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29. 대포의 사용: 셋째로 이곳 사람들은 서로 싸우지 않고, 전쟁을 혐오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미지의 적은 미래의 어느 순간에도 얼마든지 돌출할 수 있습니다. 적은 불시에 나타나서 미래의 파리를 공격하여 시가지를 순식간에 초토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파리 사람들은 각개전투를 위한 소총보다는 가급적이면 커다란 성능을 지닌 대포를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포는 적의 핵심부를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섬멸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적에 대한 대응의 문제 내지 전쟁의 문제는 모든 문학 유토피아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취약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메르시에가 대포의 개발과 생산을 무조건 찬양하지는 않았습니다. 대포의 생산은 메르시에에 의하면 과학 기술의 잘못된 적용의 결과라고 합니다. 소수의 부자들이 대포를 지니게 되면, 재화를 무제한적으로 축적할 수 있으며, 사회적 평화를 망칠 수 있다고 합니다.
30. 메르시에의 유토피아의 문제점 (2): 넷째로 메르시에의 이상 사회는 합리적으로 축조되어 있지만 모든 것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검열이 존재하고, 예술이 국가에 의해서 통제당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장 작 루소와 같은 일부 작가는 예외이지만- 사람들이 금서로 지목된 서적들을 공개적으로 불태운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근대의 분서갱유와 다를 바 없습니다. 문학 작품도 교훈적인 것만 선별적으로 채택됩니다. 이를테면 사포Sappho, 아나크레온Anakreon, 아리스토파네스 그리고 루크레티우스 등의 문학 작품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방종의 유희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모두 분서갱유의 대상이 됩니다.
이를테면 메르시에는 루크레티우스의 문헌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즉 그의 물리학은 잘못된 것이고, 그의 윤리는 부적절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중세의 모든 에로틱한 향유를 담은 문학 작품은 분서갱유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화가와 조각가 역시 미덕을 지닌 인간 영혼과 무관한 작품을 전시해서는 아니 된다고 합니다. (Mercier 1971: 155). 상기한 내용을 고려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메르시에는 이상 국가의 상을 상상하면서,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 그리고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등에 나타난 사회 유토피아의 상을 넘어서지는 못했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메르시에가 설계한 가상적인 현실은 시스템으로서의 완벽한 체제를 갖추고 있지 못하며, 부분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1. 요약의 말씀: 유토피아는 계몽주의 시대에 공간 유토피아로부터 시간 유토피아, 다시 말해서 “우크로니아”로 의미 변화를 이룹니다. 이로써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은 계몽주의의 시기에 이르러 패러다임의 전환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앞에서 이미 어떠한 이유에서 “(정태적) 완전성”의 개념이 계몽주의에 이르러 “(역동적) 완전성” 내지 완전성으로 향하는 운동의 개념으로 뒤바뀌게 되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은 메르시에의 미래 소설이 나타난 시점입니다. 18세기 중엽부터 사람들은 이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운 땅이 발견될 수 없다는 점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Fohrmann: 108).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일은 이제 공간 구도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미래 속에는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무제한적인 활동 영역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년 후에 미래를 소재로 한 소설들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쥘 베른, 웰스 등의 소설은 현대의 사이언스 픽션을 태동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는데, 이러한 미래 소설의 모티프는 메르시에의 작품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참고 문헌
- 루소, 장 작 (2008): 에밀, 이환 역, 돋을새김.
- 볼테르 (2010):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이병애 역, 문학동네.
-이종찬: (2020): 훔볼트 세계사 자연사 혁명, 지식과 감정.
- 임정택 (2011): 상상. 한계를 뛰어넘는 발칙한 도전, 21세기북스, 178 – 184.
- 정해수/ 장연욱 (2011): 루이 세바스티엥 메르시에의 Uchronie 『서기 2440년』과 유토피아 사상, 실린 곳: 프랑스 문화 연구, 제 23집, 361 – 390.
- 주명철 (2015): 루이 세바스티엥 메르시에가 겪은 혁명, 실린 곳: 서양사론, 125권, 124 – 151.
- Fohrmann Jürgen (1983): Utopie und Untergang. L.-S. Merciers L’An 2440, in: Klaus L. Berghahn, Hans U. Seeber (Hrsg.): Literarische Utopien von Morus bis zur Gegenwart, Königstein/Ts., 105 - 124.
- Freyer, Hans (1936): Die politische Insel. Eine Geschichte der Utopien von Platon bis zur Gegenwart, Leipzig.
- Fuchs, Eduard (2015): Illustrierte Sittengeschichte vom Mittelalter bis zur Gegenwart in 3 Bänden, Salzwasser: Paderborn.
- Gnüg, Hiltrud (1999): Utopie und utopischer Roman, Stuttgart.
- Kleinwächter, Friedrich (1891): Die Staatsromane. Ein Beitrag zur Lehre des Communismus und Socialismus, Wien.
- Koselleck, Reinhart (1985): Die Verzeitlichung der Utopie, in: Utopieforschung, (hrsg.) Wilhelm Vosskamp, Interdisziplinäre Studien zur neuzeitlichen Utopie, 3. Bd. Stuttgart, 1 – 14.
- Mercier, Louis-Sebastian (1971): L’an Deux Mille Cent Quarante, Rêve s’il en fut jamais, Introduction et Notes par Raymont Trousson, Bordeaux.
- Mercier, Louis Sebastian (1982): Das Jahr 2440. Ein Traum aller Träume. Deutsch von Christian Felix Weiße. Frankfurt am Main.
- Montesquieu, Charles de Secondat (1994): De l’esprit des loit, Vom Geist der Gesetze, Stuttgart.
- Trousson Raymond (1985): Utopie, Geschichte, Fortschritt, in: Vosskamp, Wilhelm (hrsg.), Utopieforschung, Bd. 3. Interdisziplinäre Studien zur neuzeitlichen Utopie, frankfurtt a. M., 15 – 23.

'26a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박설호: (1) 모어 이후의 르네상스 유토피아 (0) | 2026.06.16 |
|---|---|
| 박설호: (4) 메르시에의 시간 유토피아 '서기 2440년' (0) | 2026.04.16 |
| 박설호: (3) 메르시에의 시간 유토피아. '서기 2440년' (0) | 2026.04.15 |
| 박설호: (2) 메르시에의 시간 유토피아 '서기 2440년' (0) | 2026.04.10 |
| 박설호: (1) 메르시에의 시간 유토피아 "서기 2440년" (0) | 2026.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