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24. 사치의 금지와 노동의 의무: 사람들은 선 (善)에 입각한 세밀한 법을 제정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돈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흥청망청 사치스럽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오로지 가장 필요한 필연적인 부분만을 고려하여 집을 장만해 두었습니다. 대신에 집의 지붕은 화원으로 꽃으로 치장할 수 있습니다. 진보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만인이 정기적으로 일해야 합니다. 이러한 조처로 인하여 극빈층과 최상류층은 해체되었습니다. 그래서 미래의 파리의 거리에서는 거지가 동냥하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완전히 근절된 것은 아닙니다.
메르시에는 만인의 노동을 다음과 같이 피력합니다. “모두가 하루도 빠짐없이 일해야 한다. 일하지 않으면 조국은 직접적으로 손실을 입는다. 노동 없는 생활은 한마디로 죽음에 대한 부드러운 표현이다. 기도하는 시간은 분명히 정해져 있다. 신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만 지니면 족하다.” (Mercier 1982: 96). 과거에 교회가 정했던 종교적 공휴일은 철폐되어 있습니다. 자유 시간은 오로지 노동력을 보충하든가, 지속적으로 교양을 쌓는 시간으로 활용됩니다.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이러한 이상 국가의 시민들은 자신의 개인적 자유를 상당부분 포기해야 합니다. 대신에 그들은 완전성의 척도에 가장 근접하게 도달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25. 작품 속에 반영된 모어의 영향: 메르시에는 작품 속에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차용하였습니다. 이를테면 미래의 파리 사람들은 모든 도박 게임을 금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주사위 놀이도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게임이나 유희가 인간의 필연적 노동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숲에서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행위는 저열한 유희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짐승의 도살과 정육 업종의 일감을 행하는 자는 대부분 외국에서 데리고 온 하층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매매춘은 법으로 철저하게 다스립니다. 그리고 부정 축재 역시 사악한 행위로 취급 받습니다. 귀중품에 대한 경고 내지 폄하의 발언 등은 모어의 유토피아에 이미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26. 메르시에의 처절한 시대 비판: 메르시에의 유토피아는 무엇보다도 당대의 귀족과 교회 세력이 지니고 있던 사치, 특권 그리고 허영심을 비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자고로 18세기의 절대주의 왕정의 독재 체제는 두 계급에 의해서 지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하나는 귀족 계급이며, 다른 하나는 가톨릭교회의 고위 수사계급입니다. 두 계급은 노동을 통해서 재화를 창출하지 않은 채 권력에 빌붙어서 인민의 피를 빨고 있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비판은 서문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메르시에는 등장인물 한 사람의 입을 빌려서, 두 계급에 대해 엄청난 저주를 퍼붓습니다. “너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생각해 보라. 하수도 아래로 흘러가는 온갖 오물들은 그들 (귀족과 교회 세력 사람들)의 영혼보다는 더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손에는 금덩어리가 쥐어져 있고, 그들의 심장에는 온갖 간계가 가득 차 있구나. 사악한 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더 커다란 고통 속으로 빠지게 하려고 온갖 음모를 저질러 왔다.” (Mercier 1982: 128). 여기서 우리는 메르시에가 사회의 유한계급에 해당하는 귀족과 교회의 고위사제들을 얼마나 증오했는가? 하는 점을 과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27. 메르시에의 계몽주의 사상: 메르시에는 과학 기술 발전을 통한 더 나은 사회적 삶을 도모하려는 인간의 개선 의지에 무한한 신뢰를 보냅니다. (정해수: 369). “어떠한 인간도 자연의 법칙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있다. 어느 누구도 노예로 태어나지 않았다. 설령 왕이라고 하더라도 머리에 왕이라는 글자를 박은 채 태어나지 않고, 오로지 인간으로 태어날 뿐이다. (...) 자연의 법은 단순하고 순수하다. 그것은 단순한 언어로 모든 민족에게 공표되어 있다. 모든 이성적 인간은 자연의 법이 우주적으로 유효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한 법칙은 결코 비밀스러운 그림자에 의해 둘러싸여 있지 않다. 그것은 생동하는 규정이며, 모든 심장의 결코 지워지지 않는 부호로 기술되어 있다.” (Mercier 1982: 245).
자연의 법칙에 의하면 빈부 차이는 어디서나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 현실에서는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온존하고 있었습니다. 시골의 소작농들은 대지주의 요구로 마치 황소처럼 뼈 빠지게 농사를 지은 뒤에 일 년치의 새경 가운데 대부분을 대지주에게 헌납했고, 세금으로 납부해야 했습니다. 그들과는 달리 상류층 사람들은 사치와 방탕으로 삶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귀족의 성에 전시되어 있는 도자기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잘못 발을 디뎌서 박살낼 수 있는 귀중품이지만, 이 손실은 동방의 20개의 부족을 경제적으로 몰살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라고 합니다. 부자들은 불과 12명의 손님을 점대하기 위해서 300명의 하인들로 하여금 힘들게 일하게 했으며, 귀부인은 농부들의 10가구가 일 년 동안 먹고살 수 있는 돈 가치의 귀걸이를 귀에 치렁치렁 걸고 있다고 합니다. (Mercier 1982: 186).
28. 메르시에의 유토피아의 문제점 (1): 그렇지만 메르시에가 설계한 파리의 미래 사회는 몇 가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첫째로 『서기 2440년』에는 과학 기술에 관한 획기적인 사항이 빠져 있습니다. 파리는 농업 경제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에너지원으로서 오로지 물을 활용할 뿐입니다. 작가는 심지어 증기기관을 활용하는 방안조차 창안해내지 못했습니다. 근대적 에너지 자원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준 높은 삶을 영위한다면, 여기에는 문학적 리얼리티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메르시에에 비하면 자동차와 기차 그리고 선박에 관한 푸리에의 상상력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생물학 연구에 관한 제반 사항도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에 언급된 것 이상을 도출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그곳 사람들은 성생활에 있어서 어떤 곤란한 문제와 조우할 수 있습니다. 이곳의 남녀들은 철저한 일부일처제를 준수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매매춘이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으므로, 성생활은 혼인 내에서 합법화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부의 사이가 좋지 않는 남녀 그리고 사랑의 삶에서 불행한 남녀의 경우 어떠한 해결책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메르시에의 유토피아에서 지적받아야 할 사항은 작가가 처음부터 여성의 예속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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