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13. 라이프니츠의 잘 알려지지 않은 문헌: 끝으로 라이프니츠의 잘 알려지지 않은 문헌「보편 과학에 대한 서문. 우토피카 섬에 관하여Ad scientiam generalem Preafatio. De Insula Utopica」을 약술하려고 합니다. 1688년과 그 이듬해에 라이프니츠는 짤막한 문헌을 통하여 동시대인들이 잠재적으로 품었던 계몽주의의 갈망을 글속에 반영하였습니다. 그가 서술하는 내용은 모어의 『유토피아』와 유사합니다. 대서양에는 섬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서 선택받은 인간들이 가장 우아하고 가장 찬란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상의 천국과 같은 황금빛 찬란한 삶과 근친합니다.
놀라운 것은 우토피카 섬이 대부분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혹시 누군가 그 섬을 일순간 주시할 수 있는데, 우토피카는 안개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 섬은 한 번 바라본 사람에게 두 번 다시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합니다. 온화한 기후로 인하여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건강을 유지하고, 놀라운 정신적 에너지를 지닙니다. 많은 영양분이 가득 찬 음식 그리고 향신료 등은 일반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약재보다도 훨씬 뛰어난 성분을 지니고 있습니다. 음식은 사지의 힘을 키우게 해주며, 신체의 감각기관이 최상으로 작동되도록 영양을 공급합니다.
14. 우토피카의 자연스러운 법 그리고 죽음: 라이프니츠는 플라톤 이래로 언제나 반복되는 유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거주민 사이에는 동지애가 넘치므로, 서로 사랑하고 애틋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은 질투와 시기 그리고 혐오의 감정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거주민들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인위적인 법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자연스러운 법이 그들의 삶의 기준이 됩니다. 거주민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어떠한 자신의 고유한 권한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거주민 모두가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토피카 사람들은 죽는다는 것을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생전에 육체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최상의 행복을 누렸다고 여기기 때문에 노년에 이르러 삶에 대한 미련을 지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혼이 육체를 벗어날 때 이를 편안하게 받아들입니다. (Leibniz: 1328).
15. 중요한 것은 학문과 우정을 도모하는 일이다.: 섬은 라이프니츠에게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망상 속의 환영이 아닙니다. 누군가 한 사람은 우토피카 섬의 해안에 정박할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빛이 환하게 비치는 운명적 순간에 그는 해안을 지나서 자욱하게 안개 낀 절벽의 길을 따라 걸어갔는데, 마침내 축복의 고향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서술하면서도 다음의 사항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즉 섬은 지리학적으로 발견된 장소가 아니라, 오로지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발견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축복의 섬은 고대에서 지금까지 사람들이 끝없이 갈구하는 이상적 고향과 같은데, 하필이면 라이프니츠에 의해서 찬란한 빛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집필 시에 라이프니츠는 두 개의 갈림길 앞에 서성거리는 인류를 고찰한 게 틀림없습니다. 사실 라이프니츠는 학문과 우정을 도모하라는 요구 사항을 은밀히 전하기 위해서 우토피카 섬을 다룬 게 분명합니다. “학문은 우리를 세계의 근원으로부터 개방시키고, 자연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부여할 것이며, 특히 해로운 것들로부터 우리를 지키게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우리는 우정을 가꿈으로써 서로의 결함을 보완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힘을 서로 나누며, 나아가 우리의 외부 세계에 더욱더 훌륭하게 순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Leibniz: 1331).
16. 오만, 죄악 그리고 이기심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비판: 요약하건대 라이프니츠는 자신의 유토피아의 문헌에서 학문 추구 그리고 이웃과의 정을 나누기를 권장하였습니다. 만약 이러한 제안이 사회적으로 거절당하면, 그 사회는 잘못 발전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잘못 판단하고, 나약하게 변하며, 무절제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로 인하여 인간은 세계의 창조주에 의해 주어진 고유한 에너지마저 지니지 못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오만은 다른 사람이 힘들게 살아갈 때 스스로 쾌재를 부르게 자극합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죄악은 제도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행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혹자는 주어진 법 때문에 타인의 재산이나 신체를 취할 수 없습니다. 이때 그는 다른 비열하고도 은폐된 방식으로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이기심은 양심을 저버리게 자극합니다. 사람들이 불과 소수만이 지닌 과도한 재물을 열성적으로 탐하며, 모든 사람에게 이득이 되는 길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길을 외면하곤 합니다. 다른 사람이 가난으로 힘들게 살아가는데, 우리 자신이 재물을 자랑하는 것은 뻔뻔스러운 일이라고 합니다. (Leibniz: 1330).
17. 학문에 대한 지원 그리고 보편 과학: 국가는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학자들로 하여금 학문을 진작시키도록 많은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더 나은 삶 그리고 행복을 위해서는 자연과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적 결실이 중요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라이프니츠는 여기서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의 학문 공동체, 즉 솔로몬의 집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라이프니츠는 가장 중요한 지식의 체계적 목록화의 작업을 매우 중요한 관건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보편적 과학Scientia generalis이 완성되어,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 논리적으로 체계화되리라는 것입니다.
라이프니츠는 많은 대중들 또한 학문을 접하게 해야 하고, 학문적 교류가 활발하게 진척되도록 애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학문적 분화 작업도 병행해나가야 한다고 합니다. 익히 알려진 사실을 수집하는 사람과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사람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밖에 국가는 도서관을 확충하고, 강연을 활성화시키며, 정원, 동물 사육,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관찰 및 실험실을 지원해야 합니다.
18. 교육 개혁을 위한 제언: 그런데 「우토피카 섬에 관하여」가 사회정치적으로 필요한 당면한 몇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하기 위해서 집필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보다도 중요한 것은 동시대의 학문의 풍토가 전폭적으로 개혁될 수 있도록 제후들을 자극하는 일이었습니다. 제후들은 근시안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으므로, 당면한 미래조차 투시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라이프니츠는 더 나은 사회가 학문의 진작 그리고 교육 개혁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만약 모든 게 그런 식으로 제대로 추진된다면, 지금까지 별 생각 없이 학문에 몰두한 사람들이 100년에 걸쳐 완수할 수 있었던 연구 결과를 단 10년 안에 완수해낼 수 있게 될 것이며, 이로써 인류는 현세의 행복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Leibniz: 1333).
요약하건대 라이프니츠의 문헌은 예컨대 토마스 뮌처의 “제후들을 위한 설교Fürstenpredigt”와 유사한 의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우정을 인성적으로 강조하고, 학문 추구를 통한 진리 함양으로써 인류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는 계몽주의의 의향과 관련이 됩니다. 우토피카 섬은 이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비유나 다름이 없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은 라이프니츠의 문헌에서 강력한 현실 비판의 발언이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토피카」 속에는 문학 유토피아가 유형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현실 비판이라는 특징이 분명히 부각되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라이프니츠는 미래의 낙관주의에 함몰한 나머지, 유럽에서 횡행하고 있는 폭정과 강제 노동 그리고 계급 차이로 인한 갈등 등에 대한 비판을 등한시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볼테르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Candide, ou l'optimisms』(1759)는 라이프니츠의 이른바 순진무구한 발상을 은근히 풍자한 바 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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