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질문: 당신은 한 번도 공산당의 당원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오랜 시간에 걸처 공산주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공산주의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밖에도 그것은 당신의 철학에서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는지요?
블로흐: “공산주의” 대신에 “마르크스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 마르크스주의가 학문적 측면에서 하나의 객관성을 부여하니까요. 이에 비하면 공산주의라는 용어에는 정치적으로 혼탁한 색이 덕지덕지 묻어 있지요. 공산주의는 이른 시기부터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나는 역사적으로 드러난 일련의 자유를 추구하는 운동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프랑스 혁명 정신의 거대한 외침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믿었으니까요. 프랑스의 삼색기를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은 자유, 평등 그리고 동지애를 부르짖었습니다. 시민 주체는 이러한 세 가지 사항을 계승해야 한다고 믿었지요. 그들은 부르주아의 사악한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서 세 가지 사항을 추구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러한 외침은 프랑스 혁명 이후 19세기 초 왕정복고의 시간까지 이어졌습니다. 삼색기의 정신은 오래 이어졌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정서를 건드린다는 점에서도 마치 그치지 않고 타오르는 불꽃처럼 작용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논리적인 무엇 그리고 과학적인 무엇이 더 중요합니다. 당신에게 이미 말씀드렸듯이 눈이 번쩍 뜨인 적이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놀라운 계몽주의의 임무를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거창한 보편적인 언어 내지는 낡아빠진 관념론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어떤 범행을 밝히는 탐정의 행위와 같은 유형입니다. 그것은 물질적 관점에서 해명을 요구하는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사회가 작동되는 경제적인 방식은 마치 기계의 작동과 유사합니다. 지금까지의 사회는 농경 사회를 거쳤는데, 특정 계급을 억압하고 굴복시킴으로써 영위되었습니다. 수백년 동안 이어진 계층 차이의 사회는 계급 투쟁을 통해서 종결될 뻔했지요. 그런데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끔찍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즉 지금까지의 사회에는 전쟁의 위협이 언제나 잠재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 말입니다. 전쟁은 언제나 연기를 모락모락 피우다가, 때가 되면 화산처럼 폭발하지 않았습니까? 이에 대해 첨예하게 대두된 것이 바로 평화주의였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보다도 더 오래 된 사고입니다. (역주: 여기서 블로흐는 마르크스주의를 거시적 차원에서 고찰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의 사상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최소한의 기본권을 요구하는 모든 사고를 가리킨다. 이에 의하면 스파르타쿠스에서 중세의 수많은 종교적 이단파를 거쳐서 토마스 뮌처 그리고 마르크스에 이르는 사상적 흐름이 거시적 차원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으로 설명 가능하다. 이에 비하면 루커치는 마르크스주의를 순수하게 마르크스의 사상을 축소하여 이해하였다. 이러한 태도를 격렬하게 비판한 자는 루카치의 제자, 레오 코플러였다.). 만약 마르크스주의의 개념을 “사회주의”로 대체한다면, 다음의 사실은 분명하게 이해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힘들게 일하고, 무거운 짐을 운반해야 하며, 경멸당하고 모욕당하는 자들이 살아가는데, 이들은 이전에 이미 어떤 더 나은 삶을 갈구하고 꿈을 꾸었습니다. 꿈을 어떻게 실현할지에 관해서 사람들의 의견은 나누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유토피아를 갈구하는 사람들은 “무엇”, “어째서” 그리고 “어디로 향해서”에 관한 믈음에 있어서 공통된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었지요.
그들의 목표는 “필연의 나라”를 “자유의 나라”로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당신은 아마도 격정적으로 프랑스 혁명의 호흡을 느끼겠지요. 더 나은 삶을 위한 폭동은 스파르타쿠스에서 토마스 뮌처의 농민 혁명을 거쳐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현재 동서 베를린의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건너오려는 동독 사람들은 필연의 나라에서 자유의 나라로 넘어서는 비약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역주: 인터뷰가 진행되던 시점은 베를린 장벽이 건설된 지 3년이 되는 해였다.). 물론 여기에는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것과는 약간 다른 의미가 있지만 말입니다.
오늘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탐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세상에는 원래 사람들이 원하던 바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지요. 우리가 생활하는 지역은 맨 처음 우리가 품었던 의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선 우리는 단순한 질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개별 유형에 대한 학문적 예측이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낡고 허접하게 변화했는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세요. 오히려 우리는 첨예한 자세로 노골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연구하는 마르크스주의는 하나, 혹은 여러 개로 파악되고 있는데, 세상의 변화와 함께 변모를 거듭한 것인가? 마르크스의 사상은 어느 정도의 범위까지, 과연 우리가 식별할 수 없을 정도까지 변화되었을까? 만약 우리가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되었다면, 가능하면 단기간에 그것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마르크스주의가 우리의 인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변화되었다면, 분명히 그 내부에는 결과를 도출해내는 가설의 부분이 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마르크스주의가 향하는 노선의 혼란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가설을 통해서 우리는 사고의 불필요한 부분을 어느 정도 제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독재”라는 주요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독재는 원래 일시적인 상태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자국 내에 적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그러합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역시 아주 일시적인 현상일 것입니다. 그것은 자유를 위한 것이지, 세상을 독단적으로 지배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자유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한 기술적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독재”라는 개념이 충분히 숙고한 다음에 나온 표현일까요? 무미건조한 폭정은 과연 기술의 방식으로 출현한 것일 수 있는가요? 그것은 이전에 이미 형성된 게 아닌가요? 독재와 같은 끔찍한 정치적 횡포는 처음부터 마르크스에게서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나중에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하여 다른 언어를 가미했을 공산이 큽니다. 이러한 물음은 매우 중요한 기본적 질문입니다. 만약 내가 “모든 학문 연구소가 해결책을 발견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충분치 않다는 것을 뜻할 뿐입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해서는 새로운 각도로 구명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식욕을 느끼듯이 이에 대한 갈망을 품게 될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만약 문제점의 첨단을 발견하게 된다면, 문제의 해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업은 근본적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질문: 공산주의에 대한 당신의 희망은 현재 처해 있는 정황을 고려할 때 대체로 실망 내지는 환멸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당신의 철학에 어떻게 작용할 것 같습니까?
