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출전은 다음과 같다. Ernst Bloch: Geist der Utopie, die zweite Fassung, Frankfurt a. M. 1985, S. 93 -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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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브루크너와 함께 어떤 훌륭한 양심을 담은 노래가 세상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역주: 안톤 브루크너 (1824 – 1896):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브루크너의 작곡 활동은 특히 11개의 교향곡에서 두드러진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뚜렷한 특징은 1864년 이전과 이후로 작품이 크게 나뉜다는 점이다. 작곡가가 40세가 되기 전에 작곡한 작품들은 주로 성악곡으로, 여러 미사곡과 수많은 모테트, 그리고 대부분 남성 합창단을 위한 많은 세속 합창곡을 포함한다. 브루크너 시대에 교향곡은 일종의 위기를 맞았다. 작곡가들은 베토벤의 교향곡 작품에 가려져 있다는 느낌과 제약을 느껴, 자신의 작품 활동에서 교향곡을 잠깐씩만 다루고 다른 창작 분야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프란츠 리스트와 같은 작곡가는 교향곡의 존립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교향시를 작곡하는 방식으로 우회하려 했다.)
그는 처음에 바그너에게서 작곡을 배웠으나, 과도하게 흥분하여 자신의 악보들을 찢어버리곤 했다. 그는 적극적인 행동을 음악으로 표현하였으며, 정신적으로 수많은 변화를 감당하려고 했다. 이러한 특징은 음의 꿈틀거리는 현란한 정지 상태에 비유될 수 있다. 브루크너의 음악은 “우주”의 광대무변한 상태를 다룬다기보다는 오히려 감각으로 경험하는 세계가 아니라, 이성에 의해 파악되는 세상을 다룬다는 인상을 풍긴다. 브루크너의 음악은 세심하지만, 변화무쌍하고 심원하다. 우리가 그의 음악을 애호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의 음악이 어떤 온유한 열기, 아늑하고 편안한 기분 그리고 삶의 과정에서 상실한 기쁨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브루크너의 음악을 접하면, 우리는 외부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단순히 불안한 열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지만 우리는 주위에서 과도한 유희 유형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가령 파우스트와 같은 사람이 거친 동작으로 허세를 부리는 것을 생각해 보라. 이러한 허장성세는 자신의 능력을 외부로 향해서 가장 수월하게 드러내는 심보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심리는 얼마든지 왜소하게 쭈그러들 수 있고, 갈등 속에서 공허함과 마주칠 수 있다. 사실 아다지오가 독일인의 가장 특수한 템포라고 말한 자가 바로 바그너가 아니었던가? 브루크너는 진정한 혈기라든가, 음의 어떤 중요한 내용으로 가득 찬 객관적 상승 작용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브루크너는 상부로 향하는 가장 강력한 믿음이라는 충동을 악보에 표현했다. 이러한 끓어오르는 감정은 그의 오케스트라의 언어로 표출되는데, 남부 독일에서 나타난 바로크 음악의 화려한 치장을 통해서 이미 증명된 바 있다.

브루크너의 음악은 음을 아주 훌륭하게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세심하고도 정교하게 직조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브루크너가 이른바 실내음악이라는 치장을 완전히 극복해 낸 선두 주자라고 명명될 수 있을 것이다. (역주: 브루크너는 생전에 당대 최고의 오르간 연주자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누렸을 뿐, 작곡가로서의 인정을 받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오랫동안 그의 교향곡들은 -미사곡이나 모테트와는 달리- 진지하게 수용되지 않았다. 브루크너가 바그너와 브람스,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는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었지만, 바그너가 외면한 교향곡 형식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한편, 브루크너는 절대 음악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을 브람스와 공유했지만, 그와 커다란 차이를 보였다.)
