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계몽주의 유토피아: 정신 사조로서의 계몽주의는 유토피아에 가장 근접한 사고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계몽주의가 찬란한 미래를 갈망하는 낙관주의의 자세를 취하는데, 이는 유토피아의 보편적 의향과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Heyer 56). 놀라운 것은 계몽주의의 사고가 절대 왕정의 폭력과 병행하여 싹이 텄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계몽사상은 정치적 경제적 개혁의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이 발발할 때까지 시민들은 절대 군주에게 모든 힘을 강탈당해 있었습니다. 지식인들 역시 자신의 지조와 이론을 사적인 영역 내지 문학 철학과 같은 형이상학적 영역에서 연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절대주의의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대신에, 겉으로는 미덕과 이성을 추구한다고 공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식인들은 절대주의의 정치체제 내지 비합리적인 사회적 토대를 직접적으로 강하게 비판할 수 없었으므로, 그 대신에 계몽주의 운동에서 일차적으로 나타난 것은 종교적 관용이라는 도덕적 자세였습니다.
2. 체제 파괴적인 사상: 칸트는 계몽이 “자기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미성년의 상태로부터의 출구”라고 정의를 내린 바 있습니다. 미성년의 상태의 인간은 주인, 혹은 신의 뜻에 굴복하며 살아갑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왕의 명령에 따라, 혹은 전지전능한 신의 계명에 따라 허리를 굽히는 자가 바로 미성년 상태의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스스로 (현명하게) 생각하라Sapere aude.”는 슬로건을 따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Kant: 482).
계몽주의자들은 내심 왕권과 신권이라는 상부의 이데올로기를 타파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절대 왕정의 시대에 왕권을 비판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볼프Wolff, 라이프니츠, 레싱, 디드로 등은 최소한 종교적 관용을 학문적 예술적 관건으로 이해했으며, 토마지우스Thomasius는 자유주의의 관용을 부르짖었을 뿐입니다. 볼테르와 같은 냉정하고도 직선적인 계몽주의자도 신의 권한을 강렬하게 비난했을 뿐, 절대왕정의 폭력에 직접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의향은 신권에 대한 비판 속에 은밀히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계몽주의가 독일과 프랑스가 아니라, 러시아, 폴란드 그리고 발트 해 지역에서 특히 비밀결사단체인 프리메이슨 운동과 함께 구체적 정치성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Krauss: 16).
3. 이신론, 범신론 그리고 기계적 유물론이 지니는 혁명적 특성: 우리는 가장 급진적 계몽주의 철학자로서 스피노자Spinoza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왕권을 뒷받침해주는 결정적 토대가 신의 권능이라고 믿었습니다. 어쩌면 신의 권능이 자연의 힘과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야 말로 스피노자에게 가장 중요한 관건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절대주의의 허구적 이데올로기를 타파할 수 있는 첩경이라고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계몽주의자들 가운데는 유대인들이 많은데, 이들은 주로 스피노자 사상을 신봉하였으며, 프리메이슨 단체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장세룡 A: 523).
계몽주의가 종교적 관용을 전면으로 내세울 때, 그에 대한 논거로 작용한 것은 바로 이신론 내지 범신론이었습니다. “신의 존재가 인간사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이신론은 간접적으로 왕의 이른바 천부적인 권리를 약화시킬 수 있는 논거로 활용되었습니다. “신 혹은 자연Deus sive natura”이 바로 스피노자의 범신론의 핵심 사항이었습니다. 이신론의 근본 자세는 결국 권력을 비호하는 사제들의 힘을 약화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신론과 범신론의 혁명적 특성을 명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밖에 우리는 기계주의 유물론이 계몽주의 시기와 병행하여 출현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라메트리La Mettrie, 돌바크d'Holbach 등의 유물론의 사고는 싫든 좋든 간에 종교의 이데올로기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4. 사회 계약의 이론: 왕이 지니고 있는 권력이 신의 뜻이 아니라면, 그것은 과연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만약 권력이 하나의 독자적인 자연법칙과 동일하다면, 그것은 어쩌면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오랫동안 이른바 사제들에 의해 하늘의 뜻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권력은 어쩌면 운명론적 철칙에 의해서 확정된 것처럼 간주되어왔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 계약에 관한 이론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관점에서 추구해나가는 기본적 사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회 계약의 이론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입니다. 과연 인간이 그룹을 지어 함께 생활하던 최초의 자연 상태는 어떠했는가?
개별적 인간들은 어떠한 이유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을까? 험난한 자연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개개인들이 협동해야 했는데, 이는 인간의 본성 속에 도사린 협동심의 발로인가? 아니면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인 속성으로 가득 차 있는가? 등의 물음을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질문은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되기 어려운 추상적 난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에 관한 사실적 고증을 경험적으로 찾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확실한 것은 인간 사회의 공동체가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거나, 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개별적 인간이 합리적인 생각을 지닌 채 이성적으로 만들어진 인위적 질서 체계라는 사실입니다.
5. 기하학적 구도와 평등 사회: 모어, 캄파넬라, 안드레애 등의 유토피아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 출현하였으며, 모두 정확한 기하학에 입각한 국가 구도에 의해서 축조된 것이었습니다. 기하학적 구도의 건축물은 기능주의를 고려한 만인 평등의 사회 구도를 전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수직적 계층구도에 입각한 중세 도시의 범례와는 기능적으로 그리고 미학적으로 이질적 특성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근대에 출현한 국가의 기하학적인 모델입니다.
근대 국가의 기하학적 구도는 데카르트의 『기하학Le Géométrie』(1637)에 의해서 더욱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면모를 드러냅니다. 왜냐하면 데카르트는 모든 유토피아의 건축물에 있어서 수학의 토대를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르네상스 시대의 정태적 기하학은 데카르트의 수학적 사고가 가미되어,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기하학적 틀로 정착됩니다. 그밖에 토머스 홉스는 구체적인 기하학적 구도에 의해서 자신의 사회 계약 이론을 설계하지는 않았지만,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즉 국가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임의적이고 인위적인 모델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윤리라든가 정치 역시 기하학적 모델에 의해서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축조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6. 계약으로서의 국가: 사람들은 국가도 계약에 의해서 성립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약으로서의 국가는 신에 의해 예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서 임의적으로 축조된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자유롭고 평등한 개별 인간들이 공동으로 합의한다는 전제 하에서 지배 구도는 얼마든지 합법적일 수 있다는 게 홉스의 확신이었습니다. 이러한 사고는 자연법의 정신에 의거한 사회 계약 이론의 저변에 깔린 것입니다. 국가가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계약에 의해서 성립될 수 있다는 말은 어쩌면 세습되는 왕권을 무조건 용인할 수 없다는 함의를 포괄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점이야 말로 사회 계약의 이론이 어째서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근본적 이유이기도 합니다. 칸트의 표현을 빌면 국가의 법적 이상은 하나의 계약에 의해서 규정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사회 계약으로써 국가의 이상을 정립하고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사회 유토피아와 사회 계약 이론 사이의 공동성을 재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26a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박설호: (4) 윈스탠리의 '자유의 법' (0) | 2026.07.06 |
|---|---|
| 박설호: (3) 윈스탠리의 '자유의 법' (0) | 2026.07.04 |
| 박설호: (2) 윈스탠리의 '자유의 법' (0) | 2026.07.01 |
| 박설호: (1) 윈스탠리의 '자유의 법' (0) | 2026.06.28 |
| 박설호: (4) 안드레에의 '기독교 도시 국가' (0) | 2026.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