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마우러 (1907 - 1971)는 루마니아의 지벤브뤼겐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다. 그의 가족이 독일로 이주한 시기는 1926년이었다. 말하자면 루마니아는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마우러는 1932년까지 베를린 그리고 라이프치히에서 예술사, 문학 그리고 철학을 공부하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 군인으로 참전해야 했다. 1955년에 라이프치히에 있는 요하네스 베혀 문학 연구소는 그를 강사로 초빙하다. 그곳에서 마우러는 교수로 일하면서, 구동독의 이른바 “작센 시학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게오르크 마우러 (1907 - 1971)는 요하네스 R. 베허 연구소에서 강의했다. 작가를 꿈꾸는 젊은 문인들이 그의 강의를 수강했다. 가령 시인 자라 키르쉬, 폴커 브라운 그리고 카를 미켈 등은 그의 강의를 수강한 제자라고 할 수 있다. 게오르크 마우러는 탁월한 언변으로 수강생들을 매료시켰으며, 그의 사자후의 음성은 그가 죽은 뒤에도 공공연하게 회자되었다.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 군대
게오르크 마우러
아, 몽세니 협곡 통로 높은 곳에서
놀라운 굉음 나팔을 부는 아프리카
코끼리의 끔찍한 신호 소리들,
암석이 무너져, 잿빛 심연 아래로 나락할까봐,
육중한 발로 쉴 사이 없이
두려운 호흡으로 입김을 내쉬고,
앞서 나아가는 게 자랑스러워, 외치는 수많은 군인들을
더 이상 다시 보지 못했다 - 안장 덮개가
스페인 광산의 금으로 풍요롭게 치장된 채
노예 거주 지역의 낙엽송의 파괴된 가지에
단단히 매달린 동안에 - 한니발의 자주 빛 표시!
아프리카의 검은 말들, 다리를 박차면서,
리비아인이 오한에 떨면서 당기는 고삐에 거역하며,
축 늘어진 미끄러운 곳을 응시한다. 힘줄 보이는 그의 발가락은
따뜻한 사막의 모래에 자국 남기는 데 익숙할 뿐,
검게 부풀어 올라, 연고 발라도 더 이상 치유될 수 없다.
그렇지만 갑자기 눈에 띄는 이탈리아의 청명한 평원은
마치 눈을 마구 헤집다가 깨어진 코끼리 이빨과 같은
얼음 노려보는 뾰족 바위에 대한 시선을 앗아간다.
카르타고 상인들은 노예들과 낙타들의 등짐으로
운반해 온 스페인산 포도주 향연을 개최하며
그들 군대가 승리를 구가하길 축하한다. - 또한 그들은 웃는다,
힘든 산길을 유일하게 관통한 코끼리 한 마리가
코를 높이 치켜들고 나팔 소리를 내면, 로마 군인들은
경악에 사로잡히리라고 생각하면서 - 카르타고의 단단한 성벽에서
웃음소리가 퍼져나간다 - 자정에 이르기까지,
그때, 동트는 아침 무렵에 어느 선원은 바다로부터 카르타고의
어느 밋밋한 언덕이 온통 고동색 폐허로 뒤덮이는 것을 보았다.
Hannibals Zug über die Alpen von Georg Maurer: Ach, die furchbaren Signale/ trompetender afrikanischer Elefanten/ hoch am Hange des Mont Cenis,/ die über das Eis mit dem stumpfen Fuß/ hingleiten ohne Halt im Dampf des ängstlichen Atems,/ wie die Felsen stürzen, grau in den Abgrund,/ prallend gegen Vorsprünge, schreiende Massen,/ nimmer wieder gesehen - während die Schabracken,/ reich durchwirkt mit dem Gold aus spanischen Bergwerken,/ den sklavenbewohnten, am geborstenen Ast einer Lärche/ hängengeblieben - die purpurnen Zeichen Hannibals!/ Die schwarzen Rosse Afrikas, spreizend die Beine,/ starren der niederhängenden Glätte entgegen am zerrenden Zügel,/ den der Libyer frierend faßt. Seine sehnigen Zehen,/ gewohnt, den heißen Wüstensand zu durchspuren,/ schwarz geschwollen nun, sind nicht mehr mit Salben zu heilen./ Doch den Blick, der die eisstarrenden Zacken noch spiegelt/ wie zerbrochne Elefantenzähne, die den Schnee durchbohren,/ reißt die Ebene plötzlich in italische heitre Gefilde./ Und die Händler in Karthago beim Bankett mit spanischen Weinen,/ die die Sklavenrücken und Höcker der Kamele brachten,/ feiern Sieg um Sieg ihres Heers - und lachen, wenn sie bedenken,/ wie der einzige Elefant, der die Pässe lebend querte,/ mit der hochgehobnen geschwungnen Nasentrompete/ Schrecken einjagte den Römern - und an den festen Mauern Karthagos/ scholl das Gelächter wider - bis die Nacht kam,/ da vom Meer aus ein Schiffer gegen den dämmernden Morgen/ einen kahlen bräunlichen Hügel sah bedeckt mit den Ruinen Karthagos.
