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Bloch 번역

에른스트 블로흐: 모차르트에 관하여

필자 (匹子) 2026. 3. 25. 15:43

다음의 글의 출전은 다음과 같다. Ernst Bloch: Geist der Utopie, Frankfurt a. M. 1985, S. 68 - 70. 번역: 박설호. 많은 참고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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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모차르트는 불세출의 음악가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쉽고도 매혹적으로 그리고 폐쇄적으로 노래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는 자신과 동시대 사람들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우리가 탐구한 다음에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모차르트의 성악 능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이다. 그에게는 모든 게 일상과 달리 고요했다. 밤이 도래하면 고결한 형체가 순서에 따라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그런데 아직 모든 것을 변화하게 하는 밤(夜)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모든 불빛이 꺼지고, 산속의 요정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동트기 전 아침 여명의 흐릿한 빛이 서서히 밝아오면, 어둠은 여전히 모든 벽을 차단하고 있다. 촛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모든 것은 흐릿하게 비친다, 흐릿한 빛은 사랑스럽고도 대낮의 빛보다도 더욱 명료함을 느끼게 해준다. 저편의 풍경은 마치 로코코풍으로 다가오고, 마치 진주의 미광처럼 외부의 빛으로 반사되고 있다.

 

알록달록한 음은 높은 공중에 부유한 듯하고, 날개 달린 듯 날아갈 것 같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어떠한 도취라든가 비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피가로의 결혼」에 나타나는 율동적인 앙상블 장면도 나타나지 않는다. (역주: 「피가로의 결혼」 (KV 492)은 보마르세의 4막 희곡 작품인데 모차르트에 의해서 오페라 부파로 만들어져, 1786년 초연되었다. 피가로와 수잔나는 연인 관계인데, 알마바바의 간계와 술수로 고초를 겪다가 끝내 결혼식을 성공리에 치른다. 오늘날 가장 활발하게 공연되는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한 것은 오로지 모차르트의 놀라운 작곡 그리고 유머러스한 각본의 가치에 기인한다.) 배우들의 행동은 배후에서 구술하는 문장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배우들의 모든 행동은 가볍게 스쳐 지나가다가 순식간에 노래로 뒤바뀐다. 말하자면 무대의 장면은 이런 식으로 급박하게 아리아로 이전되고 있다.

 

노래 속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동시에 집결되어 있다. 이는 어느 순간 하나의 장소에 모여 있는 감정이다. 말하자면 등장인물의 갈망 그리고 애환은 아리아를 통해서 표현되고 있다. 감정이 끓어오르지만, 흥분이 노골적으로 표출되지도 않는다. 놀라운 음은 순간적 육체성 그리고 척도의 공간성을 뛰어넘고 있다. 마지막의 고결한 음악은 과장된 마음인지, 고통인지, 아니면 즐거움인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청중이 절제된 공간을 벗어나도록 조처하고 있다.

 

멜로디는 자극적으로 긍정과 부정을 표현하면서도 순수한 질문과 대답을 이해하기 힘들게 만든다. 이러한 분위기는 연극 「동 쥐앙」과의 차이점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다. 극적 인물인 동 쥐앙은 즐거운 향연을 줄기다가 끝내 신비로운 몰락을 맞이하지 않는가? 작품의 노선과 형식에 있어서 동일하게 머무는 폐쇄성 그리고 조각 작품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작품의 변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항은 무엇보다도 절제에 따른 행위의 결과로 이해된다. 우울하고도 조용히 울려 퍼지는 아리아는 마치 은빛의 물건 내지는 도자기 하나를 연상시킨다. 심지어 사람들은 마구 흥분한 채 소리를 지르며 행군하는데, 이는 묘하게 중국 취향의 분위기를 더욱 끓어오르게 한다. 마치 다시 인용되는 대본의 구절이 마치 융단 아래로 감추어지듯이, 내적인 삶의 표시라든가 재인용 방식으로 표현되는 행위 그리고 시적으로 달구어진 충만한 과잉은 원작에서 나타나는 흥분한 실제의 자아를 반영하지 않고, 오히려 놀랍게도 신비적으로 인지되는 자아로 이전되고 있다. 그리하여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인형극, 희가극, 동화 오페라의 범위를 벗어나고 심지어는 음악적 은총의 드라마를 위한 카펫을 뛰어넘고 있다.

