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단상

(단상. 591) '유토피아의 정신' 번역을 착수하다

필자 (匹子) 2026. 2. 13. 09:39

열린책들 출판사는 2004년 "희망의 원리" 5권을 간행하였다. 지금도 역자로서 홍지웅 사장님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그분이 아니었더라면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 한국어 판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나중에 블로흐의 책 3권이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계속 간행되었다.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 ("기독교 속의 무신론Atheismus im Christentum"의 가제이다.) 그리고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이 그것들이다. 이제는 모두 절판 내지는 품절 상태에 처해 있다. "희망의 원리"는 중고 서점에서 50만원에 거래되고 있으며,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의 중고 서적의 가격은 권당 7만 원이라고 한다.

 

 

상기한 8권의 책들이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재판될 간행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왜냐면 그곳의 편집자는 최근에 아직 번역되지 않은 블로흐의 번역서 그리고 필자의 블로흐 연구서 출판을 정중히 거절했기 때문이다. 여러 학술 연구 재단을 통해 블로흐의 서적을 간행하려 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실망스럽지만, 거절 당했다고 해서 연구를 포기할 필자가 아니다. 

 

필자는 학교를 그만 둔 다음에 주로 블로흐의 연구 그리고 번역에 몰두하였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사항 때문이다. 블로흐 연구는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안겨준다. 둘째로 블로흐 문헌은 지금까지 "필요한 결본dringendes Desiderat"으로 남아 있다. 독일어 문체가 매우 난해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연구하려는 분이 드물다. 블로흐 연구자 역시 울산대 김진 교수 그리고 경북대 조영준 박사 등 손꼽을 정도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하루 종일 번역에 몰두해도 겨우 한 페이지 번역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공이 쌓였는지는 몰라도, 요즈음에는 한 페이지를 번역하는 데 3 시간이 걸린다. 마치 소 걸음으로 만리를 걸어가는 느낌이다. 이제 출간에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번역에만 몰두할 생각이다. 죽을 때까지 혼자서 블로흐 전집 20권을 완역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그래도 번역 작업은 많은 가르침을 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말년에 시작품 집필에 몰두하려고 했지만, 창작에 대한 미련을 접어야 할 것 같다. 두 권의 시집을 내었는대, 별로 반응이 없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데, 구차하게 누구에게 나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내가 아니더라도 훌륭한 작품을 쓰는 시인들은 즐비하다. 그렇지만 블로흐 번역은 나 외에는 지금까지 누구에 의해서도 수행되지 못했다. 오직 나만이 블로흐 문헌을 번역할 수 있다니,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되는 것을 느낀다. 나에게는 로댕의 클로델, 브레히트의 슈테핀과 같은 조력자가 없으니까.

 

나 혼자만의 각개 전투 - 최근에 "유토피아의 정신 Geist der Utopie"의 번역을 착수하였다. "음악의 철학" 부분은 잘 모르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많은 것을 배울 것 같다. 지금까지 필자는 블로흐의 "흔적들 Spuren" (194페이지), "물질 이론의 문제점, 그 역사와 실체" (545 페이지)를 완역하였다. "이 시대의 유산", "튀빙겐 철학 강의", "라이프치히 철학 강의" 등의 책은 부분적으로 번역해 놓았다.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Show must go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