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bloch 대화

에른스트 블로흐: (1) 검은 리본과 함께 하는 희망

필자 (匹子) 2025. 10. 23. 09:51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64년에 독일의 저널리스트 위르겐 륄레가 에른스트 블로흐와 인터뷰이다. 비록 60년 전의 대화이지만, 우리가 새겨 들어야 할 내용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이 글은 다음의 문헌에 실려 있는데, 필자에 의해 번역된 것이다. Ernst Bloch: Tendenz - Latenz - Utopie, Frankfurt a. M. 1985, S. 336 - 349. 위르겐 륄레 (Jürgen Rühle, 1924 1986)는 서독의 작가이며, 저널리스트 그리고 영화감독으로 활동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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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블로흐씨, 당신은 논문 그리고 저서의 여러 곳에서 카를 마이에 관해서 기술했습니다. 그것은 탐정 소설, 동화 그리고 장터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이러한 것들은 철학적 주제와는 동떨어진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철학적 사고의 출발점은 유년과 청소년 시기로 귀결되는 것인가요?

 

블로흐: 재미있는 질문이로군요. 그렇지만 그것은 편안함을 불러일으키지만, 겉보기에만 고립된 내용일 것입니다. 유년에 합당한 질문이며, 당신이 생각한 바대로 그저 소재상으로 흥미를 지닌 것이지요. 이에 대한 대답으로서 약간이 반복되는 부연 설명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언젠가 볼테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사람들이 나를 이해할 떼까지 계속 반복해서 말하겠다고요. 당연한 말이지만, 지속하는 사고 그리고 결실을 안겨주는 사고의 뿌리를 밝히려면, 우리는 이전의 사항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이를테면 어떤 정황을 식별하기 위해서 유년을 곰곰이 떠올리곤 합니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장터 그리고 라인강을 지나치던 선박이 기억납니다. 네덜란드의 선박들은 만하임까지 왔습니다. 선원들은 배에서 내리곤 했습니다. 그들은 매우 남성적이고 건장했습니다. 선원들의 나이는 18세, 혹은 20세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수마트라에서 바타비아로 돌아왔는데, 우리에게 말레이족의 단검 그리고 냄새나는 그릇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역주: 라인강과 뫼즈강의 삼각주로 형성된 비옥한 지역이다. 네덜란드 간척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마른 땅이었던 “네덜란드 내륙 본토”에 해당하던 땅이 바타비아이다. 말레이족의 단검은 30 – 40센티의 길이를 지니고 있으며 양면이 날카로운 칼을 가리킨다.). 어린 시절부터 넓은 세상에 관해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우리는 숲속에서 뱀을 잡아서, 껍질을 벗긴 다음에 불에 구워 먹기도 했지요. 당시 불과 여덟 살의 어린이였지만, 남성적 자부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뱀 고기에 소금을 뿌리지 않고, 화약을 뿌리기도 했지요. 그렇게 해야 고기가 더 맛있으리라고 여겼으니까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당연히 카를 마이Karl May의 작품들이 연결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동화 그리고 탐정 소설과 통속 소설의 내용 그리고 “장터”의 분위기는 특시 청소년들을 매료시켰지요. 당신이 언급한 “장터Rummelplatz”라는 표현은 북부 독일에서 사용하는 단어이므로, “연시(年市)”, 혹은 “박람회Messe”라고 표현하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장터”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데 비하면, “연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일년에 두 번 비밀스럽게 어른의 옷을 입고, 상점 안으로 들어가지요. 그러면 험상궂은 표정의 오리코노 인디언이 모습을 드러내지요. 이때 긴 혀를 날름거리는 원주민의 이마는 강철같이 번득입니다. 해양 전시관의 삶이 드러나고, 황금을 걸친 고대 이집트 여인이 보이며, 그레테 바이어가 처형되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역주: 그레테 바이어 (Grete Beier, 1885 – 1908): 그미는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가, 남편을 독살했다. 그미는 법의 심판을 거쳐서, 23세의 나이에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이 사건은 독일 전역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연시”의 전시장에서 비밀스럽기 이를 데 없는 장면들은 비밀스러운 중세의 현실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젊은이인 나를 이국적으로 자극하는 자양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이런 식으로 현실로부터 도피하려고 했습니다. 현실 도피의 모티프는 우리 시대와 관련되는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자신의 갈망을 해소할 수 없었으므로, “연시”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불태울 수 있었지요. 이를테면 사람들은 오랫동안 동화의 진정한 의미를 간과해 왔지요. 그 가치는 전혀 간과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기성세대는 동화 이야기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젊은이들은 가상적인 이야기에 골몰하면서 지루한 부모의 집을 떠나 행복을 찾아 멀리 여행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심지어 헨젤과 그레텔과 같은 고분고분한 아이들도 부모님의 집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마녀의 집에 당도한 것은 그들의 불운이었지요. 어쨌든 헨젤과 그레텔은 집을 뛰쳐나오려고 했습니다. 재단사의 딸은 용기 있게 가출하지요. 카를 마이의 주인공들도 가출합니다. 그들에게는 낯선 삶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청년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인간관계 그리고 인간의 운명은 위대한 문학 속에서 그다지 생생하게 보존되어 않았지요. 이러한 근원은 특히 브레히트의 문학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신도시의 극장 그리고 카를 발렌틴Karl Valentin이 없었다면, 브레히트의 놀라운 작품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역주: 카를 발렌틴 (1882 – 1948): 뮌헨 출신의 희극배우, 가수, 작가, 그는 브레히트, 베케트 그리고 많은 작가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상기한 내용은 약간의 수정을 가해 말하자면 당연히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입니다. 이를 철학적으로 표현해보겠습니다. “네가 없는 곳에, 행복이 머물고 있다.”라는 노래를 생각해보세요. 그런데 “네가 아직 없는 곳에, 행복이 머물고 있다.”가 더욱 정확한 표현입니다. 어린 시절 당신에게 언급한 바 있는 “장터” 내지는 “연시”를 돌아다니면서, 철학적 사고에 골몰한 기억이 납니다. 초록, 노랑, 붉은색, 푸른색 그리고 흰색의 애드벌룬이 있었습니다. 19 페니히만 내면, 우리는 애드벌룬에 탈 수 있었지요. 실수로 끈을 놓게 되면, 애드벌룬은 하늘 높이 날았습니다. 풍선이 높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을 때 나는 그것을 바라보았지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공기의 압력이 심한 아래에서는 애드벌룬이 위로 향하는 속도가 강해졌지요. 애드벌룬이 공중으로 올라가면, 상승의 속도는 줄어들었습니다. 이때 나는 중력에 대한 가설을 발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노트에다 “이론과 가설, 중력에 관한 새로운 이론”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기록한 다음에 글을 썼습니다. 애드벌룬의 경험이 글을 쓰게 했지요. 오래전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유형의 허튼 상상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그러했으리라고 추측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터”, “카를 마이” 그리고 “동화” 등의 모티프입니다. 이러한 모티프는 열혈 청년이 철학적으로 떠올린, “자연 철학적 구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역주: 여기서 말하는 자연 철학적 구상은 자연 현상에 대한 개인적 갈망의 투영이라고 이해하면 족할 것 같다.).

