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a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박설호: (2) 윈스탠리의 '자유의 법'

필자 (匹子) 2026. 7. 1. 08:25

(앞에서 계속됩니다.)

 

9. 영국의 끔찍한 빈부 차이: 모어의 『유토피아』와 윈스탠리의 『자유의 법』이 간행된 시기는 150년이라는 시간적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경제적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윈스탠리 역시 영국의 끔찍한 빈부차이를 지적합니다. 부유한 대지주들은 그들의 농장에서 양과 가축들을 배불리 먹이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가축들의 먹이를 구할 수 없어서, 소 한 마리조차 제대로 키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지와 부랑자들은 굶주림 때문에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는데, 추노꾼들은 그들을 처음 체포하게 되면, 그들의 팔에다 문신을 새깁니다. 두 번째 체포될 경우 거지와 방랑자들은 교회나 성당의 축복 없이 즉시에 처형당합니다. 이러한 조처에도 불구하고 거지와 방랑자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유럽 경찰의 전신은 바로 이러한 추노꾼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돈이 없어서 숙식을 마련할 길이 없는 거지와 부랑자를 체포하던 사람들이 오늘날 경찰 신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블로흐: 418). 농민 폭동은 끊임없이 발생하였는데, 폭동은 그때마다 국가의 정규군에 의해서 무차별적으로 진압되곤 하였습니다.

 

10. 윈스탠리가 설계한 유토피아의 세 가지 특성 (1): 윈스탠리의 유토피아는 세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저자가 문학적 가상이라는 수단을 과감히 포기했다는 점입니다. 윈스탠리는 모든 사항을 있는 그대로 직설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유의 법』은 어떤 상상이라는 가상적 공간을 설정하는 문학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멉니다. 두 번째는 저자가 자신의 사회 설계를 주어진 사회에 직접적으로 적용시키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윈스탠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영국의 농부들에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작은 땅을 차지할 권한을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자신의 사고가 어떤 종말론적인 기대감에 기본적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문학 유토피아는 하나의 가상적 현실을 토대로 설계되었는데, 윈스탠리는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11. 윈스탠리가 설계한 유토피아의 세 가지 특성 (2): 저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17세기의 영국이라는 “지금 그리고 여기”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윈스탠리의 작품은 유희적이고 긍정적 삶에 관한 문학적 실험과는 거리가 멉니다, 저자는 즐겁고 유희적인 표현으로 모든 것을 교육학적으로 서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윈스탠리에 의하면 말이 아니라, 행동이며,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윈스탠리가 주어진 현실을 무작정 무력으로 전복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평화로운 방법으로 사회가 변화되기를 갈구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왕이나 인민의 무력 내지 권력이 아니라, 올바른 규칙 그리고 올바른 법질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저서 『자유의 법』 역시 이러한 요구의 결과로 이해됩니다.

 

12. 종말론적 구원과 유토피아의 설계: 윈스탠리가 고찰하는 바람직한 현실상 속에는 어떤 종말론적인 구원의 전략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1649년에 그는 「정의의 새로운 법」이라는 문헌에서 정의로움이 자리하고 있는 새로운 천국에 관해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주께서는 신속하게 행동할 것이다. 바빌로니아는 한 시간 내에 몰락하고, 이스라엘은 한 시간 내에 형성될 것이다. (...) 전지전능한 분의 힘만이 지상의 모든 저주를 사라지게 할 것이다.” (Saage 2009: 169). 물론 3년이 지난 후에 윈스탠리는 이러한 전통적 종말론의 자세로부터 거리감을 취합니다.

 

『자유의 법』에서 윈스탠리는 사회적 질서를 엄밀하게 설계하고 있는데, 이러한 질서는 오로지 인간의 변화 의지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여기서는 신앙의 믿음 내지 신의 의지가 아니라, 이성의 인식 내지는 인간의 개혁 의지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로써 윈스탠리는 놀랍게도 종교적 신비주의에서 합리적인 무신론으로 입장을 바꾸었으며, 농업 개혁의 운동으로부터 완전한 공동체주의로 자신의 입장을 전환하게 됩니다. 작품, 『자유의 법』은 세계가 어떤 구체적인 시스템에 의해서 재 축조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윈스탠리는 주어진 현실에 대한 하나의 가상적인 모델에서 삶의 여러 영역들을 고찰합니다. 종교, 가정, 교육, 학문, 정치 그리고 경제 등이 바로 그 영역들입니다.

