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a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박설호: (2) 메르시에의 시간 유토피아 '서기 2440년'

필자 (匹子) 2026. 4. 10. 11:06

(앞에서 계속됩니다.)

 

7. 당대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는 위대한 작가: 자고로 위대한 작가는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그 하나는 살아서 온갖 명성을 누린 다음에 죽은 뒤 세인의 관심사에서 멀어지는 작가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살아 있을 때 어떠한 인정도 받지 못했지만, 죽은 뒤에 지속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경우입니다. 메르시에는 후자에 속했습니다. 당대의 사람들은 메르시에를 “혼란스런 사고를 지닌 삼류 작가”라고 조롱하고 경멸하였습니다.

 

메르시에의 진면목을 알아차린 자들은 후세의 작가들 그리고 평론가들이었습니다. 19세기의 프랑스 작가, 샤토브리앙, 위고, 발작 그리고 보들레르 등은 메르시에로부터 많은 문학적 영감을 얻었다고 술회한 바 있으며, 독일의 작가, 렌츠Lenz, 클링거Klinger, 장 파울Jean Paul, 빌란트 그리고 심지어는 고전주의 작가 괴테와 실러도 메르시에의 작품에 탄복을 터뜨리기도 하였습니다. 메르시에는 상류층의 사치스러운 삶을 비아냥거리고, 노동자의 가난한 삶과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했으며, 특히 재화의 불균등한 분배 현상에 대해 항상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였습니다.

 

8. 찬란한 미래의 파리: 이제 작품 "서기 2440년, 모든 꿈 가운데 가장 대담한 꿈L’an deux mille quatre cent quarante: Rêve s’il en fût jamais"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작품은 유토피아 소설로서 1771년에 발표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무려 25판이나 간행될 정도로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했습니다. 1785년에 이르러 작품은 두 권으로 출간되었으며, 1786년에는 런던에서 세 권으로 간행되기도 하였습니다. 메르시에는 당시 파리의 귀족들의 불륜, 종교인들의 타락 그리고 권력자들의 착취 행각에 대해 비통한 마음으로 개탄하였으며, 당시에 서서히 끓어오르던 사회적인 불안 등을 피부로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작가는 이 모든 것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대신에, 미래의 파리를 가상적으로 설계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메르시에가 작품에 묘사한 미래의 파리의 상은 근본적으로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의 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메르시에의 작품이 시간 유토피아의 전형으로 이해되는 것은 유토피아 연구에서 드러나듯이 주어진 시대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라는 전제 하에서 가상적 공간이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9. 미래 사회의 외부적 특징: 메르시에는 2440년에 파리에 사는 어느 시민의 체험을 묘사하였습니다. 그는 1768년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는데, 자신의 몰골이 백발노인이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말하자면 주인공은 672년 동안 잠을 잔 다음에 2440년에 잠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그의 시각은 볼테르의 「미크로메가스Micromégas」(1752)에 등장하는 현자와 비슷합니다. 볼테르의 작품에서 현자는 형이상학의 여러 오류 그리고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간주하는 세인들의 오만한 아집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볼테르: 21). 메르시에가 서술한 미래의 파리는 마치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항구도시, 아마우로툼과 유사합니다. 거리에는 썩어가는 악취와 더러운 공기가 사라져 있습니다.

 

당시 유럽의 건물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대부분 사람들이 요강을 사용했습니다. 17세기 파리의 골목에는 아침이면 사람들이 창문밖으로 버린 똥오줌으로 인하여 코를 찌르는 냄새가 풍기곤 하였습니다. 하이힐이 발명된 것도 바로 이 시점이었습니다. 코르셋 차림의 여성은 두 가지 이유에서 높은 구두를 착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 하나는 거리의 오물로 발과 치마를 더럽히지 않기 위함이며, 다른 하나는 엉덩이를 보다 탄탄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Fuchs 2: 197). 그렇지만 2440년의 시점에는 파리의 도로는 확장되고 깨끗합니다. 더러움은 사라지고 모든 것은 위생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교통 혼잡이 없어서, 보행자는 편안하게 활보할 수 있습니다. 느긋하게 달리는 마차도 간간이 눈에 띕니다. 과거에 마차를 타던 사람들은 특권층들로서 행인이 다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거칠게 마차를 몰았습니다만, 이제는 노인과 병자들만 마차를 타고 다닙니다. 마차는 행인들에게 길을 양보해주기도 합니다. 왕년에 흉측하게 보이던 끔찍한 성, 바스티유 감옥은 철거되었고, 장벽만이 옛날의 흔적을 을씨년스럽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0. 학문과 교육: 미래의 파리에서는 계몽주의의 이상이 거의 실현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2440년 파리에서는 이성과 관용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그토록 막강한 위세를 떨치던 신학과 법학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 약화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연과학과 응용과학에 커다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더 이상 논쟁과 주먹질도 하지 않으며, 국가와 국가 사이에도 더 이상 무력을 행사하는 전쟁을 치르지도 않습니다. 교육의 영역에서도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도서관에는 볼테르의 책이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그 대신에 백과사전 학파의 책들은 빽빽하게 소장되어 있습니다. (Mercier 1971: 252).

