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a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박설호: (4) 윈스탠리의 '자유의 법'

필자 (匹子) 2026. 7. 6. 16:26

(계속 이어집니다.)

 

25. 국회의 역할: 이상 국가에서 입법, 행정 사법을 관장하는 체제는 국회입니다. 국회는 정의를 구현하는 최상의 기관으로서 억압당하며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일반 사람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국회의원은 매년 새롭게 선출되는데, 주로 네 가지 일을 행합니다. 첫째로 국회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생업을 행하도록 그들의 노동행위를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합니다. 둘째로 국회는 왕권에 의한 이전의 법체계를 허물고, 새로운 법을 만듭니다. 새로운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라야 합니다. 예컨대 이곳의 소작농들은 새로운 법을 통해서 농사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국회에서 마련된 법은 인민의 동의를 얻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국회가 인민의 권익에 위배되는 정책을 추진한다면, 인민들은 투표를 통해서 이를 차단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가 출현하기 이전의 사회에서 나타난 규정이므로, 무척 참신합니다. 넷째로 외부로부터 전쟁의 위협이 발생하거나, 국내에 폭동이 발생할 경우 국회는 군대 조직을 결성할 권한을 가집니다. 상기한 사항들은 17세기 절대 왕정의 시대를 종결시키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게 되는 출발점으로서의 규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윈스탠리의 사고가 오늘날 의원내각제의 특성을 선취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놀랍습니다.

 

26. 교육 제도와 법: 윈스탠리는 모어, 캄파넬라, 안드레애보다 더 교육의 문제를 더욱더 중요하게 다루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종교 교육에 대해서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신앙과 믿음의 중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활용되는 자연과학과 기술 교육이라는 게 윈스탠리의 지론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윈스탠리가 교육에 있어서 프랜시스 베이컨의 귀납법적 실험 방법을 중시한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교육은 실천적이고 적용 가능한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교육자는 책을 막연하게 인용하는 대신에 어른이 되어 자신의 지식을 전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밖에 윈스탠리는 변호사의 직업을 처음부터 금지시켰습니다. 왜냐하면 바람직한 국가 공동체에서는 짤막한 법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굳이 변호사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자고로 올바른 법은 더 이상의 유건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 자체 명백하고 이해하기 쉬운 무엇이라야 합니다.

 

27. 사형제도는 존속되고 있다: 토머스 모어가 몇 가지 예외 사항을 전제로 하여 사형 제도를 폐지했다면, 윈스탠리는 사형 제도를 용인하였습니다. 물론 공동체는 가급적이면 죄인을 사형시키는 것을 무척 조심스럽게 결정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독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죄인으로 하여금 갱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피조물로서 다른 피조물을 함부로 처단할 권한은 지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의 목숨을 끊어낼 수 있는 자는 오로지 신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무라비 법전에 기술된 사항은 윈스탠리 공동체에서는 엄연히 유효합니다. 살인자는 반드시 처형되어야, 공동체의 기강이 바로 잡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윈스탠리의 공동체는 엄격함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채택되는 것은 함무라비 법전에 언급되고 있는, “눈에는 눈, 이빨에는 이빨”이라는 “보복의 법 ius talionis”입니다. 특히 성폭력을 저지른 자는 대부분의 경우 사형에 처해집니다. (블로흐: 435).

 

28. 성폭력과 혼외정사의 문제: 성폭력은 힘없는 여자들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엄격하게 처벌받습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겁탈할 경우 여성은 소리를 지르면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합니다. 이때 가해 사실이 밝혀진 남자는 심의의 과정을 거쳐서 교수형의 판결을 받게 됩니다. 이 경우 피해 여성은 처벌받지 않습니다. 누군가 어느 유부녀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면서 그미의 몸을 열망하다가, 미수로 그칠 수 있습니다. 이때 평화수호자가 중재를 맡으면서 그의 태도를 훈계할 수 있습니다. 이때 가해 남자는 평화수호자의 경고를 충실하게 따라야 합니다.

 

만약 그가 이를 어기고 다시금 그 유부녀, 혹은 다른 여인을 탐할 경우 12개월 동안 감독관의 감시를 받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놀랍게도 혼외정사가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특정 남녀가 서로 합의 하에 성교하는 경우 이는 범죄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만약 처녀 총각의 간음이 발각되면, 이들은 이웃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반드시 혼인을 서약해야 합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윈스탠리는 민법상의 규칙을 전통적 판례와 명문화되지 않은 전통적 관습을 조합하여, 가족과 성에 관한 법적 규칙을 마련한 것 같습니다.

 

29. 윈스탠리의 유토피아: 요악하건대 윈스탠리는 당시 영국의 비참한 경제적 상황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은 이러한 경제적 핵심 문제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윈스탠리의 유토피아가 사회의 제 방면에 있어서 체계상의 하자를 드러내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그의 사회 설계는 고전적 유토피아에 담겨 있는 그것과는 현격한 차이점을 보여줍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윈스탠리는 실제로 노동자 내지 소작인들을 위한 어떤 실천적 정책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소작농의 가난을 떨치게 해주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윈스탠리는 지식인 엘리트의 능력에 기대하기 보다는 (Brinton: 67), 법 그리고 시민으로 구성된 군대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국 사회에는 내외적으로 수많은 적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윈스탠리가 주어진 비참한 현실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서 과도한 범위로 폭력을 동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구성적인 사회 설계는 무엇보다도 실천과 실현의 의향을 강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그 밖의 다른 사항은 부차적으로 다루어졌으며, 실제 현실의 실질적 변화와의 관계 속에서 추진되었습니다.

