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음악 예술

블로흐: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

필자 (匹子) 2026. 5. 9. 11:41

이 글은 에른스트 블로흐의 "유토피아의 정신Geist der Utopie"에 수록되어 있다. 국내 초역이다. 출전: Ernst Bloch: Geist der Utopie. die Zweite Fassung, Frankfurt a. M. 1985, S. 87 -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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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음악가 요한 슈트라우스는 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음악에 몰두하였다. 이 점은 유대인 작곡가이자 “그랑 오페라”의 대가인 지아코모 마이어베어 Giacomo Meyerbeer와 비교될 수 있다. (역주: 지아코모 마이어베어 (1791 – 1864)는 유대인 출신의 독일 작곡가이다. 그랑 오페라의 대가로서 언제나 바그너와 마찰을 빚었다. 바그너는 1840년부터 1842년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서 마이어베어의 도움을 받았다. 바그너는 마이어베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를 유대인 예술가들이 지닌 모든 부정적인 특징들을 구현하는 인물로 간주했다. 이러한 특징들은 "히브리 예술적 취향"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런데 슈트라우스에 관해서 속속들이 파고든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는 삶을 즐기면서 열성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슈트라우스는 주위 사람들과 상당히 높은 정도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세인들은 그가 교활한 방식으로 유행의 성공을 위해서 작곡에 임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슈트라우스는 상류층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가장 끔찍한 키치를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음악적 유희를 멋지게 활용하면서, 사람들에게 세계적인 즐거움을 안겨주려고 했다. 놀랍게도 그의 음악에서는 독일의 고리타분한 소시민 근성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슈트라우스는 아무런 정치적 지조를 견지하지 않은 채 자신이 발견하는 소재를 음악으로 만들어내었다. 이따금 그는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음악에 몰두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기쁨과 신뢰를 안겨주었다. 예컨대 여기서는 부드럽고 신선한 노래가 연주되고, 저기서는 간격이 긴, 만곡의 음향이 울려 퍼졌다. 말하자면 한 지역에서는 마치 금속의 가루처럼 울려 퍼지는 미세한 음이 선을 보였다. 슈트라우스는 드뷔시 Debussy의 음악적 비브라토를 거부하고, 프란츠 리스트 Franz Liszt의 확정된 기본음을 준수하려고 했다. (역주: 프랑스의 인상주의 음악가, 클로드 드뷔시 (1862 – 1918)는 물결과 안개 그리고 호숫가의 윤슬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이때 중시된 것은 선율보다 오히려 소리 자체의 질감, 순간의 인상이었다. 그의 비브라토는 어느 순간에 잠시 활용되는 기법으로서 “감정을 과장하는 도구”가 아니라, “소리를 색칠하는 붓”의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다른 한 지역에서는 주선율의 어떤 정교함, 주선율이 차단될 때 나타나는 어떤 폭풍 그리고 리듬의 어떤 비약 등의 에너지와 광채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그의 은사, 리스트에게서 동일하게 발견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폭죽을 터뜨리는 그의 오케스트라가 언제나 천박하고, 선동적이며,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고, 음탕하며, 달콤하고, 개인적 행복 추구의 방식으로 울려 퍼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슈트라우스는 이를 통해서 어떤 표현의 유연성을 획득하려고 했다. 사실 바그너 음악 학파가 영원한 축제의 음으로 아무런 생각 없는 숭고함을 병적으로 탐하는 성향을 띄고 있었다. 슈트라우스의 유연성은 바로 이러한 성향에 대항하는 어떤 예술적 장점이다.

