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독일 유학은 단순히 학문 습득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이질적인 문화를 체득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여기서 “체득”이라는 단어는 지적 측면에서의 “이해”와는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다른 삶의 패턴을 머릿속으로 입력하는 것을 넘어서서, 가슴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것은 비유적으로 말해서 지금까지의 편견을 일단 접고, 낯설고 이질적인 문화적 수영장으로 다이빙하여 헤엄쳐 보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생활, 사랑의 삶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이질적 특징들이 처음에는 나를 몹시 당황하게 했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사랑하는 임을 만나게 되면, 대체로 결혼을 통한 완전한 사랑을 꿈꿉니다. 혼인 없는 사랑의 삶은 뇌리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럽의 젊은이들은 성대한 결혼식이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임과 오래 함께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다시 말해서 첫째로 사랑한다고 해서 성급하게 결혼식을 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수십 년의 동거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파티에서 만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파트너를 “아내”가 아니라, “삶의 동반자 Lebensgefährtin”이라고 소개합니다.
한국에서는 혼인 없는 동거 생활, 혹은 매매춘이 삶의 관습에 위배하는 패턴으로 백안시되지만, 유럽 사람들은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자유연애를 통한 동침”, 혹은 “매매춘”을 부도덕한 짓거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는 주어진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이 개개인의 사랑할 자유를 간섭하거나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개인주의적 사고에서 비롯한 생활관입니다. 물론 그들이 돈으로 사랑을 구매하는 매춘 행위를 긍정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사회 정치적으로 근절할 수 없는 사랑의 패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필요악”으로 수용되고 있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가 공창이라는 제도를 도입하고, 매매춘을 하나의 떳떳한 직업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이러한 개인주의적인 생활관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한국에서는 혼내 정사만이 용인되고, 이와는 다른 사랑의 패턴을 불결하고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판단합니다. 한국에서는 혼전 동거, 매춘, 하룻밤의 만남, 이혼 등의 단어는 매우 부정적으로 쓰입니다. 한국에는 여전히 유교 문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선을 볼 때 자신의 부모가 이혼했다고 말하면, 상대방은 이를 결격 사유로 취급합니다. 여기서 필자는 두 문화의 옳고 그름을 지적하려는 게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필자는 한국에는 여전히 –빌헬름 라이히 Wilhelm Reich의 표현을 빌자면- 일부일처제에 근거하는 강제적 성도덕이 존재하고, 서양에는 이러한 성도덕이 아예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서양의 젊은이들은 너무 자유 분방하게 살아서 육체적으로 다치고, 한국의 젊은이들은 몸을 정갈하게 유지할 수 있으나, 심리적 상처를 입습니다. 무엇이 좋은지에 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요. 우리는 두 문화 가운데에서 하나가 옳다는 식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으며, 일장일단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홍세화 선생이 『세느강은 좌우로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한겨래 출판 1999)에서 주장한 바 있듯이, 두 개의 이질적 문화는 서로 구분되지만,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양자택일의 대상은 아닙니다.
둘째로 많은 서양 사람들은 결혼하면 반드시 자식을 낳아서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자식 출산은 혼인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남녀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호적 제도에 있습니다. 여성이 남편 없이 아이를 출산했을 때, 그미는 아이를 얼마든지 자신의 이름으로 호적에 올릴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는 혼인 신고 없이 자식의 출생을 신고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오로지 혼인 부부만이 태어난 자식을 호적에 등록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한 장점과 부작용 그리고 법적 소송에 관해서는 세부적인 언급을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유럽에는 자식 없이 사는 부부도 있고, 여러 자식을 키우는 동거인들도 있으며, 편부, 편모 가정도 즐비합니다. 부모 없이 공동으로 살아가는 아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한국인처럼 “부부와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만을 정상적 패턴이라고 간주하고, 이에 어긋나는 가족 형태를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며, 손가락질하지도 않습니다. 하나의 가족 형태를 정상이라고 여기고 다른 것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하는 경우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멸시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유럽인들은 동성연애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대신에, 마약 사용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난을 가합니다. 동성연애야 두 사람 사이의 두 사람의 사적인 문제일 뿐이지만, 마약은 무고한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도구라는 것입니다. 어느 파일럿이 마약을 복용한 다음에 비행기를 몰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 보세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사랑의 삶에 있어서 느끼는 행복이지, 주위 여건과 타인의 이목이 아니라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체면과 타인의 이목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태도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합니다.
셋째로 현대에 이르러 싱글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유럽이나 한국 공동으로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그렇지만 싱글의 삶을 선택하는 이유는 서로 다릅니다. 유럽의 젊은이들은 예속되는 삶을 싫어하는 성향 때문에 싱글의 삶이 선호되는 데 비해서 특히 한국의 젊은 남자의 경우 경제적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정부지로 솟아오른 집값이 에로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요약하건대 한국인들은 지지고 볶더라도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선호하는 데 비해서, 서양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를 최대한 누리기 위해서 불편한 자유, 즉 싱글의 삶을 선택하곤 합니다. 한국에서는 통일이 대세인 반면, 유럽에서는 분단이 대세입니다.
인간은 누구든 간에 -레오 코플러 Leo Kofler가 『금욕적인 에로스 Der asketische Eros』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무의식적으로 주어진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은 개별 인간의 경제적 성적 자유를 어느 정도 앗아가기 마련입니다. 여기에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없습니다. 만약 한 나라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자는 주어진 관습과 도덕 속에 은폐된 어떤 크고 작은 사회적 금기를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당연지사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외 여행을 떠나게 되면, 그곳의 일상적 삶에서 많은 기이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다른 문화를 접하게 되면, 이러한 기이한 금기 내자는 억눌린 욕망이 아주 사소한 사회적 정황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요. 다른 세상에서 10년 동안 살게 되면, 우리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그 나라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삶의 패턴이 뒤섞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살아가는 삶의 기준이 이중적으로 체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종심소욕 (從心所欲)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곁의 타인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단 무엇이 금지되어 있는지를 인지하고, 나중에 이러한 욕망을 실천하거나, 승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8시간 일할 수 있지만, 8시간 식사를 즐기거나 장시간 섹스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낙타와 같아서, 고난의 사막을 걸어가다가, 아주 드물게 기쁨의 물 한잔을 얻을 뿐입니다.
신의 음식 “암브로시아”는 맛있고, 동시에 영양 넘치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맛있는 것은 무엇이든 영양이 없고, 영양 많은 것은 멋이 없으니까요. 맛있고 동시에 영양 높은 음식은 거의 드물게 주어집니다. 죽을 때까지 돌을 굴리야 하는 시지푸스도 가끔 물을 마시고, 하늘을 쳐다보는 순간은 안타깝게도 일촌광음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시, 「브레멘」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데이지꽃 그 향기 가슴속 깊이 사랑하기에/ 함께 아우르자는 디도의 말 없는 고백이라면/ 순간의 설렘 속에서/ 기쁨은 영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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