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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호: (2) B. 트라벤, 그는 누구인가?

필자 (匹子) 2025. 11. 2. 09:10

(계속 이어집니다.)

 

12.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정말 누구십니까? Who in hell are you?” - “당신에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내가 누군지 나도 모릅니다. 내가 안다면, 아마도 더 이상 소설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I wish I could tell you that. Fact is I myself don‘t know it. If I knew it perhaps I could write books no more.

 

13.

트라벤의 고립주의는 그가 처한 사회적 정황에서 비롯한 것이다:나는 어떠한 정당에도 속할 수 없다. 왜냐면 내가 당에 예속된다는 것은 내 개인적 자유를 제한시키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 가장 고결하고 순수하며 가장 진정한 인간애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나는 자유롭기를 원한다! 나는 기쁠 수 있기를 원한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에 대해 기뻐하고 싶다! 나는 축복 받은 인간이고 싶다. 그렇지만 내 주위에 있는 모든 다른 인간들이 자유로워야만 나의 자유는 보장받을 수 있다.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할 경우에만 나는 즐거울 수 있다. 내가 보고 마주치는 모든 다른 사람들이 축복 받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경우에만 나는 축복 받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나처럼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경우에 한해서만 나는 즐거움만으로 나의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다.” -

 

이러한 표현은 무정부주의자,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의 "유일자와 그의 소유물" (1845) 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표현만이 약간의 유사성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트라벤은 슈티르너의 고립주의에 바탕을 둔 극단적 개인주의를 배척하였다.

 

14.

멕시코에 도착하다: 1924년 여름에 트라벤은 42세의 나이에 멕시코에 도착하였다. 인위적으로 선택해야 했던 고향이다. 트라벤은 멕시코 만의 타마울리파의 탐피코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새로운 땅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마루트는 죽었다.” 수십 년간 독일의 문예 잡지 "벽돌 제조업자 Ziegelbrenner"에 실린 모든 흔적을 없애고 지우다. 어느 날 독일의 어느 저널리스트가 마치 탐정처럼 자신의 과거를 추적해 왔을 때 트라벤은 경악에 사로잡힌다.

 

15.

트라벤의 이름은 비밀스럽다. 1930년 멕시코시티에 있는 멕시코 은행의 금고에는 “베릭 트라벤 토르스반 Barrick Traven Torsvan”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럼에도 트라벤의 미망인은 이 이름이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1940년대에 트라벤은 “할 크롭스 Hall Croves”라고 자신을 명명하곤 하였다. B. 트라벤은 1890년 3월 5일 시카고에서 버튼 토르스반과 도로시 토르스반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당시의 이름은 “할 크롭스”라고 명명된 바 있다고 했다. 1926년부터 트라벤은 영어로 일기를 썼다. 그러니까 그는 독일 국적을 삭제하고 싶었다.

 

16.

두려움에 떠는 마르틴 루터는 권력에 굽신거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망명객은 무의식적으로 두려움에 쌓여 있다. 그래서 그들은 대체로 토착민들의 정치적 보수주의를 추종하는 경향을 지닌다. 쾰른 출신의 여배우, 이레네 메르메트는 미국에 거주는 동안 정치적 보수주의를 선택했다. 이에 비해, 트라벤은 멕시코의 혁명적 분위기에 완전히 공감하였다.

 

17.

정치적으로 대립한 미국과 멕시코: 당시 미국은 가끔 멕시코의 정책을 시시콜콜 간섭했다. 심지어 미국의 정부는 니카라과 내전 당시에 아돌포 디아츠의 편을 들었다. 이에 반해 플루타르코 엘리나스 카에스가 이끄는 멕시코 정부는 후안 사카사 당을 지지하였다. 말하자면 카에스는 노동자의 편에 서 있었으며, 미국의 석유 착취에 대한 위험을 비판하고 싶었다.

 

18.

망명 작가는 외국어로 글을 써야 한다: 20년대에 트라벤은 자신의 작품을 영어로 써서 출판 시장에 내놓으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 나중에 트라벤은 어쩔 수 없이 독일어로 작품을 다시 써서, 타자 원고를 독일로 보냈다. 1925년 1월 18일 트라벤은 자신의 원고를 장편 소설 『목화 따는 사람들 Baumwollpflücker』을 포츠담에 있는 키펜호이어 출판사에 발송하였다. SPD 일간 신문 「전진」의 편집장인 욘 시코프스키는 1925년 3월 27일 트라벤에게 편지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알린다. “본 잡지사는 장편 소설 (「Der Wobbly」로 간행된 제 1부 원고를 지칭함)을 채택하여 실을 예정인데, 원고료 500마르크를 드리겠습니다.” 그 후에 잡지 「전진」은 『목화 따는 사람들』을 6월 21일에서 7월 16일까지, 「아스텍 제국의 건설」을 8월 7일자에, 「어떤 폭탄의 이야기」를 10월 24일자 25일자 신문에 실었다.

 

19.

트라벤은 통속 소설가가 아니라, 혁명 작가다: 트라벤의 작품은 모험 문학 내지는 오락 문학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톨스토이나 잭 런던Jack London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직업 혁명가의 기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헨리 데이빗 소로 Henry David Thoreau 혹은 월터 휘트먼Walter Whitman과 같은 기본 정서를 표방하고 있다.

 

20.

자본주의 계급 사회의 청산: 『죽음의 배』를 자전적인 측면에서 고찰하자면, 이 작품은 마루트의 유럽 탈출과 트라벤의 멕시코 도착의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전후 자본주의 계급 사회와의 청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면 그러한 사회는 산업의 구조 속에서 권력 없는 사람들과 돈 없는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착취하고 그들의 노동력을 찬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21.

시카고 출신의 “그링고 (미국놈)”라고 거짓 소개하다: 트라벤은 목화 따는 사람으로, 석유 채광 노동자로, 일시 노동자로, 빵 굽는 노동자로, 수백 킬로의 가축을 모는 카우보이로 일해야 했다.

 

22.

소설, 죽음의 배, 시체선: 『죽음의 배』 이전에 트라벤은 『목화 따는 사람들』 그리고 10편의 단편을 독일 잡지와 신문에 이미 간행하였다. 그러므로 『죽음의 배』는 그의 네 번째 발표된 소설이었다. 두 번째 장편은 『정글 속의 다리 Die Brücke im Dschungel』였고, 세 번째는 『시에라마드레의 보물 Der Schatz der Sierra Madre』이었다. 마지막 작품은 슈투트가르트의 어느 출판사에서 『죽음의 배』가 간행되기 7개월 전에 감행되었다. 이 책은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처음에는 거절된 바 있다. 나중에 『시에라마드레의 보물』은 41판으로 계속 간행되었다.

 

(계속 이어집니다.)

 

 

B. 트라벤의 죽음의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