 

분명히 말하건대 우리가 망각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어느 수사와의 논쟁, 혹은 갑자기 터져 나오는 수사의 A 단조 멜로디, 푸가 풍의 문장 그리고 마치 세례를 위한 압착 봉인의 기구처럼 여겨지는 사원의 정문 앞에서 화가 난 남자들이 경직된 모습으로 부르는 “확정된 노래 cantus firmus” 등이 그것들이다. 청중을 압도하는 두 가지 음의 형체는 「마술 피리」에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두 가지 면모를 지니고 있다. (역주: 「마술 피리」 (KV 620)는 모차르트의 오페라로 1791년에 초연되었다. 약 3시간 분량의 이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 중 하나다. 작품에 등장하는 아리아는 오페라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할 정도다. 「마술 피리」는 오늘날 인형극 등 어린이들을 위한 형식으로 공연되기도 한다. 이 오페라의 다면적인 대조는 빈-고전주의의 정신을 반영합니다. 처음에는 화려하고 반짝이는 마법 희극으로 등장하지만, 줄거리는 점차 프리메이슨의 이상을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음은 마치 거대하고 경직된 괴물, 고르곤의 환영처럼 카펫을 찢어놓을 정도로 울려 퍼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환영은 통상적으로 순수한 형태인, 모든 유희적이고 안온한 천국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우리가 유년 시절에 느꼈던, 검증되지 못한 꿈과 같은 상이다. 17세의 모차르트는 행여나 어른이 되어 천박한 존재로 추락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음악은 미성년이라는 카펫에 내재한 음악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 대목에서 그는 다른 작품에서와는 다른, 어떤 현실적 진지함을 강요당했는지 모른다.

 

이러한 방식으로 모차르트는 남쪽 음악의 수장으로 머물렀다. 그의 오페라 음악은 다른 차원에서의 변형을 불허하는 무엇이었으며, 시각적으로도 황홀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예술적 방향 그리고 특징에 있어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오로지 멜로디를 통해서 청중들을 머나먼 남쪽 나라로 여행하게 하였다. 그가 소나타 형식의 작품 속에 얼마나 놀라운 자신의 그윽하고도 밝은 영혼을 갈아 넣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소나타의 멜로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마술 피리」의 서곡, 실내악의 음향을 지니지만, 전대미문의 주피터 교향곡을 통해서 놀라운 음향의 형체를 접하게 된다. (역주: 모차르트는 1788년 여름 빈에서 31 번째 교향곡 (KV 551)을 작곡했다. 이 곡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교향곡이며, '주피터 교향곡'이라는 별칭은 19세기 초에 처음 등장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우아한 감흥에서 창조된 것으로서 가장 고결한 시간적 간격의 만곡을 거쳐서 찬란하고 풍요로운 꽃이 만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슈베르트는 나중에 모차르트의 멜로디의 풍요로움을 답습하려고 애를 썼다. 그렇지만 악상이 떠오를 때 그는 악보에 아무것도 남길 수 없었다. 악보에 선적할 수 있는 고결한 음은 뇌리에 떠오르지 않았고, 눈밭, 안개, 숲, 방황, 먼 곳의 따뜻한 빛은 주어지지 않았다.

 

모차르트의 멜로디는 사랑스러운 탐닉이며, 즐거움을 마치 진주 목걸이처럼 이어 나가는 음이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에게 빛 그리고 열기를 안겨주는 것 같다. 물론 오페라 부파에서 부분적으로 왁자지껄한 음이 뒤섞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청중들에게 놀라운 감흥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하다. 음은 자그마하게 움직이지 않는 채 이어지는데, 여기에는 작은 세계의 수많은 자아가 어떻게 휴식하는지를 들려준다.

 

모차르트의 음은 시간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육체 속에 자리하는 영혼의 짤막한 역동성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말하면, 여기에는 어떠한 아첨과 과장된 찬양 없이 오로지 사실적 내용만이 담겨 있을 뿐이다. 즉 모차르트의 음악에는 어떠한 긴장도 자리하지 않으며, 거대한 노선의 대립과 같은 의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모차르트가 지피는 어떤 팽창하는, 필연적인 화염으로부터 출현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모차르트의 음악은 일종의 수학과 관련되는 산술의 특징을 강하게 드러낸다. 이는 베토벤의 율동 넘치는 교향곡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이다. 베토벤은 스스로 선택하고 가시적인 무엇을 조직적 차원에서 결합한 음악이 아닌가? 이와 관련하여 바그너는 언젠가 다음과 같이 정확히 논평한 바 있다. 즉 모차르트에게서 드러나는, 가장 감동적인 우아함은 어떤 산술과 같은 놀라운 재능과 결부되어 있다고 말이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모든 사항을 서로 가교로 연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감정을 강렬하게 흔들어놓지는 않는다. 세상을 그런 식으로 밝게 해석하고 정신적 의미를 아무런 문제 없이 음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모차르트의 예술은 고대 그리스를 많이 닮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