브루크너가 이룩해낸 업적은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즉 브루크너는 꾸밈음과 같은 멜리스마 그리고 실내음악의 문화를 다시 과감하게 도입하였다. 이러한 도입은 부분적으로는 교향곡의 체제를 해독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다시 말해서 브루크너는 작품과 함께 상승하는 열기의 온도가 아니라, 외부적으로 드러난 모든 의지를 해방시켰다. 언젠가 카를 그룬스키 Karl Grunsky가 정확하게 지적한 바 있듯이, 모든 음향의 상승작용은 브루크너가 음악적으로 엄격하게 준비하고 확정한 긴장감의 표현과 같다. (역주: 카를 그룬스키 (1871 – 1943): 독일의 역사가, 음악작가. 블로흐는 그룬스키의 다음의 책에서 인용했다. Karl Grunsky: Musikgeschichte des 18. Jahrhunderts. Göschen, 2 Bde. Göschen, Leipzig 1914.) 이는 베토벤에게서 엿보이는 리듬의 형식뿐 아니라, 조바꿈의 기법이라든가 대위법적으로 숙고해낸 형식으로 얼마든지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악하고 암담하며 문맥과 다른 표현을 사용하여, 브루크너에게 신랄한 비난을 가했다. 즉 브루크너의 음악은 최소한 주요 악장에서 심한 비약과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닦달하면서, 브루크너의 음악을 비난했다. 가령 브람스는 음악적 관련성에 따라 그의 교향곡을 무척 수월한 방식으로 논평했고, 프란츠 리스트 Franz Liszt의 제자들은 이러한 비판을 근거로 프로그램의 서술적 힘을 어떤 철저하고도 엄격한 발전으로 대치시킨 바 있다. (역주: 프란츠 리스트 (1811 – 1886)는 피아니스트로서 훌륭한 피아노곡을 만들어 연주하였다. 특히 교향시의 발전을 통해 관현악 음악에도 상당히 공헌했다. 표제 음악에 대한 그의 개념과 혁신적인 화성 및 형식 기법의 사용은 그를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신독일 악파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만들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수많은 제자들에게 음악적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브루크너에 대한 비난은 몇몇 대수롭지 않은, 누락된 실수에 적용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제외한다면 우리는 브루크너의 마지막 악장에 나타나는 결함만을 제한적으로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브루크너의 교향곡 피날레는 이따금 기이할 정도로 유장하며, 어떤 빈틈을 보이면서, 확고한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피날레의 시작은 –베토벤의 교향곡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그 자체 아주 까다로운 악장이 아닐 수 없다. 피날레에서는 첫 번째 악장에서 드러나는 기발한 발상은 제어되고, 이어지는 음은 아주 철저한 규칙에 근거하여 전개되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고찰할 때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은 무엇보다도 즐거운 정서로 마무리되어야 하며, 구속 없는 유연한 방식으로 형상화되었다. 가령 피날레에는 음악적 흐름의 비약 그리고 날아가는 듯한 비행이 담겨 있어야 하며, 그 이행 과정에서 어떤 충돌하는 대립 그리고 어떤 기준을 넘어서는 판타지가 자리해야 한다. 말하자면 첫 번째 악장은 어떤 찬란히 상승하는 승리의 감정 그리고 무참히 꺾여 나가는 패배의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데, 피날레는 이러한 요구 사항을 하나의 규칙으로 다시 한번 요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특징은 베토벤 그리고 브루크너의 교향곡에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교향곡의 피날레는 극한에 압도당하지 않은 채 광범위하게 완성되는 종합적 결론으로 존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변증법적 종합은 대체로 지금까지 이어지던 악장에 마비되어 있던 청중의 기분을 일깨우고, 아무런 형태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일상에 사로잡힌 감정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연주가 끝나게 되면, 청중은 어쩌면 문 앞에서 멈추게 되고, 그들의 상승하는 기운은 바깥 세계의 모든 질서에 순응해야 할지 모른다. 마지막 종결의 음은 아다지오의 결말과 결합하지만, 빠른 리듬의 스케르초는 균형 감각을 다시 발견하게 하며, 교향곡의 세상 영역을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 마지막에 이르러 승리가 도래하는데, 가령 베토벤의 C장조 교향곡의 피날레는 다음과 같은 인상을 남긴다. (역주: 교향곡 5번 C단조 (Op. 67)은 1807년 또는 1808년에 작곡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다. 이 교향곡은 1808년 12월 22일 빈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베토벤의 "5번"은 오늘날 가장 유명한 고전 음악 작품 중 하나다.) 즉 사건과 함께 하는 마지막 여운은 마치 지금까지 배불리 먹어보지 못한 달콤함처럼 실제 현실에서 도저히 만끽하지 못알 것 같다는 느낌을 생각해 보라.