 

30. 제임스 해링턴의 『오세아나 공화국』과의 비교: 마지막으로 윈스탠리의 유토피아와 관련하여 제임스 해링턴의 『오세아나 공화국The Commonwealth of Oceana』(1656)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자유의 법』이 발표된 지 4년 후에 공개되었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해링턴은 17세기 초 영국의 무질서한 현실을 극복하고 어떤 바람직한 정치적 질서를 위해서 사회 경제적 원리에 관한 작품을 집필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오세아나 공화국』은 더 나은 영국을 위한 사회 정치적 논문이므로, 문학 유토피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해링턴의 문헌은 지금까지 유토피아의 역사의 테마에서 지엽적으로 다루어졌습니다. 모든 국가의 형태는 해링턴에 의하면 재산, 특히 토지의 분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국가 토지의 4분의 3을 소유한 계급이 국가의 통치권을 쥐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고로 재산이란 법과 제도에 입각한 것이며, 국가는 왕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로써 해링턴은 정치 원리가 되는 여러 가지 사항을 세밀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가령 성문헌법, 선거제도, 비밀 투표, 권력의 분립, 종교적 관용 그리고 국민 교육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이 빼곡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31. 『오세아나 공화국』의 결함: 물론 『오세아나 공화국』이 미국과 유럽의 정치와 법의 영역에서 먼 훗날에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해링턴은 당시 영국 현실의 정황에 맞추어서 귀납법적인 방식으로 모든 것을 서술하였습니다. 1700년에 해링턴의 문헌을 출판한 존 톨랜드John Toland의 주장에 따르면, 문헌이 크롬웰의 검열을 거쳤기 때문에 비판의 가시가 꺾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작품은 바람직한 미래 사회를 위한 유토피아적 대안으로는 적절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문학 유토피아에 속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오세아나 공화국』에는 한 가지 치명적 결함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해링턴이 여유 넘치고, 교양을 갖춘 귀족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Kirchheim: 131). 모든 정치는 귀족에 의해 영위되어야 하며, 인민의 정치 참여 내지 의사표현은 부차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토머스 모어에서 윈스탠리로 이어지는 만인의 자유와 평등의 이념과는 완전히 어긋나는 사항으로서, 귀족의 관료주의를 미화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윈스탠리의 공산주의적 사회설계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32. 윈스탠리의 사상적 영향: 윈스탠리의 사상은 18세기 말에 이르러 토머스 스펜스의 “지대 공유론 地代 共有論”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윈스탠리가 대지주에게 억압당하는 소작농의 권익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스펜스는 전체적 관점에서의 토지의 사회화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1775년 뉴캐슬에서 “토지의 공동 소유”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는데, 이로 인하여 철학 학회에서 제명당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토지 공유의 사고가 18세기 후반의 영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했음을 반증합니다. 스펜스는 유토피아의 사상이 아니라, 개인주의의 자연법의 사고에서 자신의 사상적 출발점을 찾았습니다. 모든 개인은 자연 상태를 전제로 하면 자신의 소유물과 토지를 소유할 권리를 지녀야 마땅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 현실에서 땅은 일부 부유층의 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잘못이며, 만인이 주어진 구역에서 동등하게 나누어진 토지를 소유해야 마땅하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 스펜스는 부동산 매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조처를 내세웁니다. 그렇게 되면 땅에 대한 개개인의 소유권은 사라지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Spence: 52). 스펜스는 자본을 극대화시키는 산업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사회주의의 사고를 견지했으나, 르네상스의 유토피아주의자들처럼 사치의 금지 내지는 병역의 의무 등과 같은 작은 대안만을 강조했을 뿐입니다. 어쨌든 스펜스의 사상은 나중에 오언과 푸리에의 연방주의의 유토피아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스펜스는 다음과 같이 갈구하였습니다. 즉 작은 공동체, 연방주의의 코뮌 운동은 아래로부터 위로 향해 이어지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국가 전체의 사안을 다룰 수 있는 국민의회의 탄생을 기약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참고 문헌

 

- 블로흐, 에른스트 (2011):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 열린책들.

- Berneri, Marie Luise (1982): Reise nach Utopia, Berlin.

- Brinton, Crane (1979): Utopia and Democracy, in: (Edited by Frank Manuel, Utopian Thought in the Western World, Cambridge (Mass.), 50 - 68.

- Harrington, James (1992): The Commonwealth of Oceana and A System of Politics, London.

- Kirchheim, Arthur von (1892): Schlaraffia politica. Geschichte der Dichtungen vom besten Staate, Leipzig.

- Saage, Richard (1998): Utopie und Revolution: Zu Gerrard Winstanleys Das Gesetz der Freiheit, in: Utopie kreativ, H. 94,, 71 – 82.

- Saage, Richard (2009): Utopische Profile, Bd. 1. Renaissance und Reformation, Münster.

- Schölderle, Thomas (2012): Geschichte der Utopie, Wien/Köln/Weimar.

- Spence, Thomas (2012): The Pioneers of land reform: Thomas Spence, William Ogilvie, Thomas Paine, London.

- Winstanley, Gerrard (1988): Das Gesetz der Freiheit als ein Entwurf oder die Wiedereinsetzung wahrer Obrigkeit, in: ders., Gleichheit im Recht der Freiheit, Frankfurt a.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