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9. 볼파리아와 유토피아 (2): “볼파리아”에서는 몇몇 예외 사항을 제외하면 사형 제도를 용인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합당한 처벌로서 노예 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중범죄자들은 발에 족쇄가 묶인 채 1년 동안 노예로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노상강도와 같은 범죄자의 경우에는 평생 노예로 살아야 합니다. 일반 사람들이 여섯 시간 정도 일하는 데 비하면, 노예들은 별도로 몇 시간 더 많이 일해야 합니다.
혹자는 노예제도가 존속하는 게 어째서 평등 사회의 모델이 될 수 있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노예 제도는 계층 사회의 최하층에 속하는 자들이므로, 이 자체가 수직적 계층의 틀을 고수하는 시스템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노예제도는 모어 그리고 에벌린의 경우 오로지 처벌을 대신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노예라고 해서 무조건 굴욕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노예들은 대체로 일반 사람들보다도 노동 시간이 많으며, 대체로 불쾌하고 더러운 일감을 수행할 뿐입니다. 게다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공동체는 반드시 어떤 유형의 형벌을 필요로 합니다.
10. 방랑자의 범죄에 관한 문제: 나라를 방랑하다가 빵을 훔친 이유로 살해당하는 민초들을 생각하면, 처벌로서의 강제노동을 도입한 것은 인간애에서 비롯한 조처라고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에벌린의 『볼파리아』는 직업이 없이 나라를 떠돌며, 빵을 훔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떤 최소한의 안식처를 제공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신앙에 근거한 공동의 삶이며, 이것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에벌린은 방랑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행자와 순례자들에 대한 규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 곳을 여행하려는 순례자는 해당 지역의 신부 (혹은 목사) 내지 지방 감독관으로부터 여행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합니다. 허가증을 발급받으려는 자는 반드시 일정 금액을 납부하거나, 사전에 공동체를 위해 특정 분야에서 일정 기간 동안에 의무적으로 일해야 합니다. 그밖에 그는 여행 도중에 해당 지역 사회를 위해서 영성적 도움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게 가능하지 않다면, 순례자는 사적인 차원에서 봉사활동을 행해야 합니다.
11. 귀족의 정치 체제: 에벌린은 16세기 전반 독일의 현실을 염두에 두면서 글을 집필하였습니다. 모어가 오로지 상상력에 의존하여 글을 집필하였다면, 에벌린은 모어의 작품 구도를 막연하게 모방했을 뿐입니다. 볼파리아는 결코 돈을 경멸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에벌린에게 중요한 것은 경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아무런 구속 없이 신앙에 몰두할 수 있는 행복한 나라의 설계였습니다. 이로써 드러난 것은 다음과 같은 사항입니다. 즉 「15명의 동맹 동지들에게」는 부분적으로 모어의 작품을 모방하지만, 정신사적 차원에서 고찰할 때 중세 후기 내지 르네상스 초기의 종교 개혁에 관한 문헌에 편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에벌린이 제 10장에서 교회의 개혁을 강하게 설파하고, 제 11장에서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는 어디까지나 보수적 종교인의 시각에 의해서 투영된 것일 뿐, 토머스 뮌처의 열렬한 사회 개혁의 의지는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에벌린은 귀족의 정치 체제를 하나의 이상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선량한 귀족이 권력을 잡아서 사회 내지 국가를 이상적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Berger: 53).
12. 중농주의의 흔적들: 실제로 더 나은 사회에 관한 에벌린의 구상은 귀족의 관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새롭게 변화되는 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사람은 누구보다도 선한 귀족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15명의 동맹 동지들에게」에서 귀족에 대한 재산 몰수는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서 모어는 귀족의 재산 몰수는 물론이며, 그들의 여섯 시간 의무 노동을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았던가요? 에벌린은 경제적 영역에서 오로지 농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상업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게 에벌린의 지론이었습니다. 특히 서서히 성장하는 상인 계급 그리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스폰서의 역할을 담당했던 야콥 푸거Jakob Fugger와 같은 은행가에 대해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 역시 에벌린이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가내 수공업이 사회의 변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동력이었지만, 에벌린은 수공업을 그저 필요한 부분 내에서만 용인했을 뿐, 농업 중심의 경제 체제만을 중시하였습니다.
