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독일 영화

(영화) 타인의 삶

필자 (匹子) 2021. 2. 8. 11:37

1. 공정하게 영화를 바라보기: 친애하는 Y, 영화 『타자들의 삶』은 2006년에 발표된 영화입니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Florian Henkel von Donnersmarck)가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맡았으며, 막스 비더만 외 네 사람이 제작을 담당한 이 영화는 수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문제는 이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에 있습니다. 

 

혹자는 이 영화를 동독 스타지의 감시를 예리하게 해부한 작품이라고 긍정적으로 평하는 반면에, 혹자는 영화 자체가 서독인의 시각에서 투영되고 있기 때문에 동독 현실의 어떤 긍정적인 측면을 모조리 생략했다고 비난하곤 합니다. 일단 작품의 줄거리를 소개할 테니, 이에 관해서 당신 스스로 모든 사항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비판하기 바랍니다.

 

2. 비슬러, 극작가 한 사람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명을 받다: 1984년 슈타지 본부는 동베를린의 주인공인 슈타지 간부, 게르트 비슬러에게 누군가를 감시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극작가 게오르크 드라이만을 감시하는 일이었습니다. 드라이만은 국가를 위협하는 자료를 수집한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슬러는 저명인사에 해당하는 친정부주의의 작가를 감시하는 일 역시 슈타지의 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배후의 의도에서 슈타지 업무를 총괄하는 문화부장관, 브루노 헴프 조차도 드라이만을 감시하는 데 흔쾌히 동의했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헴프는 극작가 드라이만을 어떻게 해서든 제거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눈에는 그라이만과 동거하는 여자인 크리스타-마리아 질란트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비쳤기 때문입니다. 헴프는 어떻게 해서든 드라이만을 제거한 다음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미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크리스타-마리아는 아주 매혹적인 여자였는데, 동베를린에서 배우로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3. 개인의 사적인 욕망 때문에 타인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비슬러는 슈타지 대원들과 함께 드라이만 가족이 없는 틈을 타서 도청 장치를 설치합니다. 모든 방에 비밀 마이크를 부착시켜 두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드라이만의 집에서 발생하는 모든 대화를 경청합니다. 그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마리아의 사생활을 감시하며, 그들의 사랑의 대화를 엿듣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헴프가 집을 찾아와서 크리스타-마리아와 대화를 나누는데, 비슬러는 이를 엿듣게 됩니다. 

 

직속상관인 그루비츠는 도청 시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문화부장관 헴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지 말라고 경고한 터였습니다. 그러나 비슬러는 열심히 일해서 대단한 실적을 내고 싶었으므로, 상사가 시키지 않은 일을 행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 모든 내막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도청과 감시 행위는 “사회주의의 적”에 대항하는 과업이 아니라, 문화부장관의 사적인 욕망 때문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비슬러는 이에 대해 몹시 실망합니다.

 

4. 헴프의 사악한 의도에 말려드는 여배우: 크리스타-마리아는 늦은 시간에 헴프와 함께 집을 나서게 됩니다. 크리스타-마리아는 계속 배우로서 경력을 쌓으려고 했는데, 문화부는 여러 가지 결함들을 지적합니다. 이러한 결함은 비록 하찮은 사항들이었으나, 그미가 배우로 성공하는 데 치명적인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미는 모든 것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여러 번에 걸쳐 문화부 장관을 만나서 카섹스를 행합니다. 브루노 헴프는 목요일마다 그미와 만나 성행위를 나누는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비슬러는 어떻게 해서든 그미의 동거남인 드라이만이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업무가 문화부장관의 사적인 흑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슬러는 이 사실을 드라이만에게 은밀하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흔적으로 남기기 위해서 드라이만의 방으로 잠입합니다. 

 

사실 비슬러는 사적인 삶에 있어서 외롭게 살아가는 사내였습니다. 게다가 예술에 관한 무엇을 접할 기회도 그에게는 많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드라이만은 전혀 다르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비슬러는 드라이만의 집에서 예술가의 사회적 삶이 어떠한지를 감지하며, 서재의 책을 꺼내 읽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비슬러는 자신의 매마른 삶을 깨닫고, 서서히 문학과 예술에 입문하게 됩니다.

 

5. 브레히트의 시작품: 비슬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정신세계라든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비록 막연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타당한 시각을 견지할 수 있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 속에서 브레히트의 시 「마리 A에 관한 기억」이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날 푸른 9월의 달빛 아래/ 조용히 어떤 싱싱한 자두나무 아래에서/ 나는 그미, 조용한 창백한 사랑을/ 고결한 꿈처럼 내 품에 안고 있었지./ 우리 위, 아름다운 여름 하늘에는/ 구름이 있었어, 나는 오랫동안 보았지/ 구름은 매우 하얗고, 아주 높이 있었어./ 다시 쳐다보았을 때, 사라지고 말았지.