 

학생들은 대학에서 마음대로 인간의 몸을 해부하고 실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장육부에 대한 해부학 실험은 신성한 신의 선물인 육체를 훼손할 수 없다는 이유로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금기시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종교와 과학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천문학의 개발로 인한 범선 여행은 프랑스의 무역을 촉진시켰습니다. 이집트와 그리스의 상당 부분의 땅은 프랑스 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노예 제도가 금지되어 있으며, 자연법이 어느새 승리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11. 교과과목과 종교: 미성년자들은 가부장주의 가정에서 루소의 교육관에 의해서 교육 받습니다. 교육 목표는 이성과 자연의 법칙에 의해 정해져 있는데, 아이들의 정서적 능력을 함양시키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육체적 능력과 병행하여 계발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같은 고대어를 배우지 않고, 이탈리아, 영어, 독어 그리고 에스파냐어를 외국어로 습득합니다. 가령 고대의 형이상학과 딱딱한 삼단논법 등은 모조리 사라지고, 그 대신에 윤리라는 과목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백과사전의 내용은 학교의 필수 과목으로 책정되어 있습니다. 역사 그리고 형이상학의 과목은 현대의 자연과학에 밀려서 거의 배제되어 있습니다. 물리학은 인간의 존재에 해답을 내리고 있으며, 신은 우주, 혹은 인간의 이성과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주는 신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메르시에는 체제 내지 기관으로서의 종교 단체를 철저히 거부합니다. 따라서 메르시에의 이상 국가에서는 사원이 완전히 철폐되어 있으며, 수사의 서품식, 면죄부의 판매 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소수의 수사들만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이들은 공동체 내에서 가장 천하고 더러운 노동을 기꺼이 수행합니다.

 

12. 미래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 미래의 도시, 파리에서는 수사, 신부, 매춘부, 춤꾼, 군인 등의 계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가 무엇을 증오하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메르시에는 교회의 권한을 축소하고, 돈으로 사랑을 구매하는 행위를 근절시키고 싶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춤과 유희는 사람들을 유흥에 사로잡히게 만들기 때문에 거부의 대상이 되고, 군인은 전쟁이 거의 사라졌으므로 필요 없는 존재로 전락해 있습니다. 당시에 메르시에는 18세기 중엽 서인도 제도의 히스파니올라에서 발생한 콩고 출신의 노예들의 무장 봉기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위대한 흑인들은 노예 제도의 쇠사슬을 끊고 프랑스 혁명 이전에 이미 “자유, 평등 그리고 동지애”를 실천하였습니다. (이종찬: 183)

 

노예제도, 임의로운 체포 구금 행위 등은 사라진 지 오래 되고, 사람들은 더 이상 세금을 납부하지 않습니다. 또한 커피, 차 그리고 담배 등은 유한계급을 존속시킨다는 이유로 더 이상 파리로 수입되지 않습니다. 천문학자들은 망원경을 통하여 행성과 항성을 관찰하면서, 창조주의 위대성을 재확인하곤 합니다. 문학 작품은 무엇보다도 “자연과학 그리고 정치학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향상시켜주며, 도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문명은 2440년 파리의 삶에서 아주 긍정적으로 발전되어 있습니다.

 

13. 가부장 중심의 가족 제도 (1): 메르시에는 루소의 『계약 사회Contrat social』(1762)에 근거하여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틀을 설정하였습니다. 이러한 틀은 전체주의적이고 전인적인 특성을 드러냅니다. 메르시에는 다른 자연법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제 1계층 (지배계급), 제 2계층 (귀족 및 수사 계급) 그리고 제 3계층 모두에게 자유로운 권한을 부여합니다. 다만 제 3 계층의 경우 가정의 가장만이 정치적 권한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족은 가부장 중심의 최소의 단위입니다.

 

사람들은 적재적소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노동의 의무를 실천합니다. 결혼식은 자유롭게 치러집니다. 결혼 전에 여자는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혼인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 후에 여성은 반드시 수동적으로 가정에 충실해야 합니다. 새로운 미래 국가에서는 이혼도 가능하지만, 이혼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메르시에의 유토피아에서는 여성의 권한이 현격하게 축소되어 있습니다. 이는 루소의 『에밀』(1762)에 반영된 남존여비의 관점을 그대로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14. 가부장 중심의 가족 제도 (2): 메르시에는 루소는 다음과 같은 말을 작품에 직접 인용하고 있습니다. “여성은 남성에게 순종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설령 자신이 옳다고 하더라도 여성은 남자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Gnüg: 124). 따라서 집안의 가장은 여성일 수 없으며,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가부장이 국가와 사회의 모든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근대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메르시에는 여성의 지위를 경미한 범위에서 향상시켜놓았습니다. 가령 모든 처녀들은 배우자를 능동적으로 선택할 찬스를 얻습니다. 그 대신 남편이 자신의 양육자이기 때문에, 여성들은 이에 대한 자부심과 남편에 대한 정조를 지켜야 합니다. 나아가 메르시에는 일부 특권층 여성들에게 특권을 부여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여성들도 지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오로지 자식을 더욱더 세심하고 영리하게 키우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