 

: 당신의 사고 속에는 예술, 특히 음악이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당신의 사상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 것 같은데요. 당신의 철학에서 음악은 어떠한 고유한 역할을 담당하는지요?

 

블로흐: 당신은 처음에 예술을 이야기한 다음에 다시 음악을 끄집어내시는군요. 음악이 예술 가운데 일부가 아닌가요? 물론 예술과 음악은 서로 다르지요. 회화 예술 그리고 극예술 또한 음악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구분되는 예술이지요? 그렇지만 음악은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아름다움과 선을 창조하려는 특징을 예술 속의 형체로 표현합니다. 이에 비하면 회화 예술과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등장인물 그리고 그의 삶을 예술적으로 드러냅니다. 우리는 체험 현실의 공간을 빼앗기고, 삶의 주위에 머물러 있는 우연성과 마주칩니다. 이는 진정한 삶을 깨닫게 하지 못하는 나쁜 정황들이지요. 바로 이것들이 예술에서 놀랍게도 제거됩니다. 예술 작품에서는 어떤 본질적인 것들 그리고 성격상의 필연적인 것들만이 강조되곤 합니다.

 

갑자기 고트프리트 켈러의 문장이 떠오르는군요. “셰익스피어의 연극에는 모든 인물이 오로지 자신의 성격상의 특징만을 강하게 드러내는데, 이러한 성격상의 직무만이 가장 순수한 형식으로 부각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삶, 그러니까 일상적 삶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 무엇, 어떤 결정되지 못한 무엇 등은 무대 위에서 실험적으로 강하게 드러납니다. 무대를 하나의 실험적 공간으로 만든 극작가가 바로 브레히트 아닙니까? 어떤 극적인 순간이 우리의 삶에서 제거되거나, 질서를 찾게 되며, 어떤 계획대로 전개된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아무런 갈등과 피 흘림 없이 그냥 지나치게 되겠지요. 연극 무대는 현실에서 드러날 가능성을 타진하는 공간입니다.

 

나의 책, 『유토피아의 정신』에서 음악의 철학이 강조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음악의 철학을 다른 장에 비해서 방대하게 서술했지요. 왜냐면 음악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많은 것을 시사하는 예술이라고 어린 시절부터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5살 때 나는 빌헬름 하우프의 동화 「스탠폴의 동굴Die Höhle von Steenfoll」에 해당하는 작은 오페라 작품을 집필하려고 했습니다. 작품의 제목은 “카르밀한”이라고 명명되기도 하지요.

 

어느 날 어부가 살고 있었는데, 저녁마다 누군가 그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습니다. 매일 같은 소리가 들렸는데,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지요. 어린아이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나에게 마치 포근한 자장가처럼 들렸습니다. 아이의 옹알거림은 새로운 예술이며, 약 400년 동안 이어진 다양한 소리의 음악입니다. 음악은 자신의 언어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음악을 이해한다고 믿고 있지만, 정작 그게 무슨 뜻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지요. 음악은 대체 어떠한 형체를 말하려고 하며, 무엇을 전달하려고 할까요? 그러니까 음악은 어쩌면 유토피아의 수많은 내용을 암시하는, “사고의 보조수단인지 모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