13. 에벌린의 경우 계층 사회에 대한 비판은 없다.: 자고로 계층 사회는 사회 전체의 안녕을 고려할 때 파기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계층 차이는 평등한 삶의 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모어는 계층 사회의 틀을 부수기 위해서 『유토피아』의 도시들을 기하학적 구도로 설계하였습니다. 도로와 가옥 역시 평등 사회를 지향하기 위해서 세밀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이로써 모어는 중세 도시와의 단절을 분명하게 부각시키려고 시도했습니다. 모어에 반해 에벌린은 중세에서 내려오는 전통적 거주 형태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볼파리아”는 사회의 계층 차이에 바탕을 둔 채 모든 것을 축조하고 있습니다. 사회 내의 사람들은 에벌린의 견해에 의하면 제각기 관심사와 수준에 있어서 이질적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마치 군대 조직이 그러하듯이 수직 구도의 계층으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볼파리아”에서는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에 사람이 있습니다. 가령 토마스 아퀴나스가 축조한 귀족, 시민, 농부, 여자, 천민 등의 수직 구도의 계층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러한 사고는 수직적 계층 구도의 단계적 사회 체제를 생각해 보십시오, 에벌린의 사고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장을 모방한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14. 슈티블린의 『행복 공화국』: 이번에는 카스파르 슈티블린의 작품을 살펴보겠습니다. 에벌린이 모어의 작품을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에서 재구성했다면, 카스파르 슈티블린Kaspar Stiblin은 가톨릭의 관점에서 『유토피아』와 유사한 국가 소설을 집필하였습니다. 이것은 『행복 공화국에 관한 해설Commentariolus de Eudaemonensium Republica』이라는 책자인데, 1555년 스위스의 바젤에서 맨 처음 간행되었으며, 나중에 800페이지 분량의 전집으로 1562년에 간행되었습니다. 맨 처음 읽으면 슈티블린의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적 유토피아의 기준을 준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행복 공화국』은 토머스 모어의 작품에 나타난 유토피아의 유형과 흡사한 점을 드러냅니다. 슈티블린의 문헌은 국가의 구도, 섬으로 이루어진 지형도, 경제적 특징, 가정제도, 사생활과 여성의 역할, 종교, 음악 외교 관계 등의 측면에서 모어의 이상 국가와 매우 비슷한 점을 보여줍니다.
15.『행복 공화국』과 『유토피아』 사이의 차이점과 마카리아 섬: 물론 몇 가지 사항은 유토피아와는 거리감을 드러냅니다. 모어가 두 사람의 등장인물을 등장시켜, 그들로 하여금 대화를 나누게 했다면, 슈티블린은 주인공 “나”를 등장하여, 한 사람의 관점 하에서 모든 것을 서술했습니다. 『유토피아』에서는 공산주의의 토대 하에서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군주 국가가 묘사되는 반면에, 『행복 공화국』에서는 사유재산제도에 바탕을 둔 귀족 관료주의의 국가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토머스 모어의 경우 종교적 관용사상이 중시되는 반면에, 슈티블린은 가장 바람직한 믿음으로서의 가톨릭 신앙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토피아와 유사한 특성도 은근히 드러납니다. 슈티블린은 모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선박의 난파 사건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선박 한 척이 기나긴 항해 끝에 풍랑을 만나서 난파 직전의 위기에 처합니다. 다행히 선장은 오랜 항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배를 몰아서, 아침 무렵에 아무런 피해당하지 않은 채 어느 해안에 당도합니다. 알고 보니 그곳은 마카리아라는 이름을 지닌 섬이었습니다. 모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유토피아 사람들이 이웃 섬이라고 명명하던 바로 그 섬이었습니다.
16.『행복 공화국』의 수도:『행복 공화국』의 수도, “에우데몬”은 -『유토피아』의 수도인 항구도시, “아마우로툼”과 마찬가지로- 기하학적 구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도는 원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네 개의 대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도시는 벽돌로 이로어진 세 겹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성벽과 성벽사이에는 거대한 무덤이 위치하며, 그 사이로 물이 흐릅니다. 도시를 기하학적으로 축조한 까닭은 무엇보다도 도시의 위생을 고려한 기능적 측면을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모어는 유토피아를 집필할 때 에라스뮈스가 머물던 스위스의 바젤을 염두에 두었는데, 나중에 슈티블린은 이를 그대로 모방하였습니다. 도시의 구도를 기하학적으로 구성한 것은 중세의 수직적 계층 구도를 일탈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니다. 기하학적 구도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계층을 떨치고 사회 전체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만인의 안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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