 

(An jenem Tag im blauen Mond September/ Still unter einem jungen Pflaumenbaum/ Da hielt ich sie, die stille bleiche Liebe/ In meinem Arm wie einen holden Traum./ Und über uns im schönen Sommerhimmel/ War eine Wolke, die ich lange sah/ Sie war sehr weiß und ungeheuer oben/ Und als ich aufsah, war sie nimmer da.)

 

6. 친구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드라이만: 다른 한편 극작가 드라이만은 문화부장관, 헴프와는 좋지 못한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그는 헴프에게 자신의 친구 알베르트 예르스카를 도와달라는 부탁했든데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예르스카는 연출가였는데, 약 7년 전에 어떤 계기로 인하여 구동독에서 공개적으로 연출가로 일할 수 없다는, 이른바 “직업 정지 Berufsverbot”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화부 장관이 그에 관해서 좋은 말을 해주면, 예르스카는 합법적으로 연출가로 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르스카는 자신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만 자살하고 맙니다. 

 

슬픔에 사로잡힌 드라이만은 피아노에 앉아서 “선한 인간에 관한 소나타”를 연주합니다. 이곳은 피아노 연습곡으로서 언젠가 예르스카가 그의 생일날 선물한 것이었습니다. “착한 사람들에 관한 소나타”는 브레히트의 극작품 「사천의 선인」을 연상하게 합니다. 작품의 주인공 센테는 비록 창녀로 일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손해를 감수하는 인물이 아닙니까? 비슬러는 이 곡을 엿듣고 깊은 감동에 사로잡힙니다. 그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빈 집에 몰래 잠입하여 브레히트의 책을 읽습니다. 보고서에는 아무런 의미 없는 이야기가 기록됩니다.

 

7. 비슬러, 여배우를 설득하여 좋은 길로 안내하다: 브레히트는 “자본주의 사회 구조 하에서는 선을 베푼다는 일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 극작품을 집필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선을 베풀려는 의지 내지는 인간애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주인공 게르트 비슬러는 바로 이 사실을 서서히 깨닫습니다. 즉 체제 내지 직업과는 무관하게 타인에 대한 정과 배려로 살아가는 태도 - 이것이야 말로 자본주의의 사회든 사회주의의 사회든 간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조금씩이나마 소지해야 할 덕목이라고 믿습니다. 

 

놀라운 것은 비슬러가 문학과 예술에 어느 정도 식견을 지니기 시작할 무렵, 드라이만이 과거에 지녔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서서히 저버리기 시작한다는 사실입니다. 비슬러 역시 도청을 통해서 이를 잘 간파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드라이만의 체제파괴적인 행동을 자신의 보고서에 한 마디도 거론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체제파괴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반정부적인 활동을 은밀하게 시도하려고 한다면, 국가의 녹을 먹고 사는 다른 한 사람은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크리스타-마리아는 문화부장관, 헴프를 만나서 살을 섞습니다. 

 

아마도 헴프는 자신의 권력을 활용하여 그미를 협박하면서 동침을 강요했던 것입니다. 크리스타-마리아는 이러한 관계에 대해 몹시 고통을 느낍니다. 그미는 수면제 없이는 잠을 청할 수 없습니다. 비슬러는 약국을 찾은 그미를 만나 잠깐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는 사랑하는 임에 대한 지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용기를 잃지 말라고 그미를 다독거려줍니다. 결국 크리스타-마리아는 헴프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드라이만에게 되돌아옵니다.

 

8. 체제 비판적으로 변한 드라이만, 동독의 자살률에 관한 보고서를 집필하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서독의 잡지 슈피겔의 기자가 몰래 타자기 한 대를 동독으로 가지고 와서 극작가, 드라이만에게 전달한 것이었습니다. 드라이만은 타자기를 사용하여, 어떤 보고서를 집필합니다. 그것은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1977년 이후로 증폭된 구동독의 자살률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구동독의 자살률은 동서독 어디서도 공개되지 않은 사항이었습니다. 

 

슈피겔지는 드라이만의 보고서를 익명으로 공개합니다. 슈타지 본부는 보고서가 공개된 것을 접하고 몹시 흥분합니다. 더욱이 헴프는 크리스타-마리아가 더 이상 자신과 만나지 않는다는 데 대해 상처를 입었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크리스타-마리아를 심문하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합니다. 그미는 정치적 압박에 대해 더 이상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청해서 “비공인 협조 요원 Inoffizielle Mitarbeiter”이 되겠다고 말하면서, 드라이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뒤이어 그미는 슈피겔 잡지에 글을 쓴 사람이 다름 아니라 드라이만이라는 사실을 폭로합니다.

