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판에 바람을 풀어주십시오.
마지막 과일이 익도록 명령하십시오,
남쪽의 더욱 따뜻한 태양을 이틀 동안 선사하시며,
완전히 영글도록 재촉하시며, 무거운
포도 속에 마지막 달콤함을 지니게 하십시오.
이제 집 없는 자는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
고독하게 남은 자는 오래 머물 것입니다.
그리고 깨어나, 독서하고 긴 편지를 쓰며,
낙엽이 재촉하면 그는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불안한 마음으로 방황할 테지요.
Herbsttag von Rainer Maria Rilke: Herr: es ist Zeit. Der Sommer war sehr groß./ Leg deinen Schatten auf die Sonnenuhren,/ und auf den Fluren laß die Winde los. // Befiehl den letzten Früchten voll zu sein;/ gieb ihnen noch zwei südlichere Tage,/ dränge sie zur Vollendung hin und jage/ die letzte Süße in den schweren Wein. // 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 Wer jetzt allein ist, wird es lange bleiben./ wird wachen, lesen, lange Briefe schreiben/ und wird in den Alleen hin und her/ unruhig wandern, wenn die Blätter treiben.
(질문)
1. 젊은 릴케는 파리로 떠나기 전까지 범신론자로 자처하며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주”는 누구일까요?
2. 1행에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에 담긴 시인의 비굴함은 무엇일까요?
3. “이제 집 없는 자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는 표현 속에 담긴 시인의 현실적 상황은?
(해설)
여기서 필자는 감상주의의 분위기와는 전려 다른 각도에서 시를 논하려고 합니다. 설문 조사에 의하면 많은 남한 작가들이 감명 깊게 읽은 명작은 릴케의 『말테의 수기』라고 합니다. 유럽의 세기말의 감상적 분위기가 일제 식민지 치하의 작가들에게 적극적으로 수용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문학이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릴케는 예술적 보헤미안의 전형이었습니다.
첫 행에서 “주”는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야훼신인가요, 아니면 범신론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한 조물주인가요?
일단 릴케가 처했던 정황을 언급하도록 합시다. 1901년에 릴케는 경제적으로 엄청난 궁핍함에 시달렸습니다. 생활비는 동이 나고, 어디서도 원고료를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때 그는 파리의 조각가 로댕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로댕은 자신의 전기를 집필해줄 작가를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릴케는 이듬해 파리로 달려가, 일거리를 맡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범신론자인 릴케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로댕도 처음에는 릴케에게 거리감을 두었습니다. 두 사람은 체질적으로도 너무 달랐습니다. 릴케가 “연약한 베짱이”라면, 로댕은 “일하는 인고(忍苦)의 개미”였으니까요.
파리로 떠나기 전에 릴케는 전략적으로 “하늘에 계신 주님”을 언급합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이 대목은 마치 경제적으로 종속된 직원이 돈 많은 주인에게 던지는 아부 내지 찬양의 말처럼 들립니다. 특히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전에는 밥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오래 전부터 유대교와 기독교의 계율로 작용하지 않았습니까? 이를 고려할 때 릴케에게 “신”은 날씨 및 기상 상태를 관장하는 성 베드로와 같은 성자일지 모릅니다.
“이제 집 없는 자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여기서 시인은 현재 실업자로서의 삶을 성찰하며, 미래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릴케는 생활비를 절약해야 하고, 자신의 후원자를 찾기 위해서 “긴 편지를” 써야 하며, 작품을 집필해야 했던 것입니다. 행여나 파리에서 채용 거절의 편지가 도착할까 노심초사하면서,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불안한 마음으로 방황”한 자는 다름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릴케는 1902년 파리에 도착하여 로댕에게 편지를 썼다. "제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단순히 연구를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신은 "일하는 것"이라고 답하셨습니다. 저는 그 답을 깊이 이해합니다. 일하는 것은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저는 오직 그것만을 원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지난 몇 년 동안 제 일은 마치 엄숙한 축제처럼, 드문 영감이 떠오를 때만 행해지는 의식처럼 되어버렸습니다.
(...)
하지만 이제는 부지런히 일하면 가난의 불안조차도 떨쳐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어린 아이를 두고 떠나야 하지만, 제가 당신의 말씀인 "노력과 인내"를 적어준 후로는 그 필요성을 훨씬 더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내가 당신 곁에서, 당신의 훌륭한 일 곁에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당신 곁에 있으면 누구도 자신을 잃을 수 없을 겁니다.
파리에서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필요한 돈은 많지 않습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이곳에 머물겠습니다. 그러면 제게 큰 행복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당신께서 당신의 일과 말씀, 그리고 당신이 다스리시는 모든 영원한 힘으로 저를 도와주셨던 것처럼 제 아내를 도와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어제 당신의 정원의 고요함 속에서 저는 진정한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제 거대한 도시의 소음은 더욱 멀어져 가고, 당신의 말씀이 마치 조각상처럼 제 마음속에 깊은 고요함이 감돌고 있습니다."

릴케와 로댕의 모습. 그들은 위대한 예술가들이었지만, 기질상으로는 극과극이었다. 로댕이 인고의 개미라면, 릴케는 게으른 베짱이였다. 릴케는 로댕의 도움으로 "신시집"을 간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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