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100세 시인, 닥마르 닉의 시 두 편

필자 (匹子) 2026. 5. 22. 10:15

닥마르 닉 (1926 - )은 1926년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나다. 아버지, 에드문트 닉은 1923년부터 1933년까지 슐레지엔 방송국의 음악 담당으로 일하다. 그미의 가족은 1933년 베를린으로 이주하였는데, 거기서 그미의 아버지는 연극과 영화를 위한 음악을 작곡하다. 당시 닉의 어머니는 유대인 피가 약간 섞여 있어서 고립된 채 슐레지엔에서 숨어서 살다. 1945년 닉의 가족은 소련군이 진군하기 전에 바이에른의 렝리스로 도피하였으며, 1948년부터 뮌헨에 정주하다. 닉은 잉게보르크 바흐만, 힐데 도민 그리고 로제 아우스렌더와 함께 전후 독일 시단을 대표하는 여류 시인으로 손꼽힌다. 대표적 시집으로서 『순교자』(1947), 『증명과 표시』(1969),『헤아린 나날들』(1989) 등이 있다.

 

오만불손

닥마르 닉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자들이 아니다.

삶은 우리를 공허하게 부식시켰다.

신비로운 표시들은 없고,

더 이상 비밀도 없다.

 

우리는 생이 떠난 얼굴의

공기 없는 방들을 지나친다.

밤(夜)들은 우리의 꿈을 거부하고

별들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천국을 파괴시켰다.

우주는 냉혹하게 우리를 싸안고 있다.

죽음은 무심하게 우리를 내버려둔다.

우리는 폭력을 지니고 있다.

 

Hybris von Dagmar Nick: Wir sind nicht mehr die gleichen./ Uns ätzte das Leben leer./ Es gibt keine mystischen Zeichen,/ es gibt kein Geheimnis mehr. // Wir treiben durch luftlose Räume/ erloschenen Angesichts./ Die Nächte verweigern uns Träume,/ die Sterne sagen uns nichts. // Wir haben den Himmel zertrümmert./ Das Weltall umklammert uns kalt./ Der Tod läßt uns unbekümmert./ Wir haben Gewalt.

 

(질문)

1. 제목 “오만불손 (Hybris)”은 고대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나요?

2. 1행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3. 제 2연에서 “생이 떠난 얼굴의/ 공기 없는 방”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4. 제 2연을 읽고 현대인의 숙명적 죄를 설명해 보세요.

 

(해설)

“오만불손 (Hybris)”은 신 내지 신적인 무엇을 인지하거나 이를 차지하려는 인간의 방자한 태도를 가리킵니다. 고대 비극 작품은 이러한 오만한 태도를 죄의 원인 내지는 비극의 근본적 원인으로 묘사한 바 있습니다. 이는 나중에 기독교 문화가 도래한 뒤에는 “신성 모독 (Blasphemie)”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문제는 현대인이 거의 우연에 의해 우주 속에 내던져져 있다는 데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범지체계 (Pansophie)”는 이제 붕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1연에서 시인은 “우리”의 필연적 행위 뿐 아니라, “우리”가 처한 구속된 상황을 지적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더 이상 동일한 부류가 아니다. 종족 보존의 이유만으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자신의 생명을 보존한다는 미명 하에 동족을 집단적으로 살해하며,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강령 하에 독을 퍼뜨리고,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가요? 자연은 이제 인간에게 더 이상 신비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는 처녀지나 다름이 없게 된 것입니다.

 

“생이 떠난 얼굴의/ 공기 없는 방”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의 장소이며, 어떤 죽음의 현장입니다. 그것은 아우슈비츠의 학살과 같은 일이 자행되고, 연쇄 살인이 일어나는 끔찍한 전쟁터가 아닌가요? 이는 결코 신의 뜻에 의해 저질러지는 게 아니라 (그렇기에 “별들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몇몇 권력자의 우연적 욕망에 의해 대대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 한 사람의 갈망 및 노력으로는 근절되기 어려운 파국입니다.