 

9. 크리스타-마리아의 죽음: 슈타지 직원들은 드라이만의 집을 샅샅이 수색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물적 증거에 해당하는 타자기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직속상관인 그루비츠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국가에 대한 비슬러의 충성심을 의심합니다. 그래서 그는 크리스타-마리아의 심문 현장에 비슬러가 참석하라고 명령합니다. 심문이 시작되자 크리스타-마리아는 모든 것을 백일하에 밝힙니다. 타자기는 방문턱의 아랫부분에 숨겨져 있다고 진술한 것이었습니다. 

 

비슬러는 이 사실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물적 증거가 드러나면, 드라이만은 국가 모독죄라는 엄청난 죄로 감옥으로 가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비슬러는 슈타지 직원보다 앞서서 드라이만의 집으로 잠입하여, 타자기를 다른 곳으로 빼돌립니다. 크리스타-마리아는 자신의 진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사랑하는 임을 배신했다고 자책합니다. 순간적으로 밖으로 뛰쳐나간 그미는 우연히 지나치던 화물차에 부딪쳐 목숨을 잃고 맙니다. 그루비츠는 모든 게 비슬러의 술수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그는 비슬러를 좌천시켜서 편지 감시의 임무를 맡깁니다.

 

10. 비슬러 그리고 드라이만, 책으로 소통하다: 시간이 흘러 독일은 통일을 맞이합니다. 극장에서는 드라이만의 이전 작품이 공연되고 있습니다. 우연히 드라이만과 헴프는 서로 만납니다. 드라이만은 전직 문화부장관에게 왜 자신을 감시하지 않았는가? 하고 묻습니다. 이때 헴프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당신에 관한 슈타지 서류를 뒤져보라고 대꾸합니다. 그래서 그는 슈타지 문서를 뒤지다가, “HGW XX/7”이라는 슈타지 요원이 자신에 관한 모든 사항을 당국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드라이만은 비슬러를 수소문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통독 이후에 우편 업무에 종사하며 평범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드라이만은 그와 대화를 나누는 대신에 2년 후에 소설 『선한 사람에 관한 소나타』를 발간합니다. 우연히 비슬러는 서점에서 책을 읽다가, 앞부분에 다음과 같은 헌사가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HGW XX/7에게 바치면서.” 비슬러는 책값을 내면서 판매원에게 “이 책은 나를 위한 것이랍니다.”하고 말합니다.

 

11. 슈타지의 횡포는 과연 그러했는가? 영화는 80년대에 행해진 슈타지의 감시 행위를 다루고 있습니다. 실제로 슈타지 관청은 체제 비판적인 작가들과 예술가들을 세밀하게 감시하고 통제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슈타지 직원이 영화에 나타난 대로 사보타지 할 수 있을까요? 동독 정부는 슈타지 직원들에 대해 엄격하게 관리하였습니다. 

 

실제로 게르트 트레벨야르 (Gert Trebeljahr) 그리고 베르너 테스켈 (Werner Teskel)은 슈타지 직무를 자의로 그만 두어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경직된 스타지 조직을 떠나려는 자라든가 서독으로 도주하려는 슈타지 직원은 끔찍한 형벌을 당해야 했습니다. 예컨대 베르너 슈틸러 (Werner Stiller)라는 직원은 사회주의 통일당의 노선에 반대하다가, 당국에 체포될까 두려워서, 국경을 넘기도 하였습니다.

 

12. 영화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영화 『타인의 삶』은 구동독의 슈타지 문제를 배경으로 하는 첫 번째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화는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보다 인간성 및 인간관계가 우선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는 측면에서 많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작품은 완벽하지 않으며, 이 작품 역시 주제 상으로 그리고 구성상으로 여러 가지 하자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로 슈타지의 감사체계의 횡포가 문제였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그러나 슈타지의 제반 임무가 마치 문화부장관의 사적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영화의 설정은 아무리 허구라고 해서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둘째로 동독인들의 삶이 감시체제 하에 있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스탈린주의의 참혹함과 결부된다는 것은 너무 심한 발상입니다. 구동독 사람들은 영화에 묘사된 것보다는 오히려 편안하게 인간적 정을 나누면서 살았습니다. 요약하건대 영화가 동독의 부정적 현실을 강조한 때문에 구동독 출신의 사람들은 이로써 어느 정도의 불편함 내지 심리적 상처를 느꼈습니다. 셋째로 영화는 여성의 측면에서 서술되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초점은 비슬러와 드라이만 사이의 관계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크리스타-마리아의 주관적 내면이 소홀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한 가지 취약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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