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박설호: (1) 횔덜린의 '히페리온' 강의

필자 (匹子) 2026. 1. 2. 10:32

1강

"자기 집 속의 이방인 Fremdling im eigenen Haus." 이는 시인의 숙명이다. 나는 이 땅의 주인이어야 할 텐데, 그냥 불청객으로 살고 있다. 세상은 "벽이 없는 광활한 감옥"과 같디. 흔히 사람들은 나의 직업을 시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인"은 직업이 아니다. 돈과 무관한 일이 어떻게 직업이 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 목숨 걸고 작품을 집필해 왔건만,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가난, 냉대와 외면 그리고 고독밖에 없다. 

2강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둥"이다. 기둥은 사회적 토대를 상징한다. 디오티마의 두 손은 묶여 있고, 횔덜린은 팔 하나가 묶여 있다. 한 손을 치켜들지만, 잡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작가는 외부의 지원 없이는 한 달도 버티지 못한다. 괴테와 실러가 경제적 걱정 없이 집필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바이마르 공국의 물질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3강

 

1790년 횔덜린은 튀빙겐 신학교 학생이었다. 그는 헤겔과 셸링과 함께 자유의 나무를 심었다. 세 학생은 프랑스 혁명 정신이 독일 전역에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행동했다. 횔덜린은 신학교 학생이었으나, 문학에 목숨을 걸었다. 소설 "히페리온"은 1782년에 착수되어, 여러 과정을 거쳤다. 판본만 하더라도 여러 편이나 된다. 작품의 완성에 7년이 걸렸다. 쓰잘데기 없는 작품을 양산하는 것보다는, 단 한편이라 하더라도 명작을 탄생시키는 게 값진 법이다.   

4강

횔덜린은 고대 그리스 문학 그리고 셰익스피어, 알피에리의 문학을 정독했다. 작품의 발표를 위해서 유명한 문인을 찾아야 했다. 괴테는 봉두난발의 젊은 작가를 경멸하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철없는 잔챙이, 아니 애송이로 비쳤던 것이다. 괴테는 그에게 "단시"만을 집필하라고 권했다. 괴테는 심지어 파우스트 제2부를 집필하겠다고 찾아온 무명 작가를 집밖으로 쫓아내기까지 했다. 각설, 횔덜린은 당시에 주름잡던 대가에게는 무관심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나중에 괴테는 그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홀터라인 Holterlein"이라고 명명하기까지 했다. 

5강

 

횔덜린은 다시 프리드리히 실러를 찾아가서 원고를 내밀었다. 실러는 횔덜린의 작품을 꼼꼼하게 정독했다. 이때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고대 그리스에 관한 횔덜린의 몇몇 작품은 자신이 쓴 시 "그리스"를 능가할 정도로 탁월한 게 아닌가? 이때 실러의 마음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탄 그리고 질투심이 끓어오른다. 경탄과 질투심은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 프리드리히 실러의 공명정대한 마음을 처절히 갉아먹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실러는 무명 작가 횔덜린을 철저하게 무시하기로 작심한다.    

6강

 

시인은 평생 수백 편의 작품을 집필하지만, 명작은 손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이것이야 말로 예술가가 감당해야 하는 슬픈 비극적 진실이다. 시인의 숙명은 마치 뜨거운 가마 앞에서 수많은 옹기들을 깨뜨리는 도공(陶工)의 행동과 같다. 대중 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가수 김상국은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나비'를 불러서 10년 먹고 살고, '쾌지나 칭칭 나네'를 불러 10년을 먹고 살고, '멋쟁이 아가씨'를 불러 10년 먹고 살았지요." 그렇다면 김상국이 부른 수많은 "가곡, 재즈 민요 그리고 동요들"이 잊혀져야 하는가?  

7강

 

횔덜린의 시 "삶의 절반"은 두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단시다. 그 하나는 찬란한 여름의 풍경을 다루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겨울의 혹독하게 장면을 서술하고 있다. 이는 세 가지 사항을 상징한다. (1) 횔덜린의 삶은 1805년을 기점으로 찬란한 이상 추구의 시기와 정신 착란의 영어(囹圄)의 시기로 나누어진다. (2) 시는 유럽 정신사의 롤러코스트를 암시하고 있다. 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낙관주의는 1805년 이후 앙시엥레짐의 복고주의 치하에서 문화적 비관주의로 돌변한다. (3) 고전주의 작가 괴테 실러의 평온한 삶은 가난으로 인한 자살하거나, 투옥되거나 정신 이상자로 살아간 낭만주의 작가의 삶과 대비되고 있다.  

8강

 

사랑과 성은 인간 삶의 내밀한 영역이지만, 문학의 영역에서는 가장 놀라운 정치적 함의로 작용한다. 사생활과 성 윤리는 정치 권력의 수단으로 교묘하게 활용되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래서 성은 미셸 푸코도 말한 바 있듯이 그 자체 정치다. 중세의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의 가정교사로 일하다가, 그미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엘로이즈 역시 올바른 생각과 거짓 없는 그의 태도에 마음을 열게 된다. 두 사람의 강렬한 사랑은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의 삼촌에 의해 구금되어 "거세Kastration"당하는 치명상을 입는다.

9강

소포클레스의 문장은 소설 '히페리온'의 모토로 사용되고 있다.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이 세상은 우리에게는 어쩌면 지옥인지 모른다.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부자유.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팔과 다리를 놀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마에 땀을 흘리지 않으면, 빵을 먹어서는 아니 된다."는 구절을 생각해 보라, 가난과 궁핍함, 경쟁 그리고 이로 인한 미움 등은 이 세상이라는 복마전(伏魔殿)에서 우리가 감내해야 할 과정인지 모른다.  

 

10강

 

 

"히페리온"은 서간체 소설이다. 그리스인 히페리온은 유럽으로 건너와서 살아간다. 그는 독일인 친구 벨라르민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소설은 주로 이러한 편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작품은 히페리온의 내적인 성찰로 이루어져 있다. 히페리온의 주제는 국가, 자유 그리고 사랑에 관한 물음과 관련된다. 한 인간이 사랑과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전제 조건으로서의 체제의 바로세우는 문제를 구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