 

시인은 제 3연에서 인간의 모순적인 삶 자체를 노골적으로 표현합니다. 현대인은 거의 우연적으로 우주 속에 내동댕이쳐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죽음은 무심하게 우리를 내버려둔다.” 고대의 거대한 범지 체계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스스로 “천국을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역사적으로 동일한 족속에 의해 끔찍하게 피해당했지만, 이와 반대로 차제에는 얼마든지 이러한 피해를 앙갚음할 수 있습니다. 닥마르 닉은 역설적으로 “죄에 대한 책임을 지닌 죄 없는 문명”을 시적으로 형상화하였습니다. 이는 어쩌면 반복될지 모르는 끔찍한 파국을 경고하기 위함인지 모릅니다.

 

 

 

몰이사냥

닥마르 닉

 

늦은 여름 이러한 작별의

직감은 앞서 솟구친다.

그대 뒤에서 그림자 드리운

집 안으로 문이 닫힌다.

 

폭넓음을 그리워한 바람,

내일 디딜 그대의 길이리라.

그대가 잃어버린 것은

새로이 빌릴 수 있으리라.

 

가을폭풍이 깨어날 때까지

그댄 밖의 천막에서 지샐 수 있다.

밤 동안의 총소리에 대해

그대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눈감은 채 그대는 발견한다,

경작지에 은폐된 여우 덫을.

어치가 그대에게 경고할 즈음에야

그대는 안다, 몰이사냥의 시작을.

 

Treibjagd von Dagmar Nick: Spätsommer, dieses Gespür/ von Abschied voraus./ Hinter dir fällt schon die Tür/ ins beschattete Haus. // Wind, der die Weite durchmißt:/ deine Wege von morgen./ Was du verloren has, ist/ aufs neue zu borgen. // Bis der Herbststurm erwacht,/ magst du noch draußen zelten,/ die Schüsse während der Nacht/ brauchen nicht dir zu gelten. // Furchsfallen, im Acker getarnt,/ findest du blind./ Erst wenn der Häher dich warnt,/ weißt du: die Treibjagd beginnt.

 

(질문)

1. “늦여름”은 어째서 안온하지 않고, 허전함을 안겨주는가요?

2. “바람”이 암시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3. 제 4연에서 독자는 소름끼치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힙니다. 그 이유는?

 

(해설)

현재형으로 기술된 「몰이사냥」은 일견 늦여름의 풍경과 허망함을 노래한 것처럼 들립니다. 그렇지만 작품의 함의는 정치적 억압에 대한 어떤 경고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늦여름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포만함과 안온함을 느끼게 해주지만, 이 시에서는 정반대의 정조를 유추하게 합니다. 가을이 다가오기 전에 시적 자아는 떠나가는 여름의 열기를 아쉬워합니다. 조금 지나면 “가을 폭풍”이 날씨를 흐리게 하고, 사람들을 집에 머물게 할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서 “문”은 순간적으로 닫힙니다. 이로써 생명체들은 황량함 속에서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하고, 어디론가 도피할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제 2연에서 길은 바람의 방향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확정한 무엇만을 알려줄 뿐입니다. 어떠한 무엇도 우리에게 안전과 편안함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시간적으로 제한된 무엇이 과연 미래에 가능할까요? 이와 관련하여 시인은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그대가 잃어버린 것은/ 새로이 빌릴 수 있으리라.” 바람의 이미지는 시적 자아의 갈망, 혹은 심리적 동요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제 3연 역시 앞의 상황과 관련하여 이해될 수 있습니다. 가을 폭풍이 불면 “그대”는 더 이상 천막에서 밤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밤 동안에 사냥을 마다하지 않지만, 시적 자아는 총소리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조언합니다.

 

시인의 경고는 제 4연에 나타납니다. 지금까지의 사냥은 동물 사냥에 국한되었지만, 앞으로는 “인간 사냥”이 자행될지 모릅니다. 여우 덫은 경작지에 은폐되어 있지만, 인간 사냥을 위한 덫은 어디에 설치되어 있을까요? 이를 경고하는 것은 “어치”의 울음소리입니다. “가을 폭풍”은 그 자체 한계 상황을 암시하는 시어가 아닌가요? 그게 잠에서 “깨어”나면, 몰이사냥은 시작되고, 상황은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닉은 상기한 시를 통하여 끔찍한 과거는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출전: 박설호, 작은 것이 위대하다. 독일 현대시, 울력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