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질문: 언젠가 당신은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어떤 철학의 기본적 사고는 짤막하고 간결하게 표현되어야 한다고요. 마치 어린이 동화처럼 찬란하고, 직관적이며, 긴장감 넘쳐야 한다고 말입니다.
블로흐: “긴장감 넘치는” 무엇 그리고 “하나의 동화 같은 무엇”은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간결하게 표현하면, 그것은 다른 연관성을 끌어내게 되지요. 그밖에 무언가를 말하려는 철학 역시 그러합니다. 발설해야 하는 무엇은 이전이든 이후든 간에 아주 짤막한 문장으로 정교하게 표현되어야 합니다.
질문: 그렇다면 당신의 기본적 사고는 무엇입니까?
블로흐: 이를테면 나는 아주 가까이 있는 무엇, 내 눈앞에 직접 주어진 무엇 등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약간의 간격이 주어져야 해요. 그래야 그것은 나에게 하나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대상은커녕 단 한 번도 아직 정태적인 무엇으로 다가오지 않아요. 수많은 격언은 간결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직조공은 무엇을 짜는지 모른다.” “등대 아랫부분에는 빛이 없다.”, “예언자가 고향에 머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등의 격언을 생각해 보세요.
질문: 당신은 자주 “그냥 사는 순간의 어두움”에 관해서 발언했습니다. 그게 말하자면 당신에게 사고의 출발점으로 작용하는가요? 바로 여기서 당신은 미래 그리고 변화 등과 같은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셨나요?
블로흐: 네, 출발점, 핵심 사항이 아니라, 출발점으로서 그렇습니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 무엇 내지는 아직 대상으로 인지되지 않는 게 그렇지요. 나는 예컨대 과정, 역사적 과정 그리고 세계의 과정을 “밖으로 나오는 외화의 시도”로 간주합니다. 눈앞에 직접 주어져 있는 알지 못하는 무엇이 스스로 발효하고, 추동하며, 무언가를 의도하며, 무언가를 잠재적으로 드러내려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어떤 임무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X”에서 비롯합니다. 우리가 사는 여기에는 스스로 풀어헤치려고 애쓰는 세계의 매듭이 존재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비로움이지요.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신비로움이 자리합니다. 저 멀리 높은 곳이 아니라, 나에게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하는 게 신비로움이지요. 안구의 망막에 있는 시신경 가운데 맹점 속에서는 두 개의 존재가 동시에 보이지요. 아주 가까운 지점에는 내가 대상화하고 외부로 드러내고 싶은 무엇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과정입니다. 만약 가까운 곳에 무엇이 없거나, 대상화하려는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과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풀어헤치려는 “X” - 이것이 세상과 밀접하게 결부된 과정입니다. 그것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아직 상실하지 않은, 아직 획득하지 못한 무엇이지요. 여기에는 어떠한 확신도 주어져 있지 않아요.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위험의 카테고리일 뿐입니다. 운동의 과정, 노동의 과정입니다. 따라서 과정에서 무언가를 끌어내려고 마지막으로 움직이는 자가 바로 인간입니다. 우리는 과정의 전선에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나의 일감은 이러한 출발점에서 비롯된 것이며, 의심스럽기 이를 데 없는 황금의 토대에서 아직 발굴되지 못하고 이전되지 못한 무엇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면 토대와 근거 속에는 천국의 사항 외에도 지옥의 사항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무언가를 획득하기도 했지만, 실수와 실패가 빈번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렇기에 그곳은 객관적 현실적 가능성을 품고 있는 새로운 무엇의 발굴 장소였지만, 그 자체 의심스럽기 이를 데 없는 토대이자 근거였습니다. 가능성이 잠재된 영역이었지만, 때로는 끔찍한 실망을 안겨주는 쓰레기더미이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 아님”이라는 카테고리입니다. 이것은 주관성과 객관성이라는 두 개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아직 의식되지 않은 무엇das Noch-Nicht-Bewußte”이 주관성이라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무엇das Noch-Nicht-Gewordene”은 객관성이지요. 전자가 내부적인 무엇이라면, 후자는 외부적인 무엇이지요,
이 두 가지는 미래에 재현되는 새로움의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진정한 미래지요. “아직 의식되지 않은 무엇” 그리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무엇”은 새로운 무엇의 카테고리이며, 영혼의 측면에서 새로운 무엇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입니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억압된 무엇, 전의식 내지는 무의식이 아닙니다. 나아가 카를 구스타프 융이 거론하는 홍적세의 원형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지요. 그것은 앞으로 향하는 여명과 같습니다. 새로운 무엇은 청춘이 지니는, 혹은 지니고 있다고 믿는 놀라운 감정과 관련됩니다. 나아가 “아직 아님”이라는 카테고리는 새로운 무엇이 도래하는 전환기와 결부됩니다. 이를테면 르네상스, 질풍과 노도, 1848년의 독일 혁명, 1917년 소련 혁명을 생각해 보세요. 이 시기에는 낡은 것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새로운 무엇 역시 완전히 도래하지 않고 있지요