 

13. 윈스탠리의 기독교 사상: 윈스탠리는 종교적 믿음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사회 이론은 사려 깊은 기독교 사상에 근거한 것입니다. 윈스탠리는 사회가 제대로 변모하려면, 개개인의 의식이 사전에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자신의 빛을 인간의 영혼 속으로 들어오게 하여, 탐욕과 자만 그리고 억압을 종식시킨다면, 새로운 사회는 그때 비로소 출현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윈스탠리는 “지상에서 굴욕당하는 사람들에게 승리의 환호를 안겨주고, 부자들에게 눈물과 비명을 명하리라.“는 예언자의 말씀을 자주 인용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윈스탠리가 무조건적으로 성서의 내용을 모방한 것은 아닙니다. 성서의 강력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윈스탠리는 정통 교회의 가르침을 부분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그는 ”신의 말씀 대신에 이성의 말씀을 이용하라“라는 글을 집필하려고 했으나, 이를 실행하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선취한 것은 사회주의의 붉은 영웅인 그리스도 상이었습니다. 윈스탠리는 기적, 천당과 지옥 등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죽은 영혼은 다른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영혼 불멸설을 의심했습니다. 인간은 원죄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라, 선하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태어난다고 그는 확신하였습니다. 그는 ”인간 내면의 빛의 정신은 자유를 사랑하고, 예속을 증오“한다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Saage 1998: 79).

 

14. 자본주의의 화폐 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 17세기 중엽 영국의 수많은 소작인들은 내전에 참가하여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경작지, 거주지 그리고 생필품이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정책은 윈스탠리에 의하면 소작농, 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으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윈스탠리는 다음의 사실을 통찰하고 있었습니다. 즉 찰스 1세는 처형되었지만, 군주제는 온존하며, 자본주의의 화폐 경제는 변화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왕이 처형되었지만, 사회 정치적 억압 기제는 남아 있습니다.

 

윈스탠리는 가난한 농부와 시골 노동자를 가난에서 구해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의 화폐 경제라는 점을 분명하게 파악하였습니다. 따라서 군주제로 인한 문제점 그리고 자본주의의 화폐 경제의 난관이 해결되지 않으면, 소작농과 임금노동자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폭정과 수탈에 의해서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윈스탠리는 자본주의 화폐 경제를 전복시키고, 시장의 유통구조를 철폐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견해를 명확하게 피력합니다.

 

15. 단위 조합 운동: 가장 커다란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것은 물품의 매매를 통한 상인들의 이윤 추구입니다. 적어도 상인들이 이윤추구에 혈안이 되어 있는 한, 주어진 사회는 변화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윈스탠리는 화폐의 기능 약화, 시장의 철폐를 강하게 요구합니다. 화폐의 기능은 재화의 축적이 아니라, 물품 교환의 수단으로 축소화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사회의 경제 구조는 단위 조합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매매를 위한 시장은 철폐되고, 모든 가족구성원들은 자신이 필요한 만큼의 물건을 공적인 물품 보관소 내지 저장소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공동체 내에서는 감독관이 존재하므로 공동체 사람들은 감독관을 통해서 자신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기존 사회에서 나타나는 구걸 행위라든가, 놀고먹는 생활 습관은 사라지게 되리라고 합니다. (Winstanley: 268). 윈스탠리는 학문과 수공업의 기술을 신속하게 활용함으로써 각 단위조합들이 가급적이면 많은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사치스러운 삶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사람들이 충분한 음식, 편안한 거주 공간 그리고 마음에 드는 옷 등을 얻게 되면, 더 이상 어떠한 다른 무엇도 소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공동체가 물품의 품귀현상을 겪지 않고 순조롭게 영위될 수 있다고 합니다.

 

16. 경제적 문제와 관련하여 나타나는 르네상스 유토피아와의 유사성: 윈스탠리가 모어의 『유토피아』를 독파했는지는 밝혀진 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르네상스의 유토피아가 주어진 현실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기 위하여 가상적인 찬란한 현실을 도입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경제적 문제와 관련하여 윈스탠리는 모어, 캄파넬라 그리고 안드레에의 유토피아와 유사한 사항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첫째로 금과 은과 같은 보석은 철저하게 거부되고 있습니다. 사치스러운 물품의 생산과 소비는 비합리적이라고 규정됩니다. 따라서 소비는 의식주와 관련된 물품에 한해서 용납되고 있을 뿐입니다.

 

둘째로 윈스탠리는 노동의 잠재적 욕구를 끌어올리는 데에 골몰했습니다. 국가의 감독관은 거지 그리고 놀고먹는 사람들을 독려하여 그들로 하여금 노동하게 하도록 조처해야 합니다. 만약 노동의 의무를 행하지 않는 사람은 윈스탠리에 의하면 12개월 동안 채찍을 맞으면서 강제노동에 임해야 합니다. 셋째로 사회는 경제적 생산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과학 기술의 실험 도구의 개발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윈스탠리는 군주제도가 몰락하게 되면, 학문과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되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