랑하는 민초들이 가급적이면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덟째로 간음, 음주 난동, 신성모독, 도박 등의 행위는 철저하게 금지되어야 합니다. 아홉째로 모든 남자들은 수염을 길게 길러야 한다고 에벌린은 주장합니다. (Jens 5: 8). 여기서 우리는 유대교의 가부장주의의 관습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7. 모어의 유토피아와의 유사성: 그런데 에벌린이 모어의 『유토피아』를 직접 구해서 이를 참조했다는 고증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다른 문헌에서 모어의 영향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모어가 창안한 개념 유토피아는 “없는 곳” 내지 “최상의 곳”이라는 모순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유토피아』의 등장인물, “히틀로데우스” 역시 “현자” 내지 “거짓말 이야기꾼”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드러냅니다. 이러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서 모어는 작품 내용으로부터 스스로 거리감을 취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당국으로부터의 검열을 피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유토피아』가 대화체의 문체로 기술되어 있다는 점 역시 이와 관계됩니다. 두 명의 화자는 작가의 입장과 대비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벌린의 이상 국가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이러한 의도와는 아무 관련성이 없습니다. “볼파리우스”에서는 어떤 남자가 등장하여 미지의 찬란한 나라에 관해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프시타코스Psytacos”인데, 이 단어는 어원에 의하면 “코푸는 남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어떠한 정치적 의미도 찾을 길이 없습니다. 프시타코스는 방울 달린 모자를 쓴 바보 내지 얼간이로 등장합니다. 에벌린은 글의 내용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려고 이러한 단어를 사용했을 뿐입니다.
8. 볼파리아 그리고 유토피아 (1): 볼파리아에서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규정에 의해서 정해져 있습니다. 이는 안드레애의 『기독교 도시국가』의 경우와 동일합니다. 에벌린의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모어의『유토피아』와 공통점을 드러냅니다. 첫째로 에벌린은 자신의 이상 국가 “볼파리아”에서 사유재산제도를 거부하고 공유제를 과감하게 도입하였습니다. 지상의 모든 재화는 개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신께서 하사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에벌린의 유토피아가 사유재산 제도를 거부하는 근본적 이유는 모어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모어는 사유재산 제도가 인간으로 하여금 부정부패를 저지르도록 추동한다고 믿은 반면에, 에벌린은 단순히, 신학적 관점에서, 다시 말해 원죄설에 입각하여 사유재산을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김영한: 81).
지상의 모든 물품의 신의 소유이며, 인간은 살아있는 동인에만 이를 사용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둘째로 지상의 천국, “볼파리아”는 미지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미지의 섬은 모어가 신대륙 발견에 착안하여, 고대에 나타난 축복의 섬에 관한 신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입니다. 에벌린 역시 이러한 특징을 자신의 작품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Thomson: 51). 셋째로 에벌린은 모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볼파리아의 사람들에게 방종과 사치를 처음부터 금지하고 있습니다. 불파리아 사람들은 금과 은을 열렬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묘사는 르네상스 시대의 정신과도 일치합니다. 생산력이 극대화되지 않은 당시의 시대적 정황을 고려하면, 과도한 향락을 누리지 않고, 절제와 절약의 삶을 살아가는 게 거의 필연적이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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