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의 시

박설호의 시, '용담 청량리 선녀'

필자 (匹子) 2026. 6. 13. 08:39

 

용담 청량리 선녀

박설호

 

늦여름 밤 청량리

자갈밭 근처 어두운 골목

젖먹이를 업은 포대기 끈 사이로

살며시 드러난 암술 하마

당신 행인들에게

 

밟힐까 걱정하며

아무런 애정도 수신호도

보낼 수가 없구나 나는 그림자야

허공을 맴도는 돌개바람

기댈 언덕이라곤

 

이승의 담장일 뿐

내 아기와 혼자서 목숨을

연명하려는 아내 용담이여 먹고

살려고 젖가슴과 레깅스

하반신 드러내며

 

꽃값 벌려 하지만

당신의 찬란한 처절함에

그 누구도 꾸벅 황홀해하지 않네

당신 호색녀라는 사실은

중요한 게 아니야

 

파 농사 식당 보조

허드렛일 마다하지 않아

병든 부모 병원비 동생의 생활비

싸울아비에 맞아 죽은 나

아 힘없는 그림자

 

아기를 잠재우고

찾아오는 수컷들과 용의

쓸개 쓰라린 쾌감을 즐기고 있지

내가 왕벌이라면 아 고해

속 플랑크톤으로

 

이승 다시 태어나

하루 살 수 있다면 아득한

레테 강의 어귀에 막장 텐트 치고 *

당신의 자줏빛 자궁 속에서

꿀잠 자고 싶구나

 

 

..................

 

 

* 레테 강: 저승에는 망각의 여신 레테의 이름을 딴 강이 흐른다. 강물을 마시면 전생의 기억을 잃게 되는데, 망자들은 이 강물을 마셔야 한다.

출전: 박설호 시집, 내 영혼 그대의 몸속으로, 강 2025.

 

 

 

박수근 화백의 그림 "빨래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