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 殉葬
전홍준
천수를 누리다 왕이 죽었다
사후세계에서 시중 들고
지킬 젊은이로
순결하고 단아한 처녀와
씩씩하고 수려한 청년이
선발되었다
무덤이 완성될 때까지
선발된 자원들은
안가에 모셔져 있었다
감언이설인 줄 알면서
선택이 영광이라는 위세 앞에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피를 쏟고 짧은 생을
접을 때까지 기다리는
살 떨리는 시간들
지배자의 무덤을 장식할
도구로서의
저 목숨!
*시작노트
아라가야 지배자들의 무덤인 함안 말이산 고분과,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무덤의 내부를 들여다 보니,
외곽에는 돌로 쌓았고, 안쪽에는 나무관을 배치했다.
이런 무덤 형태를 '돌덧널무덤'이라고 한다.
관 중앙에는 주인공이 눕고, 발치에 토기를 든 여종 두명이
웅크리고, 관 밖에는 세명의 병사가 지키는 구조로 되어있다.
자연사한 지배자와 순장된 하인들!
'殉'은 옥편에 의하면 '따라죽을 순'이라 나와있다.
순장자들은 어떻게 죽였을까.
왕의 처소에서 시봉할 정결한 제물을, 목을 베거나 사약으로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신을 훼손하면 안 되기 때문에.
아마 제물에 쓸 짐승을 잡을 때, 목이나 옆구리에 구멍을 내어
피와 물을 다 쏟고 난 후에 죽이듯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십자가형 같은 고행을 거쳐, 생이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야만의 무덤 단면도를 들여다 보다,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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