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의 위대한 계몽주의 작가, 곳홀트 에브라임 레싱의 "젊은 학자"가 정민영 교수님의 번역으로 간행되었습니다. 훌륭한 작품의 생동감 넘치는 번역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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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싱의 노여움이 희비극으로 표출되다: 「젊은 학자Der junge Gelehrte」는 독일의 계몽주의 작가, 곳홀트 에브라임 레싱(1729 - 1781의 초기 작품입니다. 레싱은 마이센에 있는 성 아프라에 위치한 중등과정의 학교에 다니면서, 이 작품을 집필하였습니다. 작품은 1747년에 대폭 수정된 다음에 이듬해 1748년 1월에 라이프치히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때 레싱의 나이는 19세였습니다. 불과 19세의 나이에도 레싱은 당시 프로이센의 학문적으로 경직된 분위기 그리고 고루한 학자들의 행동 양상을 예리하게 꿰뚫고 있었습니다.
당시 독일은 많은 공국으로 사분오열되어 있었으며, 경제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낙후해 있었습니다. 라틴어만이 학문적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레싱은 특히 거드름을 피우는 학자들의 위선, 고향의 문화를 경멸하며, 외국 문화만을 선호하는 학자들을 비판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의 계몽을 방해하는 것은 일반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아니라, 오히려 학자들의 겉 다르고 속 다른 태도 그리고 (마치 군들링과 같은) 간신 모리배의 권력 지향적 아첨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레싱은 많은 학자들의 이러한 자세를 “거짓된 계몽Aufkläricht”이라고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2. 경솔하고 허영심으로 가득 찬 유아독존의 인간: 막이 오르면, 다미스라는 이름을 지닌 젊은 학자가 자신의 서재에 머물고 있습니다. 비록 나이는 스무 살이지만, 다미스는 법학부, 의학의 그리고 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바 있습니다. 그는 모국어를 제외하먄 총 6개국어에 능통합니다. 그의 관심사는 문헌학과 역사학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현재에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주석을 다는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학문 행위는 편협하고 무가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예컨대 클레오파트라가 독사에게 물려 죽었는데, 다미스는 독사에게 물린 곳이 젖가슴이 아니라, 팔이라고 항변합니다. 그밖에 다미스는 18세기의 수많은 문헌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그 내용은 학문적 주제로 삼기에는 무가치하고 하찮은 것입니다. 최근에 다미스는 단자론에 관한 논문을 집필하여, 베를린 학문 아카데미에 보냈습니다. 내심 자신의 연구 논문이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를 애타게 갈망합니다.
3. 인성을 파악하려면, 당사자가 자신의 부모에게 어떻게 처신하는가를 바라보라. 그런데 다미스의 인성에는 하자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는 학식이 풍부하지만, 모국어인 독일어를 매우 하찮은 것으로 취급합니다. 그의 발언에서 우리는 라틴어가 섞인 문장을 접할 수 있으며, 주인공이 교만하고 허영심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인성에 있어서 하자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가 중시하는 것은 오로지 학문적 명성입니다. 이를테면 다미스는 부모가 부당한 이유로 매질할 때, 자식이 이에 대해 항의하면서 부모에게 얼마든지 구타를 가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동양에서 부모를 구타하는 것은 패륜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인공이 학문의 세계에서는 박학다식하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처신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독일 문화를 가볍게 여기고 라틴어 문화권에 해당하는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에스파냐를 동경하는 태도 역시 문제로 지적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다미스가 학문 외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로써 그의 태도에서 드러나는 것은 “현실과의 괴리감”입니다. (윤도중: 젊은 학자 연구, in: 괴테 연구, 14권 2002, 112쪽)
4. 돈과 권력으로 맺어지는 결혼은 불순하고 추악하다: 다미스의 아버지는 크리잔더라는 이름을 지닌 상인입니다. 그는 악덕 상인은 아니지만, 수지타산에 빠르며, 이득을 추구하는 인물입니다. 크리잔더는 오래전에 사망한 친구의 딸, 율리안네를 데리고 와서, 키웠습니다. 말하자면 마지못해 율리안네의 법적 후견인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율리안네가 선조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크리잔더는 그미와 결혼하라고 아들에게 종용합니다. 그러나 다미스는 평소에 그미에게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학문 외적인 모든 일에 관해서 피곤하게 생각하는 게 다미스의 태도입니다. 그래도 크리잔더는 어떻게 해서든 두 남녀에게 부부의 인연을 맺어주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다미스의 하인, 안톤을 만나서, 결혼이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합니다.
5. 무엇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하는가? 율리안네는 한 집에서 남매처럼 함께 생활해온 다미스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다미스는 허영심으로 가득 차 있고, 인간미라고는 하나도 없으며, 평소에 심지어 여성을 경멸하는 깍두기이기 때문입니다. 율리안네는 그의 옛친구, 팔러를 인간적으로 따뜻한 사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팔러는 학문의 길을 포기했지만, 정직하게 살아가는 공명정대한 마음씨를 지닌 젊은이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격지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며, 조심스럽게 행동합니다.
어느 날 크리잔더는 율리안네와 독대하면서, 다미스와 결혼하라고 종용합니다. 그러자 윤리안네는 몹시 괴로워합니다. 마음속으로는 팔러를 자신의 낭군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키워준 양아버지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율리안네는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혼인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미는 자신의 하녀, 리제테에게 팔러와의 선약을 파기하라고 넌저시 언질을 줍니다.