전환의 시기에는 존재 자체가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유토피아적인 무엇은 마치 임산부의 뱃속에 자리하는 영아와 같아요.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세계는 자신의 머리가 어디로 향할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유토피아적인 무엇을 짤막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유토피아는 언제나 악평에 시달리는, 나쁜 어감을 지닌 단어지요. 사람들은 그것을 터무니없는 망상 내지는 바보들의 천국으로 취급합니다. 상인들은 “그건 너무 유토피아적이야.”하고 말합니다. 자신의 계획에 없던 일이 발생하면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요. 유토피아적인 것은 확정되지 않은 채 상상 속에 부유하며, 올바른 현실적 토대를 지니고 있지 않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나는 나의 첫 번째 책, 『유토피아의 정신』에서 유토피아적인 무엇이라는 카테고리를 수정하지는 않았지만, 거기에 어떤 고유한 권한을 부여하려고 했습니다. 그 속에 담긴, 진정한 카테고리의 의미를 밝히려고 했지요. 유토피아가 통상적 의미와는 달리 긍정적으로 파악된다면, 그것은 사회 유토피아라는 단골 영역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사회 유토피아는 유토피아 사회상으로서 수많은 사람이 최상의 국가의 모습을 서술했습니다. 아직 아님은 더 나은 사회에 관한 꿈으로 설계되었던 것입니다. 플라톤에서 시작되어, 생시몽, 오언과 푸리에를 거쳐 마르크스주의의 사상적 출발점까지 이어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단골 술집에서 “모자 벗고 경례!”라는 단골 술집의 고유한 외침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밖에 의학적 유토피아, 기술 유토피아, 건축 유토피아, 지리학적 유토피아 그리고 종교 유토피아, 유토피아로서의 음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가장 강력한 반-유토피아로 말할 수 있는 죽음에 대항하는 유토피아도 있지요. 이 모든 것은 “아직 아님”이라는 시도하고 실험하는 유형 속에 자리하는 노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험을 감행하는 게 아니라, 세계 자체가 하나의 실험실이라는 사실입니다. 세계 자체가 하나의 모델이며, 세계 속의 형체들은 모델들이지요. 이것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시험과 검증을 사전에 필요로 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세계의 수많은 형체는 검증을 통해 드러나고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거대한 영역이 유토피아의 영역입니다. 그곳은 언젠가 『희망의 원리』 서문에서 말한 바 있듯이, 최상의 문화가 거주하는 나라이며, 아직 탐구되지 않은 남극의 영역과 같습니다.
질문: 이렇게 표현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철학을 떠받치고 있는 “성스러운 기둥”은 헤겔과 마르크스인 것 같습니다. 어떤 계기로 당신은 두 사상가와 만나게 되었는지요? 당신은 헤겔주의자입니까, 아니면 마르크스주의자입니까?
블로흐: 마지막 질문에 분명히 답변해야 할 의무가 있을 것 같군요. 나는 헤겔주의자도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그것은 아류라는 점을 드러낼 테니까요. 누군가가 자신을 헤겔주의자 내지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명명한다면, 여기서는 아시다시피 의미심장한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게다가 세상은 헤겔과 마르크스에 머물러 있지 않아요. 물론 두 사상가가 해결하려고 했던 여러 문제점은 끝난 게 아닙니다. 부분적으로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기는 합니다. 세상은 변하기 때문에, 어떠한 철학자도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사상적 아류는 신선한 물 한 모금조차도 맛볼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사항을 논외로 삼아야 해요. 즉 사상적 모방이나 아류는 위대한 철학이 남기는 무엇을 고마운 마음으로 수용하고, 배우며, 그들의 추구했던 바의 의미를 추적하게 합니다. 바로 그 점에 있어서만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헤겔”과 관련해서 말씀드리면, -물론 마르크스도 당연히 관련되지만- 내가 살았던 노동자의 도시, 루드비히스하펜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곳에는 사민당의 신문사들이 많았습니다. 짤막한 포스터도 간행되곤 했는데, 자주 읽곤 했습니다. 신문과 팸플릿을 통해서 나는 사민당이 추구했으며, 지금도 추구하고 있는 거대한 자유에 관한 운동을 접할 수 있었어요.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열기, 1848년 독일 혁명의 분위기를 체득했습니다. 요즈음도 저항의 데모가 자주 나타나지만, 당시에 나는 학교 그리고 부모의 집이라는 체제에 갑갑함을 느끼면서 탈출하고 싶었어요. 게다가 청년으로서의 여러 가지 유혹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데 팸플릿의 냉정한 내용에 순식간에 눈이 번쩍 뜨였어요. 그것은 경제사와 관련되는 역사의식이었습니다. 경제적 생산 양식이 인간의 삶을 모조리 바꾸어나간다는 것은 놀라운 관점이었지요.
마르크스가 헤겔의 제자이기 때문에 내가 마치 학교 공부하듯이 헤겔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헤겔을 먼저 접했는지, 아니면 마르크스가 먼저 나에게 와닿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쇼펜하우어를 읽다가, 칸트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칸트를 읽다가, 헤겔에 관심을 기울인 것 같기도 합니다. 나에게 우연한 행복이 찾아왔지요. 그것은 만하임의 궁정 도서관이었습니다. 도서관은 1860년에서 1870년 사이에 건립되었는데, 이탈리아 화가, 티폴로의 그림이 걸려 있는 로코코 형식의 거대한 홀이 있었지요. 그곳에서 라인란드 주(州)의 학문 아카데미의 회의가 열렸으며, 프리드리히 실러의 극작품, 「피아스코의 반란」이 공연되기도 했습니다. (역주: 「피아스코의 반란」은 실러의 연극 작품으로서 1784년 만하임에서 초연되었다.). 정말로 멋진 공간이었어요. 도서관에는 1860년 이전의 철학 서적은 많이 비치되지 않았습니다. 최신 철학에 관한 문헌은 많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라이프니츠와 헤겔의 문헌은 전집 통째로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헤겔을 추종하는 철학자들의 문헌도 즐비했지요. 16세의 청년이 현대의 철학을 모조리 섭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지요.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1820년 헤겔이 집필한 저작물을 독파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거의 3년에 걸쳐 근대 철학 그리고 헤겔의 전집을 정독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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