 

 

슈트라우스가 우리를 놀라게 하는 까닭은 그가 근본적으로 스스로 발전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유형의 음악을 실험했기 때문이다. 그의 내면에는 다른 무엇을 영글게 할만한 핵심이 없었다. 슈트라우스는 오로지 청중을 의식하면서 작곡과 연주에 몰두하였다. 말하자면 청중의 계층을 고려했는데, 식자층에게는 「엘렉트라」를 공연했으며, 돈 많은 신흥 귀족을 위해 「장미의 기사」와 같은 소재에 합당한 멜로디를 찾으려고 했다. 이로써 그가 최종적으로 추구한 것은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에로틱한 신비주의의 음악 속에서 구원을 찾는 일이었다. 슈트라우스는 주로 결투를 통한 남자들의 명예, 감각적인 것을 주로 다루었다. 그 밖에도 그가 승리를 구가하게 만든 것은 건장한 농촌 에너지를 담은 카바레의 소재였다. (역주: 이는 20세기 초 베를린의 카바레를 떠올리게 한다. 가령 1901년 에른스트 폰 볼초겐 Ernst von Wolzogen이라는 사람은 베를린에서 소극장을 열어서 음악 그리고 소극을 공연하게 했다.)

 

슈트라우스는 지극히 이성적인 관점에서 감각적 일상의 소재를 풍요로운 예술로 승화시켰다. 모든 것은 아주 멋진 음악으로 울려 퍼졌으며, 정중은 이러한 공연에 놀라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예컨대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결투로 인한 얼굴의 상처를 자랑스럽게 드러내었는데, 이는 간간이 우스꽝스러운 대화와 대비되곤 하였다. 감각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일견 천박한, 개인의 사적인 행복을 안겨주었지만, 최소한 어떤 신비주의의 안온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가령 스트라우스의 교향시, 「틸 오일렌슈피겔」 (1895)에서 젠드링거 가(街)에 가로등이 꺼질 때 “틸 오일렌슈피겔”은 방울을 딸랑거린다. (역주: 틸 오일렌슈피겔은 14세기에 간행된 유머 소설의 주인공이다. 오일렌슈피겔은 멍청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교활하고 끊임없이 동족들에게 장난을 친다. 초판은 1510년경 스트라스부르의 요하네스 그뤼닝거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그리고 「살로메」 (1905)에서 여주인공은 댄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나라보트”를 유혹하려고 한다. (역주: 슈트라우스는 1905년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을 오페라로 만들었다. 살로메는 감옥에 갇힌 예언자 요카난을 사랑하여 그를 구출하기로 작심한다. 그래서 그미는 궁정 수비대장, 나라보트를 꼬드기려고 춤을 춘다.) 교향시 「동 쥐앙」 (1888)에서 주인공이 과도한 자만심으로 한 명의 여자에 안주하지 않고 일탈하려고 한다. 교향시 「죽음과 영적 승화 Tod und Verklärung」 (1889)에서 죽다가 살아난 자가 세 번의 우여곡절 끝에 토니카의 성스러움으로 향한다.

 

오페라 「엘렉트라 Elektra」 (1909)에서 은빛 장미가 만개할 무렵 여성들의 합창은 어떤 불안감을 표현하는데, 오레스테스의 음성은 이러한 어두운 화음에 첨가되고 있다. 여기서 오레스테스는 누나인 엘렉트라를 놀랍게 상봉하게 되는데, 아버지, 아가멤논이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슬픈 소식의 모티프는 높은음으로 솟구치고 있다.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Ariadne auf Naxos」 (1912/16)에서 신은 여주인공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사랑은 놀라운 기술로 이미 만들어진 것이고, 지극히 강렬하게 채찍질 당하고, 잘못 활용되는 기술적 오성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역주: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는 후고 폰 호프만슈탈과 함께 만든 기이한 작품이다. 아리아드네는 연인에게 버림받고, 섬, 낙소스에서 홀로 남게 된다. 극도의 절망 속에 사로잡힌 그미 앞에 나타난 자는 치르비네타라는 이름의 여성이었고, 그미를 통해서 위안을 얻는다. 이때 디오니소스 신이 여주인공 앞에 등장하여, 새로운 삶과 사랑의 가능성을 설파한다.)