6. 선한 의도에 의한 거짓말은 때로는 사악함을 물리치기도 한다: 리제테는 –레싱의 연극작품, 「민나 폰 바른헬름」의 여주인공처럼- 꾀주머니 여성입니다. 그미는 귀족이 아니라, 시민의 신분에 불과하지만, 놀라운 융통성과 기지를 겸비하고 있습니다. 리제테는 율리안네가 처한 상황을 간파하여 한 가지 계략을 꾸밉니다. 그것은 자신의 친구 안톤으로 하여금 가짜 편지를 작성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편지에는 율리안네가 부모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접하게 된 크리잔더는 놀라움에 휩싸이면서, 아들의 결혼을 더 이상 추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율리안네는 무척 순진한 처녀였습니다, 자신의 양아버지에게 거짓을 고한다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게 그미의 항변이었습니다. 편지의 내용이 거짓임을 알게 된 크리잔더는 더욱더 맹렬하게 아들의 결혼을 성사시키려고 합니다. 리제테는 이른바 율리안네의 “결격 사유”를 하나하나씩 지적하면서, 혼인을 방해하려고 끝까지 노력합니다.
7. 해피엔딩, 그것은 우리의 정서를 순화하게 한다: 팔러는 크리잔더가 어째서 다미스와의 혼인을 성사시키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속속들이 말해줍니다. 그래도 율리안네는 양아버지를 배반할 수 없다고 항변합니다. 그래서 팔러는 어디론가 함께 떠나자고 간곡하게 청원하지만, 율리안네는 이마저 거절합니다. 결국 팔러는 해결책을 마련합니다. 즉 율리안네의 유산 그리고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크리산더에게 주는 조건으로 꿈에 그리던 여인과 해로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미스는 어땋게 되었을까요? 어느날 다미스는 베를린으로부터 끔찍한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연구가 당선작으로 채택되지 않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자신의 논문이 학문 아카데미에 접수 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다미스는 베를린에 있는 어느 친구에게 논문의 접수를 부탁했는데, 그 친구는 의도적으로 이를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다미스는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지 못하는 동향인에게 실망감을 느끼면서 나라를 떠납니다.
8. 제목 “젊은 학자”에는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다. 레싱은 주인공 다미스를 조롱하려고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작가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아폴로니우스의 가상적인 제자인 다미스를 주인공의 이름으로 채택하였습니다. 다미스라는 이름은 아폴로니우스와 공저자로 활약했지만, 실제로는 가상적인 인물로 드러나고 맙니다. 레싱은 주인공의 허구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다미스”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제목인 젊은 학자는 나이 어린 학자가 아니라, “애송이 학자”를 가리킵니다. (윤도중: 118). 왜냐면 다미스는 진정으로 학문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학문적 명성만을 추구하는 속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학문 외적인 사항에 관해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에 비하면 그의 옛친구 팔러는 공명정대한 인간입니다. “팔러”라는 이름은 “유능한 자valerius”에서 유래합니다. 그는 학문적 문헌 앞에서 겸손함을 드러냅니다. 지식보다는 지혜를 중시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을 내세우는 점에서 “현인 나탄Nathan der Weise”을 닮았습니다. 레싱은 다른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곤 했습니다. 즉 학자에게 필요한 것은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이지, 진리의 소유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팔러는 “진리를 소유한다는 생각은 망상이다.”라고 생각합니다.
9. 레싱이 참고한 작품 그리고 문헌들: 작품은 작센 지역의 풍자와 조소를 담은 유형적 희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희극은 사악하고 부도덕한 인간의 태도를 비아냥거리는 데 적합합니다. 세상과 등진 학자들에 관한 극작품은 이전에도 간행된 바 있습니다. 우리는 가령 우리는 루드비 홀베르Ludvig Holberg의 「에라스뮈스 몬타누스」 (1744) 그리고 고트셰드의 아내, 루이제 코트세드의 「익살꾼Der Witzling」 (1745)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레싱은 이 작품을 집필하기 위해서 많은 작가의 작품을 참고하였습니다.
작품 「익살꾼」에는 문학과 예술의 기능에 관한 토론이 작품의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18세기 독일에는 여성이 작품을 발표한 경우가 매우 드물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작품은 익명으로 발표되었는데, 남녀의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가 빠져 있습니다. 루이제 고트셰트는 남편의 주장을 따라, 프랑스 의-고전주의의 문학적 철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미적인 향유를 부차적으로 여겼습니다. 레싱은 고트셰트의 형식적 교훈성을 하나의 경직된 예술론으로 평가했습니다. 독일의 연극은 레싱에 의하면 프랑스 의-고전주의가 중시한 철저한 규칙을 준수할 게 아니라, 영국의 셰익스피어 연극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상기한 사항은 레싱의 『함부르크 연극론』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10. 모든 비판은 희극적 풍자에서 시작된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항은 레싱이 맨 처음 희극을 집필했다가, 나중에 비극을 채택했다는 사실입니다. 레싱이 영향을 받은 작가들은 몰리에르, 겔레르트 그리고 슐레겔 형제의 삼촌이었던 작가, 요한 엘리아스 슐레겔 (Johann Elias Schlegel, 1719 – 1749)입니다. 특히 요한 슐레겔은 고대 신화를 바탕으로 놀라운 연극작품을 집필하였으며, 당대의 석학들과 문학과 예술에 관한 토론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특히 요한 엘리아스 슐레겔의 작품 「혐오주의자Misogyn」, 「유대인들Die Juden」 그리고 「자유로운 정신Der freie Geist」은 레싱에게 희극에 관한 놀라운 착상을 제공하였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문학적 풍미를 느끼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코메디”입니다. 그것은 즐거움 속의 사타이어를 활용하기 때문에 관객을 웃음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사실 메난드로스 이후로 이어진 소극은 영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유머 속의 날카로운 가시를 감지하게 합니다. 기실 소극은 특정인의 마음을 직접 아프게 하지 않으면서도 유머 속에 놀라운 비판과 풍자를 담을 수 있는 예술적 수단임에 틀림없습니다.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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