블로흐: 당신에게 역으로 묻고 싶군요. 희망이 어떠한 실망도 어떠한 환멸도 낳지 않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실망과 환멸을 안겨주는 게 바로 희망의 속성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희망이 아니지요. 왜냐면 희망은 확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위험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게다가 그것은 달리 변화될 수 있지요. 희망 속에는 이를테면 천체의 사물이 어떻게 회전하는가에 대한 천문학적 확신이라든가 미리 정해진 확고한 방침이 없습니다. 만약 그게 있다면, 우리는 애써 희망도, 확신도 품지 않을 테니까요. 세계의 사실들은 미리 정해진 것들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일종의 부유(浮遊) 상태에 처해 있지요.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미지의 땅, 존재하지 않는 대륙으로 항해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능성이라는 망망대해를 계속 항해하면, 우리 앞에 불현듯 어떤 대륙이 나타날 수 있지요. 우리의 삶은 컴퍼스를 들고 새로운 땅을 찾아가는 방랑자 내지는 탐험가의 일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환멸과 실망은 희망의 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르게 수정해야 할 무엇 역시 희망의 속성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삶은 비유적으로 말해서 바보들이 항해하는 배일 수 있지요. 그것은 추상적 유토피아의 속성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만 머릿속으로 그렇게 되어야 할 텐데, 혹은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할 텐데 하다가, 뇌리에서 지워버리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희망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를 분명히 탐구해야 합니다. 바보들의 배가 아니라, 축적된 희망의 내용을 통해서, 다시 말해서 경향성을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희망의 방향을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주어진 사실을 분명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적 조건 외부에서 모든 것을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타자의 욕설과 모욕일 테니까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희망을 비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갈망의 행위를 비난할 게 아니라, 가만히 머물러 있는 수동적 자세를 비판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목표에서 벗어난 혼란을 비난해야 할 것입니다. 흔히 목표가 아닌 곳에는 길이 없다고 합니다. (역주: 중국의 작가, 루쉰은 “희망은 본디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저 많은 사람이 가는 곳이 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소한 목표를 예견하지 않는 곳에는 혼란스러운 샛길이 자리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잘못된 방향을 비판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방향 역시 세심하게 표시하면서, 그곳으로 빠져들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다른 실망에 관해서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현재 발터 울브리히트가 집권하는 동독과 마주한 채 살고 있어요 만약 국가 체제에 대한 비판이 중심 한가운데에서 출현하게 되면, 그것은 해로운 일입니다. 과거의 예를 들어봅시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차르가 1905년까지 끔찍하게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역주: 1905년 1월 22일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거대한 데모가 있었다. 이때 황실 근위대는 주로 노동자로 구성된 데모대에 무차별적으로 발포했다. 이로써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차르의 권위를 크게 약화하게 하고, 러시아 제국 전역에서 반정부 운동과 폭동을 불러일으켰다.). 1905년 이후에 폭정은 더욱 심해졌지요. 그때 자연과학자, 에른스트 헤켈은 찰스 다윈으로부터 “세계의 수수께끼”라는 이론을 수입하여,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유럽의 성스러운 종교 단체를 자극했을 뿐 아니라, 러시아의 신학 체계에 흠집을 가했습니다. 헤켈의 주장은 러시아의 신학적 정치적 질서에 위협을 가한 셈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톨스토이조차도 이에 대해 놀라워했습니다. 그때까지 톨스토이는 근원적 믿음, 즉 원시 기독교의 관점에서 종교를 설파했기 때문입니다. 헤켈의 발언은 마르크스주의가 지향하던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었지요. 진화론은 한마디로 “습득한 희망 docta spes”, 즉 학문에 기초한 희망을 담은 셈이었습니다.
진화론의 관점에서의 비판은 러시아 권력 시스템 내부로 파고들었습니다. 모든 유형의 비판은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지만, 그 자체 진실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비판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떠한 계획을 담고 있는지 간파하면서, 어쩌면 이러한 비판으로써 세상이 변화되리라고 기대했지요. 그러나 이 모든 기대감은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반복해서 말하건대, 환멸을 안겨주지 않는 희망은 희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확신에 해당해요. 그것도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확신 말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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