 

그렇지만 슈트라우스 음악에서 활용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신경과민의 재능일 뿐이다. 영혼은 결핍되어 있고, 모든 것은 서정시의 방식으로 그리고 에로스의 흔적으로 각인되고 있다. 오페라 「살로메」의 경우 요카난 모티프는 멘델스존의 음악적 기술을 어설프게 동원하고 있는데, 그저 종교적 경박함 그리고 핵심 없는 내용만을 드러낼 뿐이다.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그 심층부에 기껏해야 텅빈 우울의 감정만을 비추어준다. 그것은 마음 졸이는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 역동성을 보여주지만, 이는 진지한 의미의 역동성은 아니며, 실제 현실에서 얼마든지 내용상 다른 사건으로 출현할 수 있다.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당대에 압도할 정도의 환호성을 불러일으켰지만, 여운은 강하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남는 것이라고는 그저 어떤 색채 섞인 그림자, 어떤 개별적 프로그램이라는, 그야말로 극적인 변화를 찾을 수 없는 개별 사항일 뿐이다.

 

물론 부드럽고 밝으며 즐거운, 사랑에 관한 극적인 텍스트가 오스트리아 빈이라는 지역의 편안한 삶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슈트라우스가 피우는 향의 냄새는 가벼운 편안함 그리고 그야말로 얕은 인간적 특징을 반영한 판타지 속에서 모든 현실의 진정한 향기를 앗아가게 만든다. 작품의 원칙에 따라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한마디로 인간의 피다.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이러한 혈기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슈트라우스의 음악이 모든 것을 규정하지 않고, 완강하게 서술하려고 애를 쓰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가장 사소한 무엇, 가장 대중적인 무엇 그리고 가장 비-음악적인 무엇을 하나의 예술적 그림으로 남긴 셈이다.

 

그렇지만 슈트라우스 예술의 드러난 정면(正面)은 어떤 보다 심층적인 의미를 자극하게 한다. 그것은 모든 개별적 사항으로 뒤섞여 있는 내용들을 뛰어넘음으로써 어떤 오로지 시적이고 “이교도적이며”, 있는 그대로 묘사된 반-극적인 교향곡의 특징을 산출해 낸다. 그렇기에 슈트라우스가 베를리오즈와 리스트가 자주 활용한 일막극(一幕劇)의 형식을 선호한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에 비하면 슈만과 브람스뿐 아니라, 슈베르트, 말러, 브루크너 등의 음악가는 베토벤의 정신을 진정으로 계승하여, (베토벤이 원래 사용했던) 여러 악장의 형태를 갖춘 교향곡 그리고 드라마의 폭넓은 형식을 그대로 이어나갔다.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처음 접할 때 그저 힘차다는 느낌만을 받게 되지만, 나중에 다시 듣게 되면, 우리는 상당히 미학적이라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이러한 상반되는 느낌은 우리의 판단이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짤막하게 지속되는 음악의 특성에 기인한다. 여기서 우리는 게오르크 지멜 Georg Simmel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삶의 주변에 관한 불안한 인상을 오색영롱한 방식으로 그려내었다. 그 밖에 시대 정신을 가장 재능 넘치게 서술한 사람으로 우리는 로댕 Rodin 그리고 베르그송 Bergson을 예로 들 수 있다. 세기 말은 참으로 변화무쌍하고 탈중심적인 시대였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슈트라우스를 다른 두 명의 장인과 함께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의 대열에 올려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역주: 피렌체에 있는 에스파냐 교회당에는 “벽화 Fresco”가 있는데, 거기에는 이른바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굴복했다고 하는 세 명의 철학자 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은 아베로에스, 시벨리우스 그리고 아리우스를 가리킨다. 블로흐는 이들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대표적인 세 사람의 음악가, 말러, 슈트라우스 그리고 브루크너와 대비시키고 있다. 이들의 중심에는 베토벤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브루크너는 자신의 아홉 번째 교향곡을 사랑하는 신에게 바쳤다는 점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뜻을 배반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다음을 클릭하면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다뉴비 강가에서"를 들을 수 있다.

https://www.ardmediathek.de/video/Y3JpZDovL3N3ci5kZS9hZXgvbzE0MzQzMjc

 

ARD Klassik: Strauss (Sohn) · An der schönen blauen Donau · NDR Radiophilharmonie · Andrew Manze · NDR - hier anschauen

Die NDR Radiophilharmonie spielt 'An der schönen blauen Donau' (Donauwalzer) von Johann Strauss (Sohn) in einer Aufnahme aus dem Jahr 2017 mit Dirigent Andrew Manze. Eine Produktion des ND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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