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쳐드 로티 (R. Rorty, 1931 - 2007)의 "철학 그리고 자연의 거울 (Philosophy and thr mirror of nature)"은 1979년 프린세톤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로티는 실증주의 철학의 포스트 모던한 방향을 주도하는 탁월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조직적 분석 철학의 대안으로서 그는 어떤 역동적, 역사적, 대화 중심적 입장을 개진한다. 로티의 이러한 입장은 철학의 인식 이론적 원칙보다는 오히려 해석학적 원칙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철학의 영역에서는 칸트 이후로 다음과 같은 가설이 인정되어 왔다. 즉 “철학은 지식의 토대를 문제 삼고, 이로써 모든 학문의 출발점 및 문화적 성과의 효용성에 대해 하나의 결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학문의 기본적 훈련과 같다.” 라는 가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로티는 이러한 가설을 부정하려 한다. 이러한 가설은 본질적으로 “육체/ 세계와 정신”이라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의존한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데카르트에 의하면 현실을 가급적이면 정밀하게 모사하며, 그것을 마치 어떤 거울속처럼 명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사람들은 객체 그리고 인간의 정신 사이에는 (어떤 특별한 관계로 바탕을 두고 있는) 불가피한 지식이 존재한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로티는 이것들을 모두 부정한다. 로티에 의하면 우리는 객체와 정신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어온 지식에 더 이상 의존할 수 없다고 한다. 로티는 이러한 자신의 입장을 위해 셀라스의 심리학적 유명론 (唯名論) 그리고 주어진 것에 대한 신화 비판을 끌어들인다. 그러니까 인간 정신의 존재는 로티에 의하면 경험적으로 주어진 사물의 존재와 일치하지 않으며, 아직 인식되지 않은 (혹은 영원히 인식될 수 없는) 사물의 본질 마저 추론해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로티는 [분석 철학자, 콰인 (W. Quine)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특권화된 재현 작업을 거부한다.
로티는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듀이와 함께 전통적 인식론의 질문과 대답을 비현실적이라고 규정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정신 (혹은 언어) 그리고 세상 사이의 일치라는 틀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학문은 로티의 경우 결코 필연적으로 존재론적인 토대를 지니지 않으며, 오히려 어떤 사회적 인습의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콰인과 마찬가지로 로티는 언어와 사실 사이의 차이를 거부한다. 그는 아울러 정신 과학의 해방을 주장한다. 정신과학이란 자연 과학과 마찬가지로 고유의 훈련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로티는 현대의 언어 철학 혹은 경험 심리학이 전통적 인식론의 연구 방향을 절대로 계승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현대 언어 철학 혹은 경험 심리학이 거울 및 모사 등의 은유에 조건화된 가설에 근거하고 있으며, 지식의 어떤 이론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로티는 인식론적 질문을 해석학적 질문으로 대치시키려고 한다. 이를 통해서 그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거부한다. 즉 “어떤 진정한 토론의 규칙 속에 담긴 문화적 현상 형태들은 파악될 수 있다.” 라는 그러한 견해 말이다. 오히려 로티는 어떤 역사적이고 실증적인 견해에서 출발한다. 즉 토론에 참가하는 자들은 주어진 권위에 반대하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토론의 많은 부분들을 허용하며, 지속적인 토론을 통해서 문화의 새로운 담지자가 된다는 견해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역동적인 대화는 정태적인 구도를 다른 것으로 대치시키게 한다. 지식 대신에 중시되는 것은 로티에 의하면 지식에 조건화된 인간의 교양이다. 다양한 이질성과 참신성의 사고는 어떤 규범적으로 정착된 것을 체계적으로 완성시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을 수행한다. 진리에 대한 지속적인 추구는 그것을 이른바 소유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니까 말이다.
로티의 책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오늘날 포스트 모더니즘의 다원주의적 사고의 이정표로 간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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