음악은 최소한 마지막의 찬란한 기쁨을 깨닫게 해주고, 독자적으로 모든 게 성공리에 끝났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브루크너는 최소한 자신이 베토벤과 하나라고 여기면서 마무리에 해당하는 고전적 단락을 창안한다. 말하자면 피날레는 브루크너에게 인간을 더 이상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지 않고, 음악을 통해서 황홀경에 빠지게 하며, 음악의 가장 공간적이고 가장 객관적인 분분 속으로 혼입되게 만든다. 교향곡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기억의 상을 반추하며, 명상적 감흥 속에서 모든 열정, 찬란한 장소 그리고 멋지게 연주된 작품의 기본적 색채를 넘어서게 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음악 감상 시에 청중은 기대하는 환영을 바라보면서, 시적으로 떠올린, 존재론의 관점에서 최적의 공간으로 태동한 장소를 의식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그래, 작품의 상상적 서사 속에 그렇게 강렬하게 가라앉은 다음에는 모든 것은 더 이상 그렇게 극적이지 않게 된다. 이는 아마도 교향곡이 설정한 질서 때문으로 이해된다. (역주: 특히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은 당대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3악장에서 브루크너는 이미 반음계적인 음악 언어를 시도한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쇤베르크의 12음 기법 역시 이 악장의 주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구스타프 말러의 표현력이 풍부하고 웅장한 교향곡들은 브루크너의 음악적 토대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장 시벨리우스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6번과 9번에서 마치 소리의 태피스트리처럼 펼쳐지는 "브루크너식 리듬"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교향곡에서도 유사한 리듬으로 복잡한 구조를 창조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역시 브루크너 없이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쇼스타코비치가 미사곡, 특히 그의 「그대 주를 Te Deum」를 통해 종교 음악을 콘서트홀에 적합하게 만든 것 또한 브루크너의 공이 컸다.)
극적인 내용은 제1악장에서 태동하며, 마지막 악장인 피날레에는 이전의 발단과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새로운 내용이 더 이상 도입되지 않는다. 대신에 새로운 아다지오의 음이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아다지오의 음악이야말로 서정적 형태로서 가장 형상화하기 어려운 형태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브루크너의 서사는 그리스도 성찬식의 마지막에 최상의 해결책이 나타난다는 종교적 내용을 첨가하고 있다.

그런데 브루크너의 음악에서 강력한 음이 현재 이어질 경우 어떤 해결하기 힘든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환희를 표현하는 마지막 악장을 과연 어떻게 예술적으로 탁월한 끝맺음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피날레에서 상승 그리고 해결을 다루는 것은 거의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환호의 외침이 음악적 측면에서 훌륭하게 전달되기란 침으로 어렵다. 그것은 베토벤 그리고 브루크너의 경우 어떤 형식적 차원에서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 음악적 방법론의 문제이지, 천국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감흥을 증명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 물론 환희의 감정은 베토벤의 마지막 체험에서 비롯한 것일 뿐, 상승작용이나 전통적으로 증명되는 클라이맥스의 부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격렬한 기쁨의 감정은 반드시 연주 행위 자체에서 비롯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교향곡에 첨부된 환호성은 순수 음악의 관점에서는 커다란 의미를 전달해 주지는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명불허전이지.”라는 말로 완전한 만족감을 드러내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사람들은 “베토벤은 오랫동안 암울한 현실 속에서 영웅이 감당할 수 없는 억압을 감내하고 살았다.”라고 표현할지 모른다. 어쩌면 사람들은 베토벤과 브루크너를 어떤 밝은 성격의 법논리학자로 파악할 수도 있다. 괴로움이란 이들에 의하면 그저 오랜 쓰라림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놀라운 긴장을 안겨주는 축제, 다시 말해서 고통을 견뎌내는 어떤 양념 정도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순수 음악적 차원에서 단순히 전기적 관점에서 환호성만큼 무덤덤한 감흥은 없을 것이라고 짐작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찬란한 기쁨은 그저 형식적으로 본연의 자리를 찾게 되고 토니카 음을 수단으로 하는 피날레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거대한 환호성은 음악적 은유를 확신할 수 있는 원래의 가치를 완전히 획득할 수 없을지 모른다.
