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이정주의 시, '상', 해설

필자 (匹子) 2026. 2. 22. 11:03

상像

 

이정주

 

당신이 꽃을 버릴 때는 몰랐습니다

새를 날려 보낼 때도 몰랐습니다

당신의 집은 사막으로 달아났고

당신의 나무들은 숲으로 돌아갔습니다

언덕 너머 피아노 소리 들리고

합창 소리 파도칠 때에도 몰랐습니다

 

정오의 태양 아래

당신은 금 간 얼굴로 서 있었습니다

 

노래하던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개들이 당신을 향해 짖었습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던진 돌팔매가 당신에게 날아가고

당신은 쪼개졌습니다

 

당신 얼굴은 웃으면서 떨어졌습니다

몰랐습니다 당신 몸이 텅 비어 있던 거

금 간 손이 나를 부르고 있었던 거

 

아직도 잘 모릅니다

따가운 별빛 아래서 당신의 조각을 만지며

나도 조금씩 낡아가고 있습니다

 

..................

 

해설 

 

상은 우리의 얼굴 모습이다. 그것은 타자에 비친 “나”의 외형적 모습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을 사회적으로 내민다. 이는 생업 때문일 수 있고, 친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세 가지 의문이 싹튼다. 1. 우리의 상은 얼마나 정확히 우리의 본모습을 반영하는가? 2. 우리의 상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왜곡된 채 (부분적으로만) 투영되는가? 3. 우리는 한 인간의 상에 대한 편견 내지는 선입견을 지니고 있다. 한 인간의 존엄성은 어떤 방식으로 파괴되는가? 우리는 평생 살아가면서 이러한 문제와 직면한다.

 

작품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 나는 메데이아의 삶을 떠올렸다. 메데이아는 흑해 근처의 콜히스 왕국에서 살던 공주였는데, 사랑하는 남자 이아손을 따라 그리스로 향했다. 그미는 조국을 배신하고 나라의 보물이었던 황금 양피를 이아손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아손은 다른 여자를 탐함으로써 메데이아를 배신하고 말았다.

 

메데이아는 약초에 일가견이 있는 현명한 여인이었다. 코린트 사람들은 사악한 외국인 여자가 그리스의 명웅, 이아손을 망치게 한다고 착각한다. 그들은 메데이아에게 돌을 던진다. 심지어 쌍둥이 아들을 죽이려고 시도한다. 메데이아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자신에 대한 이아손의 사랑이 존재한다면,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아손은 권력을 위해서 조강지처를 저버리려고 한다. 자신으로부터 떠나가려는 임 앞에서 그미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정주의 시는 이방인으로 살아온 인간의 행적을 말하는 것 같다. "이것은 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De te fabula narratur." 솔직히 말해서 이 시는 필자의 과거 삶을 유추하게 해주었다. 젊은 날의 무지, 외국에서의 방랑, 타인으로부터의 외면과 비난 그리고 이로 인한 절망, 그럼에도 자존심 (상)을 지켜 왔던 세월 등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우리 모두 이방인이며, 난민일지 모른다. 태어난 다음 한평생 살다가 떠나는 존재가 아닌가? 이정주 시인은 “”을 "당신"으로 명명하는 것 같다. 여기서 상은 인간의 본래 모습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상은 내 존재의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형성된 “가상”이며, “나에 관한 선입견”이다.

 

사람들은 주위의 낯선 존재를 도외시한다. 우리는 낯섦을 경계한다. "낯선 존재에 대한 두려움 Xenophobie" 은 당동벌이를 낳는다. 잘 알지 못하면서, 몇 가지 부분적 사항만으로 상대방을 재단할 뿐이다. 추측 그리고 지레짐작의 반응은 순간적으로 비난의 반응으로 돌변한다.

 

사람들이 나에게 "돌팔매질"하는 것이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낯선 자는 배척의 대상이다. 이로써 이방인의 얼굴에는 “금”이 간다. 시인은 “따가운 별빛 아래서” 상의 “조각을 만지며” 깨닫는다. 나 자신이 늙어가듯이 “당신”의 상 역시 낡아가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