(시어 설명 및 힌트)
몽세니: 프랑스의 아르크 (Arc)와 도라 리파리아 (Dora Riparia) 계곡 사이의 협곡 통로를 가리킨다. 현재 프랑스령으로 높이는 2083 미터에 이른다.
카르타고의 한니발: 기원전 219년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이베리아 반도의 도시 자군드를 탈환하였다. 당시에 로마는 마케도니아 지역 사람들과 교전을 치르려고 하였으므로, 그 지역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 기원전 219년 겨울 한니발은 12만의 보명, 만 6000명의 기병 그리고 58마리의 코끼리를 이끌고 내륙을 통해 로마를 침공하려고 시도한다. 왜냐하면 당시에 로마군은 바다를 지키고, 주로 남 프랑스의 해변 지역의 도로만을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카르타고 병사들은 이전에 폭풍과 눈보라를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다. 비록 그들이 15일 동안의 사투 끝에 험준한 알프스를 넘는 데 성공했으나, 추위와 굶주림에 오랫동안 시달려야 했다. 결국 보병 가운데 10명, 기병 가운데 만 명이 전사하고 만다. 코끼리들도 몇 마리 남지 않고 다 죽어버린다. 그리하여 포에니 전쟁은 카르타고의 패배로 끝나고 만다. 로마의 장수 파비우스 막시무스 (Fabius Maximus)는 한니발과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전투를 무조건 연기하다가 승리한다. (Conrady 91: 627).
(질문)
1. 내용을 고려하여 이 시를 두 개의 단락으로 나눈다면, 어디서 끊어질까요?
2. 6행은 “두려운 호흡”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암시되는 내용은?
3. 13행에서 “리비아인”은 누구를 가리키는가요?
4. 시인은 과거 역사적 사실을 생생한 언어로써 재현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까닭에 한니발을 문학적 소재로 삼았을까요?

(해설)
우국충정만을 생각하는 자는 전략가로서 성공을 거두지 못합니다. 정확한 정보를 외면하고, 빈틈없는 사전 답사를 거치지 않는 자는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항이 마우러의 시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전언일 것입니다. 시는 내용상 두 단락으로 나누어집니다. 1행부터 19행까지의 단락은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의 군대를 묘사하며, 20행부터 끝까지의 단락은 카르타고 상인들의 어리석은 향연과 카르타고의 패망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묘사는 생동감이 넘치고, 객관적 시각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유형의 주관성도 개입되지 않습니다. 다만 몇몇 표현 속에 시인의 암시가 은밀히 용해되어 있을 뿐입니다. 가령 “두려운 호흡”이라는 시어는 조만간 들이닥칠 죽음과 이로 인한 카르타고의 패배 가능성을 유추하게 해줍니다. 한니발에 대한 묘사 역시 한편으로는 모범적 영웅의 면모를 느끼게 해주지만 (9행 - 11행), 다른 한편으로는 독자에게 묘한 불안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예컨대 리비아인, 한니발의 발가락은 “따뜻한 사막의 모래에 자국” 남길 정도로 강인하지만, 추위에는 속수무책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한니발 군대가 패배한 까닭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역사가들은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로 한니발은 험준한 알프스의 기후를 사전에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을 사전에 알았더라면, 그는 군대를 이끌고 무모하게 알프스를 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로 카르타고로부터 보급로가 차단되었습니다. 한니발은 다음의 사실을 외면했습니다. 즉 카르타고와 로마는 전쟁을 치르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단순한 사실 말입니다. 셋째로 켈트족 (프랑스인) 가운데 믿을만한 동맹군이 없었습니다. 예컨대 징기스칸이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에서 언제나 승리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해당 지역의 사람들을 군인으로 차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니발은 켈트 족 가운데에서 어느 누구와도 동맹을 맺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이유 가운데에서 게오르크 마우러가 주목하는 부분은 첫 번째 사항입니다. 만약 한니발이 험준한 알프스의 겨울을 사전에 알았더라면, 무모하게 진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니발은 용맹과 의협심 그리고 잔꾀 때문에 패배를 맛보고 말았습니다. 한니발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즉 로마군은 자신의 군대가 알프스를 넘어서 행군하는 줄 모르리라고 말입니다. 한니발의 병사와 코끼리들은 로마군과 전투다운 전투 한 번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참변을 당했습니다.
마우러가 상기한 시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요? 즉 인간의 오류는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일까요? 19세기 초에 나폴레옹 군대가 러시아로 행군할 때, 20세기 독일 군인들이 소련 지역으로 행군할 때, 그들의 우두머리는 미련하게도 다음의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즉 러시아 (소련)의 동토가 어떠한 추위와 굶주림을 가져다주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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