자고로 기쁨이란 모든 위대한 존재 속에서는 항상 역설적 모순을 드러내는 법이다. 그것은 모든 위대한 존재 속에서는 한상 역설적인 의미를 보여준다. 환희는 음악적 이행 과정, 음악의 주도적 상승의 작용만으로는 생산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깊은 내면의 기쁨이 음악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심원한 의미로 도입되었을 뿐이다. 여기에는 고유의 언어, “생산적인” 이행이라든가, 동경, 외침, 믿음을 포괄하는 어떤 음악 그리고 음악으로부터 유래하는 믿음의 어떤 탄생이 존재한다. 이러한 언어는 음악적 영혼의 가장 낮은, 가장 내밀하, 가장 먼 곳의 심층부에서 들리는 소리와 같다. 가령 “그러나 성 미하엘은 기수(騎手)입니다. Sed signifer sanctus Michael”이라는 성가의 가사를 생각해 보라. (역주: 이 구절은 레퀴엠 미사 가운데 나오는 「주 예수 그리스도 Domine Jesu Christe」라는 성가의 구절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위대한 음악가들 역시 아주 드물게 성공을 거둔 바 있는 목표가 아닐 수 없다. 왜냐면 생산적인 갈망의 환영은 대단한 상상력의 서사를 요청하므로, 주로 피날레가 아니라, 앞부분인 아다지오에서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음악의 연주는 아무래도 작열하는 영혼의 핵심, 어떤 한 가지 점에서 작동되는, 자신의 순수한 환영 그리고 고유한 시적인 존재론으로부터 약간 동떨어져 있다.
그런데 브루크너의 음악적 능력과 위상을 헌신적 자세로 연구한 사람은 바로 아우구스트 할름 August Halm이었다. (역주: 브루크너는 교향곡을 완성한 후에도 대부분을 수정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 이유는 다양했다. 때로는 초고가 불완전하다고 생각하여 끊임없이 수정했다. 이러한 수정의 범위는 세부적인 부분을 다듬는 정도(주로 시대 구분과 악기 편성)부터 악장 전체를 거의 새로 쓰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특히 교향곡 4번의 경우, 브루크너는 이 작품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스케르초 악장을 도입했고, 피날레에서 주제만 남았을 뿐, 그 주제의 전개 방식과 따라서 피날레 악장의 특징은 원래 구상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브루크너의 악보는 다양한 버전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많은 오해를 낳았다.)
브루크너는 할름에 의하면 베토벤이 완전히 전하지 못한 무엇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했다. 즉 베토벤이 빠뜨린 거대한 외침, 대중을 장악하는 에너지 가득 찬 힘과 모티프를 담은 인간의 목소리가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제외한 음악 속에 빠짐없이 반영되어 있다. 이로써 시적인 자극 내지는 극예술의 특징에 해당하는 불순한 가시는 완전히 제거되었다는 것이다. 성악의 과감한 도입이야말로 음악적 장인의 놀라운 행위이며, 바그너 양식을 재수용하는 일이며, 그 자체 “말하는 음악”과 다름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성악과 기악의 앙상블은 부담스러운 음악 교유 그리고 음악 드라마에서 좀처럼 활용되지 않는 방식이다.
이러한 시도는 –브람스에게서는 의미심장하게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 바 있는데- 그 자체 완전체의 내용과 형식과 같다. 그것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포에지의 영역과는 전혀 다른, 대양(大洋)으로 향하는 길로서 기억될 수 있다. 이로써 브루크너는 슈베르트의 유산이며, 바그너 음악의 정화 작업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근본적으로 바흐 그리고 베토벤과 관련성을 맺고 있다. 브루크너는 바흐와 베토벤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확신하였다. 즉 바흐의 주선율에서 나타나는 개별성이라는 잘 가꾸어진 개성은 베토벤의 잔력과 사회 조직의 형태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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