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흔히 훌륭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 덕목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인성과 실력이다. 어떤 분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 됨됨이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2. 한국 사회에서 실력과 인성을 갖추더라도 이른바 “뒷배”가 없는 자는 한국 사회에서는 좀처럼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좋은 사람이 항상 승진에서 제외되고, 쓰라린 실패를 맛보는 경우는 허다하다. 물론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3. 집단 이기주의, 파벌 그리고 당동벌이(黨同伐異)의 선민의식 등이 안타깝게도 바르고 공정한 판단을 가로막고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라. 신라 시대의 성골과 진골, 조선 시대의 양반과 쌍놈 등의 차별화는 유감스럽게도 오늘날까지 악습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4. 만약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이조시대에 정도전이 오래 살아서 제 뜻을 펼칠 수 있었더라면, 인간 사이의 차별화 현상은 어느 정도 약화했을지 모른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단군 사상에서 언급되는 홍익인간(弘益人間) 그리고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정신은 합리적으로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 이는 나의 허튼 생각일까?
5. 네티즌들은 홍명보를 언급하면서, 그를 탓하고 있다. 홍명보는 자존심과 고집이 엄청나게 세고, 안하무인에다 소통이 안 되는 깍두기의 전형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자를 "똥값남"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물음에 집중해야 한다. 어떻게 그가 여러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국가 대표 축구 감독을 연임하게 되었을까?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라.
6. 그들만의 리그에 문제가 있다. 고려 대학교 카르텔이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말았다. 외국에는 저명한 감독이 즐비하고, 한국에는 훌륭한 축구 감독 후보자가 많이 있다. 그런데도 홍명보는 월드컵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국가 대표 감독에 발탁되었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고대 카르텔 그리고 정몽규의 뒷배가 작용한 결과이다.
7. 세계적인 선수, 손흥민은 안타깝게도 이번 대회에서 단 한 번도 풀 타임을 소화하지 못했다. 감독이 그를 다른 선수로 교체했기 때문이다. 한 골을 허용한 다음에 김민재를 교체한 것도 문제다. 여기에는 보복성 징계의 의미가 있다. 이를 지켜보는 다른 선수들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오버래핑에 서툰 설영우를 끝까지 기용한 감독의 판단에 잘못이 있다. 설영우가 어설픈 축구 선수라는 말은 아니다. 그는 오른발을 주축으로 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왼쪽에서 달리게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8. 이번 월드컵 남아공과의 경기 한 장면이 뇌리에 박힌다. 이강인 선수는 후반전 휴식 시간에 다급하게 외쳤다. “재성이 형을 투입해야 합니다.” 그러나 코치진은 불과 20 여분 남은 시점에서 그의 간절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에는 결정적인 찬스도, 슛도 없었다. 한국 팀은 그저 백패스만 주고받다가, 분패하고 말았다.
9. 축구는 지극히 협동성을 요구하는 경기다. 필자는 축구의 문외한이지만, 다음의 사실은 알고 있다. 즉 골을 넣을 기회는 여러 선수의 기민한 공격 패턴을 통해 공간이 열릴 때 생긴다. 이강인은 공간 침투와 패스를 위해서 활동성이 좋은 기민한 이재성 선수가 자신과 뛰면서, 손흥민 선수와 날카로운 삼각 편대를 구성하기를 애타게 바랐던 것이다.
10. 팀이 지고 있을 때 선수들 모두 공격의 패턴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런데도 홍명보 감독은 쓰리 백에서 포백으로 전환하는 전술을 활용하지도 못했고, 공격수를 투입하지 않았다.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 있었던 이재성 선수는 얼마나 답답하고 침울했을까? 승패는 여반장이다. 다시 말해서 열심히 싸운 뒤의 패배에는 여한이 없는 법이다. 최선을 다하면, 여한이 없다. 이게 스포츠 정신이다. 그렇지만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졌을 때, 그때의 참담함과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11. 한국의 조직 사회에는 이상한 “똥값남”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대가족, 중소기업, 대기업, 학교, 여러 가지 법인 단체 등에는 어김없이 홍명보와 같은 고집불통이 가족과 동료, 상사와 부하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인성도 실력도 없는데, 어느 정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한 것은 그의 뒷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그들과 완전히 절연할 수는 없으나, 가급적 만나지 않으면 된다. 문제는 따로 있다. 어떻게 하면 어물전 꼴뚜기가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없는 민주적 토대를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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