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잡글

서로박: 펄벅의 감동적인 충격

필자 (匹子) 2025. 12. 19. 09:04

1.

미국 작가, 펄 벅 (Pearl Buck, 1892 - 1973)은 오랫동안 중국에 머문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대지』를 집필하여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가입니다. 이 작품으로 1938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만 해도, 펄 벅은 한국과 한국인에 관해서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그미는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는데, 한반도의 분단 그리고 한국 문화에 대한 자신의 무관심을 무척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그미의 소설, 『살아 있는 갈대The Living Reed』에서는 한국이 “고결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펄 벅은 자신의 이름을 “박진주(朴真珠)”라고 명명하면서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펄”은 의미론적으로 진주를 가리키고, “벅”은 발음상 “박”으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P, 사실 필자는 펄 벅 문학의 전공자도 아니지만, 소설 『대지』를 세심하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수준 높은 작가라기보다는 이야기꾼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한국에 대한 펄 벅의 관심을 역으로 추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필자는 여기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펄 벅의 세 가지 충격을 서술하려 합니다.

 

2.

펄 벅이 한국에 도착했을 때, 가을의 시골 풍경을 접했습니다. 마을의 높은 감나무에는 몇 개의 감이 그냥 벌겋게 익은 채 매달려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전쟁을 겪으며, 먹을 음식이 없어서 궁핍하게 사는데도 감나무의 열매를 모조리 따먹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게 여겨졌습니다. 펄 벅은 그 이유를 한국인으로부터 전해 듣고 작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날짐승들이 굶주리지 않게 모든 감을 따지 않고 일부러 남겨둡니다. 이러한 풍습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펄 벅은 한국 사람들이 나무에 매달린 감을 “까치밥”이라고 명명한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자신이 배가 고프더라도 주위의 동식물의 음식까지 챙기는 한국인의 정(情)은 그미의 마음에 잔잔한 공감의 여운을 던졌습니다. 혹자는 까치밥 그게 무슨 중요한 의미를 담는가? 하고 항변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웃과 동식물이 같은 생명체로 공생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은 오래전부터 한반도에 전해 내려온 관습이었습니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종자 씨 만큼은 먹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3.

펄 벅이 한국인에게서 받은 두 번째 충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온종일 논에서 소와 함께 일하던 농부가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자신의 지게에다 쟁기와 나뭇가지를 채운 채 뒤뚱거리면서 걷고 있었고, 소의 등에는 아무것도 얹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미는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무거울 텐데, 어째서 소에게 짐을 떠맡기지 않는지요?” 이때 농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녀석도 오랜 시간 힘들게 일했으니, 귀갓길은 조금이라도 편하게 걸어야지요.” 가축을 마치 자신의 가족처럼 배려하는 농부의 마음은 미국에서 온 푸른 눈의 작가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국 농부가 고결한 까닭은 그들이 영리하고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농부는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지닌 소를 마치 자신의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동식물에 대한 사랑은 생명체에 대한 측은지심과 다르지 않습니다. 동식물이 힘든 정황에 처해 있을 때 이들을 도와주는 것은 무척 아름다운 행동입니다.

 

한국인들은 고조선 시대부터 주위의 다른 민족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역사적으로 타민족을 침범하여 재산을 갈취하고 여자를 겁탈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펄 벅은 오히려 중국과 일본이 한반도를 침범하여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됩니다. 이때 중국에 대한 그미의 사랑은 한국에 대한 사랑으로 서서히 바뀌게 됩니다.

 

4.

자신보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면서 그들을 도와주겠다는 생각 – 이것이 바로 공자가 생각한 참된 정신인 인(仁)이었습니다. 필자는 한국인의 특성을 세 가지로 요약하곤 합니다. 첫째는 자신을 낮추고 양보하는 자세이고, 둘째는 이웃을 배려하고 도우려는 자세이며, 셋째는 역경이 닥치더라도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마음속에 자리하는 은근과 끈기라는 미덕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인(仁)이라는 글자를 살펴보세요. 사람(人)은 높고 낮은 두 개의 사물 (二) 곁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두 가지 높고 낮음을 대하면서 억압과 명령이 아니라, 조언과 도움을 베푸는 존재이어야 합니다. 사실 중국 진한 시대의 삼강 사상은 군신, 부자 그리고 부부 사이의 종속 윤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원래 단군 사상에 의하면 충효열(忠孝烈)은 평등 윤리로 이루어진 계명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인(仁) 속에 담겨 있는 내밀한 의미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은 인간이 동등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이일적 묘합(二而一的 妙合)과 관련됩니다. 인간과 인간의 동등함은 신과 인간의 평등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인간이 신이요, 신이 인간이라는 단군 사상의 일원론적 의미가 나타납니다. (이을호: 한사상 총론, 한국학술정보 2015, 153쪽). 이와 관련하여 공자는 제자에게 인의 사상을 말할 때, 항상 동이족을 떠올리며 그들을 흠모하곤 하였습니다.

 

5.

마지막으로 펄 벅이 받은 세 번째 충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펄 벅은 한반도의 6.25 전쟁 그리고 분단을 매우 안타까워했습니다. 필자가 시작품 「앙리 뒤낭의 고백」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한반도의 분단은 세계사의 모든 일도양단의 이원론적 비극을 집결시킨 상태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마도 펄 벅은 세계사의 가장 끔찍한 비극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펄 벅은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케네디는 한국을 위한 군사적 비용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그 해결책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고, 대신에 일본이 한국을 다스리게 하는게 어떨지요?” 이때 펄 벅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때 그미는 다음과 같이 일갈했습니다. “힘 있는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것은 신식민지 정책입니다. 그것은 미국이 과거처럼 영국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것과 같은 논리지요.

 

6.

오늘날 세계는 한국과 한국인의 정서를 서서히 이해하고, 애호하는 것 같습니다. 김구 선생이 그토록 바랐던 군사적 강대국이 아니라, 한국 문화가 드디어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문화는 한국인의 마음가짐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자아를 낮추는 겸양의 태도이고, 둘째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생명체와 이웃을 사랑하고 도와주려는 심성이며, 셋째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끝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첫 번째는 더 큰 나, 즉 대아(大我)를 중시하려고 애쓰는 마음으로, 둘째는 협동성과 배려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셋째는 끈덕지게 노력하려고 하는 성실성으로 발전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예만 첨가하려고 합니다.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의심케 하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고려장”이라는 풍습입니다. 펄 벅 역시 고결한 한국 사람들이 고려장을 치른다는 소문을 접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려장은 일본 총독이 한민족 말살을 위해서 일부러 퍼뜨린 가짜뉴스로 밝혀집니다. 고려장은 찢어지게 가난한 일본의 시골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난 풍습이었고, 일본인들 역시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 폐지했다고 전합니다. 한국의 속담에는 “부모는 자식의 안녕을 위해서는 호랑이굴로 들어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라는 게 있습니다. 한인들은 자식을 이렇게 지극 정성으로 키우는데, 어찌 자식들이 부모를 산으로 내다 버릴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